“바디프로필 준비하세요?”
이 질문을 수없이 받을 무렵, 막상 나는 바디프로필을 찍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작 사진 몇 장 찍으려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저 말은 ‘바프를 찍을 만큼 몸이 좋다.’ 라는 칭찬일 뿐이었고, 하여 실제로 바프를 찍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대회 준비하세요?”
이 말을 들을 때쯤 바프를 예약했다.
그때 내 체지방률이 14%였다. 즉 바프를 찍으려고 체지방을 줄인 것이 아니라, 줄여진 김에 그냥 한번 찍어나 보자 하고 저지른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예약하는 그 순간까지도 사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거라도 있으면 운동이 더 짜릿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는 진지하지도 다급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바프는 그저 즐겁고 재미있는 일회성 이벤트일 뿐이었다.
바프를 계약하러 갔을 때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그냥 바로 찍으셔도 될 거 같은데… 날짜 일찍 예약해 드릴까요? “
아니, 그럼 내가 이걸 예약하는 의미가 없다. 나는 사진 때문에 바프를 찍는 것이 아니다.
“아뇨. 좀 더 즐기다 찍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 운동은 진짜로 더 즐거워졌다. 상상과 기대 이상으로… 그렇게 즐거운 생활을 하던 중,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꾹!! 대박!! 너 근육 이거 시술한 거야?”
“너… 코로나 시즌에 전장 다녀왔니???”
“아냐… 내가 들었는데 얘 이번에 조직 들어갔데.“
어… 그래… 늬들 그러는 거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뚱뚱했고 심지어는 별명이 물찬 돼지였으니까… 근데… 마지막 거는 빼고… 도대체 그런 소문은 어디서 듣냐?! 조직이라니…
“어… 아냐… 나 바프 찍으려고…”
바디프로필이라는 평범한 대답을 들으면 저들이 조금은 실망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물찬 돼지가 바프를 찍는다며 갑자기 대기쁨의 상태에 빠졌다.
그 후 그들은 바프 컨셉이라며 이런저런 사진들을 미친 듯이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엔 제법 정상적인 사진들을 보내왔다. 그러다가 내 반응이 시큰둥하자 나중엔 지들끼리 경쟁하듯 기상천외한 육해공전 작품들을 구해오기 시작했다. 벗고 물 위에 시체처럼 둥둥 떠있는 사진, 가터벨트를 하고 말 위에서 하늘을 나는 사진, 땅에 머리만 내밀고 묻혀있는 사진?? 응?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 건지. 아니, 그보다 저 땅에 사람이 심어져 있는 사진은 바프 사진이 맞긴 한 건지…
나는 절대로 평범하게 가겠노라 선언했더니 그들은 잠깐 실망하는 듯했다. 그러다 곧 지들끼리 또 복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꾹! 너 어차피 나중에 종합격투도 할 거니까 상탈하고 챔피언 벨트 차고 찍는 건 어때?”
(그런 거 한다고 한적 없음)
“오! 좋다!! 벨트 받고 복싱 글러브 추가!!”
”아냐, 쟤 조직 들어갔으니까 한손에 너클 어때?“
(그런 거 들어간 적 없음. 그리고 그거 범죄임.)
“굿!! 거기에 머리에는 선덕여왕 금관!! 와… 그거 개간지!!”
(… 그… 하… 그런건 도대체 어디서 구함…)
“좋아!! 추가로 내가 재작년에 니 생일 선물로 사준 가터 벨트랑 수갑도!! 완전 멋지잖아?? 야! 근데 너 그거 쓰긴 하냐?”
(……. 진짜 궁금해서 묻는거임?)
“야! 너 꾹 생일 선물로 수갑 사줬어? 미친년아, 그거 손목 까져!!”
“뭔솔… 당연히 털 있는 걸로 줬지.”
오케이!! 거기까지!!!
니들은 내가 도대체 뭘 찍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복슬복슬한 핑크 수갑은 울 신랑이 볼까 봐 집 화단에 묻어놨다. 그렇게 그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멘탈이 탈탈 털린 채 귀가를 하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이웃분이 나를 쓱 보시더니 물으셨다.
