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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주 Mar 03. 2021

다이어트 vs 금연 (금연 편)

나는 니코틴의 노예였습니다.


지금은 재떨이를 보기가 힘들다.

아마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재떨이가 무슨 물건인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전국 구석구석이 금연 구역이 된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얼마 전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뭐, 필자의 나이가 있으니 그렇다 치자.


80년대에는 회사 사무실은 물론 안방, 교무실, 심지어는 교실에도 재떨이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셨으며, 아이들에게 재떨이를 비워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당시에는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에도 재떨이가 자주 등장했다. 영화 속 악역들은 주위에 멀쩡한 흉기를 두고 툭하면 손에 잡히는 재떨이를 휘둘렀다. 재떨이는 그만큼 흔했다. 버스 안에도 붙박이 재떨이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흡연이 권장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라는 의심까지 든다. 90년대에도 상황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술집, pc방, 당구장의 대기 구성 90퍼센트가 담배 연기였으며, 길거리는 담배연기를 통과하지 않고는 지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담배가 허용이 되지 않은 곳이 있었다면 tv 광고뿐이었다. 대중 매체의 담배 광고를 허용했다면 그 얼마나 기상천외한 광고들이 나왔을지 살짝 궁금하긴 하다.


당시에는 아버지들도 안방에서 재떨이를 구비하고 담배를 피우셨다. 재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방바닥엔 담배빵이 많았다. 어머니들 역시 남편이 아이들 앞에서 흡연하는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은 그렇게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셨으면서 우리더러 피우지 말라고 한건 좀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밑밥을 까는 이유는, 울 아부지도 내가 어렸을 때 집 안에서 흡연을 하셨다. 나 말고도 많은 70,80 세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간접흡연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담배를 피워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담배의 시작은 그냥 호기심이었다. 내가 담배 필터를 직접 입에 끼고 내 호흡으로 마시는 연기는 어렸을 때부터 마셔온 연기와는 다를 줄 알았다. 이 독을 들이마시면 폐가 거부를 해서 기침으로 내뱉어낸 후, 독의 근원인 담배를 비벼 끄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담배랑은 안 맞네.’ 라고 생각하며 다시는 그것을 손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렇다. 나는 20년의 간접흡연을 우습게 봤고, 니코틴의 중독성을 과소평가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담배 연기를 처음으로 들이킨 순간 적잖이 당황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폐는 그 독극물을 거부하지 않았고, 뇌는 오히려 니코틴을 반가워했다. 내 온몸이 담배를 환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첫 담배는 그야말로 황홀했다. 친구들은 나의 첫 담배를 의심했고 나는 억울해했다. 나로서는 정말로 처음이었으니까. 아니, 처음인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슬픈 진실을 마주하자면 그 담배연기는 내게 처음 일리 없었다. 첫 경험의 황홀함은 어렸을 때부터 니코틴에 중독이 되어온 결과일 뿐이었다. 나의 첫 담배, 그것은 어설픈 입담배가 아니었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봐온 게 있는데. 연기는 내 폐 안에서 2초 이상 머물렀고, 그것은 진정한 속담배였다. 그렇게 단 두 번의 호흡에 니코틴의 노예가 되었다. 나는 흡연을 하는 내내 담배를 사랑했다. 내 손가락이 담배의 재질을 원했고, 내 코가 그 향을 원했으며 내 뇌가 니코틴을 원했다. 나는 늘 밥보다 담배가 먼저였다. 하루에 한 갑 이상. 소위 골초가 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담배는 왜 마약이 아닌 걸까.

마약의 조건이라면? 환각, 중독, 금단 현상, 그로 인한 인체 손상. 예를 들면 아편, 헤로인, 코카인 등. 듣기만 해도 그 명성이 후덜덜한 마약들이다.

그에 비해 하찮아 보이는 이 담배가 마약이 아닌 이유는 단 하나. 환각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뿐, 니코틴의 중독성은 저 명성 높은 마약들을 능가한다. 니코틴은 우리 주위에 흔할 뿐, 결코 하찮은 물질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담배를 마약으로 분류했습니다.)


자, 내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 한 개비가 들려있다. 담배도 맥주와 마찬가지로 종류에 따라 제각기 맛이 다르다. 내 손에 들려있는 건 말보로 레드. 뇌에 자극이 올 정도로 독한 측에 속한다. 찬 공기와 함께 독연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가 담배에 환각이 없다고 했을까. 니코틴을 한 모금씩 삼킬 때마다 나른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걸 보면 뇌에 직타를 먹이는 것이 분명하거늘.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재떨이에 비빈다. 그리고 식가위를 들어서 담배를 끼고 있던 손가락 두 개를 망설임 없이 잘라낸다. 손가락이 없어졌으니 나는 이제 담배를 못 피울 것이다.


이것이 그 날 꾼 꿈이었다.

