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이꺼....
“너는 저런 거 못 하지?”
남자 친구가 나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지하철 역 근처에 마련된 조촐한 무대 위에서는 30-40대 여성들이 댄스 공연을 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프로는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질문은 ‘너는 춤 못 추지?’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너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 같은 거 못 하지?’ 이 질문이었을 것이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저 한마디는 나를 춤의 세계로 풍덩 밀어 넣었다. 저 발언 때문에 화가 났다거나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분명 그 시작은 오기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저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게. 나도 저런 것을 할 수 있을까?’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면서 댄스 학원을 검색했다. 딱히 취향 같은 것은 없었기에 거리와 가격에 따라 골라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회사 근처에 댄스 학원이라고는 딱 하나 존재했다. 벨리댄스 학원.
나는 퇴근하자마자 그 유일했던 학원을 방문했다.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니 그 안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금색, 은색, 사파이어 색, 다이아몬드 색, 온갖 예쁘다 생각되는 건 다 가져다 놓은 듯한 의상들. 사방에서 나는 소리. 짤랑짤랑. 찰랑찰랑. 쿵짝쿵짝. 그야말로 찬란했다. 수강료를 물어보니 석 달치 금액과 한 달치 금액을 알려주셨다.
‘아, 그냥 석 달을 등록하라는 뜻이구나.’
그 자리에서 석 달치를 결제했다. 수업하는 모습을 한번 보고 결정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보면 망설여질 것 같아서. 수업을 듣고 가라은 말도 거절했다. 들으면 취소할 것 같아서.
어렸을 때부터 몸치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몸치, 박치, 음치 모두 해당됐다. 그래서 딱히 발전에 대한 기대심리는 없었다. 그저 이 경험을 즐겁고 엉뚱한 추억거리로 만들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댄스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3년 후, 나는 벨리댄스 강사 자격증이라는 내 삶에서 이색적인 자격증을 취득했다. 다시 3년 후, 나를 벨리댄스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 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그이와 똑 닮은 첫아이를 출산했다. 내 화려한 취미생활은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다시 벨리댄스를 시작한 것은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반년 후였다. 그때 둘째 아이는 기어 다니고 있었고 난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춤을 다시 시작했다. 그 아이가 지금 6살이니 재개한지는 한 4-5년쯤 됐으려나. 지금은 학원의 수강생 신분이 아니고, 소정의 수고비(?)를 받으며 공연하고 있다. 그리고 15년 전 내 남자 친구였던 그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이다. 그이의 호기심은 15년째 풀어주고 있다.
이제 그 15년간의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풀어보려 한다.
나는 무려 춤추는 엄마다.
채널예스에서 공모하는
<나도, 에세이스트>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채널예스 2020년 12월호에 실려있습니다.
이 글은 그 글을 조금 각색했습니다.
2화부터는 새로 쓰여진 글이 올라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