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운동 덕후다.
하루 종일 설사(첫 줄부터 드러워서 죄송합니다)에, 다리에 힘도 없다. 왠지 머리도 무거운 것 같다.
‘오늘은 운동 못 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15킬로짜리 바벨을 메고 백스퀏을 하고 나니 아픈 게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다. 나는 운동을 안 하면 몸에 이상반응이 오는 레알 운동 덕후다. 그런데... 날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체력은 좋았어도 체육은 싫어했다. 어느 날 체육선생님께서 ‘너는 몸 쓰는데 재능이 있으니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해보라.’ 고 하셨다.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샘, 제가 재능은 모르겠는데 지능이 딸리네요. 육사는 공부 잘해야 해요. 데헷.”
뭐...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제안을 거절한 진짜 이유는... 나는 운동이 싫었다.
그런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내 사랑 율군, 나의 오랜 연인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와 자녀 계획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혼 약속도 안 해놓고 자녀 이야기는 왜 했을까 싶지만, 뭐... 어쨌든 결국엔 결혼도 했도 자녀도 있으니... 그 순서 따위...
“자기야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
“나는 예쁜 딸이 좋을... 아니, 성별은 상관없어.”
오케이. 처음 나온 옵션이 진심인 거지?
(미안해요. 아무리 낳아도 딸이 안 나오네.)
“어떤 딸이요?”
“딸이면 국주 너 닮아야지.”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너랑 유전자를 섞는 이유가 뭔데요. 뭐가 나오든 잘생긴 너 닮아야죠.
그런데 그런 거 말고.
“자기야, 그런 거 말고 디테일을 말해봐요. 내가 태교 할 때 매일매일 빌어볼게요.”
“아... 그냥... 건강한 아기.”
아, 그건 모든 부모가 바라는 거잖아. 뭐 이런 교과서 같은 놈이 다 있지?
그때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내가 일방적으로 쫓아다녀서 성사된 인연이다. 하여 그가 나랑 왜 사귀는지,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아니, 어떤 여성상을 좋아하는지, 그의 이상형조차 몰랐다. 그래서 물었다. 아무리 오랜 연인이라도 순순히 솔직하게 대답해 줄리 없는 질문. 나에겐 숙제 같은 이 질문.
“근데... 오빠는 이상형이 뭐예요?... 좋아하는 여성상이요. 영혼 없는 교과서 같은 대답 말고, 진정 솔직한 대답을 원해요. (제발).”
그는 입을 꾹 닫고 말이 없었다.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저건 필시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단어들을 꾹꾹 눌러 담는 얼굴이었다. 내가 꺼내 주마.
“괜찮아요. 말해도 돼요. 나 이런 걸로 삐지고 그러지 않아요.”
그러자 그가 한참 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
그래요. 말해요.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요.
“... 근육 많은... 건강한 사람.”
아... 그렇군요... 근육.... 왓? 근육?
이 새ㅋ... 건강이 그런 뜻이었던 것이냐. 진정 이건 예상 못 했다. 근육질이라니. 그래, 내가 너를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교과서 같은 놈이라는 말은 취소! 그런데 나는 이 근육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형상을 말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근육질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
허, 뭘 망설여요? 밥 다 지어놓고 뜸 들이는 건가?
“에이... 여기까지 말했는데 시원하게 말해줘요.”
“스트레트 파이터 알아?”
와우! 너 설마... 춘리... 말하는 거니? 걔는 실존 인물도 아니잖아, 이 자식아. 하하. 내 남편감은 생각보다 더 또라이였다. 그리고 내 또라이가 왜 망설였는지도 이제 이해가 갔다.
당시 내 몸에 근육이라곤... 괄약근뿐이었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춘리는 못 되어도, 어디 가서 절대 꿀리지 않는 몸을 만들어보리다.
나의 자발적 강제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시도는 헬스였다.
이유는 그게 가장 저렴해서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뭘 알아야 선택을 하지 않겠는가. 사실 헬스는 글로 쓸만한 추억도 뭣도 없다. 여기저기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쇳소리에 대한 기억뿐이다. 물론 나도 제대로 할 줄만 알았다면 함께 화음을 넣었겠지만, 나는 그 비싼 기구들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나마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러닝 머신이었는데, 사용 방법은 이해했지만 사용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길바닥을 뛰어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돈 써가면서 돌돌 돌아가는 컨테이너 위에서 제자리 뛰기를 해야 하는 거지?’
지루해서 석 달만에 때려치웠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기구 사용법을 제대로 배우고 시작했다면 그런 오해들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뭘 하든 처음엔 스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덧붙1.
마흔에 몸짱이 되어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저 살만 빼는 거라면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근육을 만들면서 지방만 컷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15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랑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야, 나 개인 피티 받고 싶어요.”
“여보야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거 조금 비싸요.”
“여보야... 내가 그 정도 돈은 벌어주잖아?”
...... 뭔가 살짝 재수 없지만, 고마워요. 사랑해요.
덧붙2.
네, 제가 매거진을 또 만들었네요. 지금 있는 매거진들도 일정이 빡신데 말이죠.
이 매거진에는 마흔에 몸짱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어볼까 합니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지요. 결말은 저도 모릅니다. (실패하면 매거진을 삭제해야 하나 싶습니다.)
아, 그전에 관장님 허락을 먼저 받아야겠네요.
“저... 관장님... 관장님을 소재로 막 써도 되나요? 근데 제 글에 등장하면 뭐랄까... 이미지는 살짝 포기해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 흠... 지금 말고 좀 더 친해지면 해야겠네요.
허락받고 와서 피티 이야기 이어 쓰겠습니다.
다음 화는 ‘수린이의 수영 에피소드’ 가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