“저… 혹시 격투하세요?”
“… 아뇨?“
“그럼 운동 뭐 하세요?”
“그냥 뭐… 이것저것…”
무슨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은 자주 받았지만 왜인지 당시에는 깔끔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분이 또 물으셨다.
“애들이 안 무서워해요?”
응?? 왜?? 애들이 왜?? 뭐를? 어떤 애들이??
“어떤 애들이 뭐를… 무서워해요?”
“엄마 몸이 그렇게 우락부락하면 애들이 안 무서워하냐고요? “
?? 와씨… 우락부락이라니… 아니, 내가 그 정도야?
“애들은 엄마가 추성훈같아도 자기 엄마를 무서워하지는 않아요.”
다행히 엘리베이터 안이라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집에 갔더니 신랑은 퇴근 전이었다. 그래서 편히 누워 핸드폰 좀 하려는데 ‘차량이 도착하였습니다.’ 알람이 울렸다. 미리 강조하지만 난 내 신랑을 사랑한다. 그런데 요즘 부쩍 대화가 많아진 그를 상대하기에 그날은 많이 피곤했다. 그래서 얼른 핸드폰을 끄고 자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귀가한 그가 내 옆에서 알짱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끝까지 눈을 꼭 감고 모른 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내 핸드폰을 만져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보야, 안 자는 거 알아. 핸드폰이 뜨겁잖아. 얼른 일어나 봐.“
아, 젠장… 그렇다고 지금 일어나면 자는 척했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건 절대로 안 된다. 차라리 이대로 잠드는 편이 낫다. 그냥 자자. 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가 말했다.
“여보야,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요. 단백질 먹고 자야죠. 근손실 와요.”
순간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근손실이란 말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다.
“여보야… 방금 뭐라고 했어요?”
“근손실?”
“아 맞다. 나 아까 단백질 안 먹었구나. 근데 여보야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니 가방 속에 고대로 있길래?”
도로 일어나서 단백질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아까까지 자는 척을 하고 있던 나는 왜 지금 이 시간에 단백질을 마시고 있고,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그리고 이걸 다 마시고 나서 나는 저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하면 되는 걸까.
결국 그날 나의 취침시간은 두 시간가량이 늦어졌고, 다음날 오전 운동은 못 갔다. 젠장… 그렇게 아침 늦게까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그가 흠칫 놀라면서 말했다
“여보야, 너 왜 운동 안 갔어?“
그러게요. 왜 못 갔을까?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점심때 약속인데 왜 오전 운동을 안 가? 운동하고 가면 되잖아?“
라고 ‘자기는 죽을 때까지 연골을 새 거인 상태로 남기고 싶은데, 운동을 하면 연골이 닳으니 절대로 운동은 하지 않겠다.’ 라고 말한 분이 말씀하셨다.
“야!! 내가 누구 때문에 못 갔는데!!! 알람을 못 들어서 못 일어났잖아요!!”
그러자 그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국주…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니잖아? 오빠가 막 실망스러워지려고 하네?“
와… 열받는다.
당분간은 내가 너를 상종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씩씩 거리고 있었는데, 오후에 ‘김국주’ 이름으로 택배가 하나 왔다. 품목은… 풀업바였다?!? 우와… 이거 누가 봐도 내가 산 것 같고, 내 꺼같은 물건이었지만 나는 맹세코 이런 걸 산 적이 없었다. 이런 짓을 할 인간은 우리 집에 한 명뿐이었다.
“여보야, 택배가 왔는데… 풀업바… 라는데요?”
그러자 그가 방에서 나와서 조용히 입 닫고 풀업바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아니, 일단 설명 좀 해봐요. 이거 누구껀데요?“
“니꺼…”
“어… 그렇구나… 근데 왜 샀는데요?”
“울 여보야, 가끔 운동 빠지는 거 같아서?“
아하! 그러니까 나더러… 집에서도 턱걸이를 해라?