내가 담배를, 이 악마 같은 니코틴을 내 인생에서 끊어내기로 결심한 날, 바로 그 날의 꿈이었다.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니코틴을 사랑하는 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이었다. 밟을까 두려워서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었던 지뢰였다. 나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 사랑하는 내 약혼자와 나를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소중한 아이를 뱃속에 품고 독극물을 들이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임신 상태에서 금연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끊어내야 했다. 그래서 눈 뜨고 있을 때 외면해왔던 진실을, 내 무의식이 꿈속에서 불을 붙여 폭탄으로 던져주었다. 내 뇌는 이미 니코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지만, 내 몸은 니코틴을 거부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sos를 쳤다. 꿈 속에서 담배를 끼고 있던 너의 손가락을 잘라냈으니, 상징적인 너의 육체를 절단해냈으니 현실에서는 니가 직접 니코틴을 뇌에서 제거하라. 그렇다. 나는 니코틴의 노예가 되어버린 내 뇌의 일부를 파내야 했다.


그전에 금연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일단 금연 담배. 또 다른 종류의 담배일 뿐이다. 니코틴 제로 담배. 중독은 니코틴에서 온다. 니코틴이 없으면 니코틴 금단 현상이 오는 것은 매한가지다. 금연 패치. 이건 담배의 역할을 무시한 제품이다. 팔에 딱지를 붙여서 니코틴 좀 보충해준다고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입으로 빨아들이는 그 행위가 보상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내가 금연 패치를 붙였다는 사실을 잊고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 쇼크가 온다. 그럼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금연 담배를 피우면? 모질이같은 짓이다.


다이어트의 원리가 간단하듯, 금연을 하는 방법 또한 하나밖에 없다. 담배를 안 피우면 되는 것이다. 내 몸과 영혼이 어떤 상태가 되든 신경 끄고, 담배만 안 피우면 된다. 금연하는 기간 동안은 내 육체와 뇌에게 모든 것을 허용해야 한다. 담배만 빼고. 내 몸은 니코틴 금단 현상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이해 해야한다. 그러니 다른 것은 무리해서라도 허용하자.


일단 금연을 하면 불면증이 온다. 나는 소주에 수면제를 타서 마셨다. 매일 그렇게 잠들었다. 소주에 약 타서 먹어도 되냐고? 당연히 안 된다. (절대로 따라하지 말자)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이건 그냥 무시했다.

성격이 난폭해져서 친구들이 다 떨어져 나간다. 금연 전에 내가 먼저 친구들과 거리를 뒀다. 금연 성공 후에 다시 연락하면 된다.

이유 없이 자다 깨서 운다. 이것도 어쩔 수 없다.

단 음식을 엄청 먹게 된다. 그냥 먹었다. 금연보다 다이어트가 더 쉽다. 그렇게 지옥 같은 반년 후에 나는 금연에 성공했다.


나를 이토록 독하게 움직이게 한 원동력은 순수한 공포였다. 가위로 손가락을 잘라내는 꿈. 나는 이것을 정신 분열의 초기 증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끊지 않으면 나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이 짓을 해야 한다. 나의 이 자멸감, 자괴감, 자책감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극한의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이 공포가 담배를 끊어내게 했다. 금연을 하면서 몸을 망가뜨리기도 했지만, 금연을 하지 않았다면 니코틴은 지속적으로 내 육체와 정신을 파괴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성공했다.

장하다. 김국주.


요즘은 좋은 금연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어떤 분들이 묻습니다. 금주를 할 생각은 없냐고.

네, 없습니다.






덧붙1.


저보다 더 오랜 기간 담배를 피워오셨던 울 아부지도 결국 금연에 성공하셨습니다.


아부지, 존경합니다.





덧붙2.


담배를 끊은 사람의 무덤에는 풀도 안 난다고 합니다. 글쎄요. 일단 담배는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시작했다면 평생 피던가 평생 참는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 흡연을 한 기억이 십년 전인데도 아직도 길가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코부터 반응합니다.

담배는 안 피지만 끊지는 못 했습니다.


그렇다면 금연과 다이어트, 뭐가 더 어렵나요?

저는 금연이 다섯배정도 더 어려웠습니다. 다이어트는 살을 빼는 것이지만 금연은 중독된 뇌를 들쑤시는 거니까요.

(다이어트 편은 10화에 있습니다)


그러니 주위에 금연을 도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몇 번 실패하더라도 격려해주십시오. 그분은 지금 내면의 하이드와 싸우고 계시는 겁니다.




덧붙3.


금연을 시도하시려는 분들이 묻습니다. 어렵냐고.

네, 만약에 어렸을 때부터 간접흡연에 노출이 되어있으셨던 분이라면,


 “네, 한 번 죽었다 생각하고 시작하십쇼.”


그러면 이런 항의가 들어오죠.


 “왜 겁을 줍니까?


겁을 주다니요? 저는 후두암에 걸리고도 담배를 피우는 분도 봤습니다만. 이 세상엔 금연에 성공하는 분들도 많지만 실패하시는 분들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일 당장이라도 담배 끊을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지요. 이 분들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금연을 우습게 보고 시작하지 마십시오. 금연은 뭘 하는 게 아니라 뭘 안 하고 버티는 거잖습니까. 그 정도 각오는 해야, 알고 시작해야 버틸 수 있습니다. 금연은 실제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길입니다. 네, 다시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내가 안 끊으면 내 자식이 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흡연은 내리물림됩니다. 간접흡연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금연, 결코 나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화는 기약이 없습니다.

김국주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벨리댄스라는 취미를 5년간 쉬게 됩니다. 2부에는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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