“여보야, 울 여보야가 잘 모르는 거 같아서 얘기하는 건데요. 나 울 체육관에서 턱걸이 진짜 많이 해요. 아니, 턱걸이뿐만 아니라 걍 운동을 많이 해요. 나 울 체육관 지박령이고요. 친구들은 나를 운동 처돌이, 운동 씹덕후, 운동 또라이 라고 불러요. 그리고 아침엔 못 갔지만 이따 저녁에는 운동 갈 거예요.”
그러자 그가 중얼거렸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7시 이후에 배달해 준다고 했는데 이게 왜 벌써 왔지?” (나 저녁 운동 가있을 시간)
“와… 여보야, 이거 나 몰래 설치할 생각이었어요? 근데 내가 모르면 이게 무슨 의미에요?”
아하! 라는 표정으로 나를 꿈뻑꿈뻑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여보야, 이거 풀업바로 턱걸이할 때 내가 보는 앞에서 해요. 그리고 기왕이면 상탈하고 해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어딜 가든 또라이가 꼭 한 명씩은 있고 만약에 없다면 내가 또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내 주위에는 온통 또라이들밖에 없는 것인지!! 누가 그래? 한 명씩만 있다고…
그렇게 안팎으로 내뿜는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서 내 비주얼은 몹시 위풍당당해졌고, 바프 촬영 당일.
“와… 딱 봐도 등 찍으러 오셨네요? 아니 무슨 등근육만 이렇게까지 만들어왔어요? 이런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뭐 등보정은 필요 없겠는데요?”
라는 말을 들었다.
“네. 얼굴을 집중 보정해주십쇼.“
나의 첫 번째 바프 소동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에게는 멋진 사진과 더 멋진 몸이 남았다. 동시에 다이어트를 어떻게 했냐는 질문을 많이 듣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한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친구들의 뜨거운 관심과 신랑의 열렬한 내조 속에서 스승님이 하라면 했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했다기보단 주위에서 만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스승님은,
“아뇨. 이건 국주 회원님이 하신 겁니다. 안 따라와 주셨다면 불가능했죠.”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신랑에게 말했다.
“여보야, 내가 몸을 만들긴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울 쌤은 내가 한 거래요.”
그랬더니,
“여보야, 모르겠어요? 그냥 진짜 광기 둘이 만나서 사기캐 하나 만들어낸 거예요. 둘 중 하나만 정상이었어도 그건 불가능했어요.”
라고 우리 집의 또 다른 광기가 말했다.
이 말을 전했더니 스승님 말씀하시길,
“네? 저까지 진짜 광기가 되었네요?”
롸??? 왜 다들 본인은 빠지려고 하는 것인지?!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깨짐.
QnA Time
Q. 운동 너무 많이 하면 근육이 울퉁불퉁해지지 않아요? 저는 그냥 날씬해지고 싶은데요.
A.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냥 날씬해지는 것이 울퉁불퉁해지는 것보다 쉽습니다.
정상 체중으로 진입하는 것이 easy mode,
그냥 날씬해지는 것이 hard mode 라면,
근육 울퉁불퉁은 hell mode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단 그냥 날씬해지는 것부터 해보고 나서 말합시다.
Q. 도대체 근육은 왜 만드는 거예요?
A. 우리에게는 움직이고 운동해서 쓸 수 있는 칼로리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초대사량!!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수 칼로리지요. 내 기초대사량이 1100이라면? 나는 바닥에 배 깔고 누워있어도 하루에 1100kcal가 소모되고, 1300이라면? 앞사람보다 하루 밥 한 공기 칼로리가 그냥 날아가는 겁니다.
이 기초대사량은 나이, 성별, 체격 그리고 근육량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근육량이고요.
그래서 우리가 근육을 만드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많이 먹어도 살 안 찌는 체질’ 을 만들기 위해. 또는 그저 마른 몸이 아닌, 탄탄하고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근육은 필요합니다.
Q. 혹시 다이어트 보조제도 먹었나요?
A. 예전에는 많이 먹어봤습니다.
그리고 전부 실패했고요. 그래서 절대로 추천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건강입니다. 다이어트 때문에 건강을 해치면 안 되어요.
주객이 전도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같은 이유로 무작정 굶어서도 안 되고요.
우리의 다이어트는 반드시 건강을 기본 전제로 깔고 가야 합니다.
건강하게 백 살까지.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