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원래 내 길이 아닌것을..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by 김국주


사람은 무릇 척추동물이다.


라고 나는 배웠다. 그런데 내 앞에 저 사람은 뭔가? 뼈가 없는 건가, 아니면 관절이 보통 인간보다 유독 더 많은 건가. 나더러 저걸 따라 하라고 하는 건가. 입 닫고 구경하라는 건가. 내 앞에 그 사람 아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배울 동작은 스네이크 암즈예요.”


와, 이름 한번 끝장나게 잘 지었다. 흐물흐물. 선생님 팔은 진정 뱀 같았다.

“자, 따라 해 보세요. 원, 투, 쓰리, 포!”


아, 따라 하라는 거였구나.


‘선생님, 저는 그... 투부터 동작이 불가능합니다. 저는 선생님만큼 관절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선처 부탁드립니다.’


이 말이 목구녕까지 나왔다가 기가 죽어서 도로 기어들어갔다. 내 앞에 있는 선생님은 찰랑찰랑한 긴 머리카락에 한 손바닥에 쥐어질 듯한 허리, 부서질 듯한 가녀린 어깨, 그리고 바늘도 안 들어갈 듯한 튼튼한 허벅지 근육의 소유자였다. 아름다운 얼굴에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뿜 풍기고 있었다. 마치... 어렸을 적 오락실에서 봤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춘리 같았다. 덤비면 큰일 날 것만 같은 그런 아우라. 나는 선생님께 질문이나 민원은 삼가기로 했다.


음악과 함께 선생님의 골반이 다른 부위와 완벽하게 분리된 것 마냥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좌, 우. 골반 양 끝에 끈이 달려서 하늘에서 끌어올리는 것처럼 골반을 들어 올려주세요. 원, 투...”


선생님. 하늘에 끈이 안 달렸는데 어떻게 달린 것처럼 합니까. 라는 말을 또 삼키고 최선을 다해서 삐걱거려 보았다. 거울 속의 비친 나는 마치 접시 위에서 필사적으로 파닥거리는 죽기 직전의 산 낙지 같았다. 아, 소주 땡긴다.


“회원님,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상체는 고정시키세요. 키는 움직이시면 안 되어요.”

‘그래요. 선생님, 당연히 이렇게 하는 거 아니겠지요.’


“회원님. 골반을 움직일 때는 큰 천으로 하체를 가렸다 생각했을 때 상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야 해요. 다시 따라 해보세요.”


‘그래요, 저는 그럼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태어나보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못 한 채 첫 시간을 마쳤다. 아름다운 선생님 눈에도 신규 회원인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다가오셔서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회원님, 첫 시간인데 잘 따라 하시네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선생님.’

나는 이 말도 눈물과 함께 꿀꺽 삼키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드렸다.



고등학생 때였다. 우리 학교는 드물게 무용 시간이 있던 학교였고, 슬프게도 그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히스테리컬 한 무용 선생님 덕분에 무용 시간은 아이들 모두에게 최악의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만 되면 웃픈 전쟁이 벌어졌다. 제일 먼저 무용실에 도착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자리, 즉 맨 뒤 구석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사활을 걸고 복도를 전력 질주했다. 그때만은 학생 주임 선생님이고 뭐고 없었다. 학주보다 무용이 더 무서웠다. 늘 낙오자였던 나는 항상 맨 앞 중앙 자리를 차지했다. 내 사정이야 어떻건 간에 맨 앞 중앙에 박힌 산 낙지 같은 내 모습은 우아한 무용 선생님 눈에 꽤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루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선생님께서 분노의 포효를 하셨다.

“야!!! 너!! 그래 너!! 오른쪽 왼쪽도 구별 못 하는 너! 몸치인 주제에 맨 앞에 서지 좀 마! 제발! 그 따위로 할 거면 내 눈에 안 보이는 자리로 가서 하란 말이야! 너 일부로 그러는 거지?”


아무리 둔한 나라도 선생님의 이 말은 적잖이 억울했다. 나라고 이 명당자리에 서고 싶어서 선 것은 아니었으니까. 억울한 마음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내가 이 자리를 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달리기에서 져서 저 뒤의 좋은 자리를 놓친 것뿐이라고.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생략하겠다. 이야기 하기엔 다소 폭력적이니까.


고3이 되어서 좋았던 점 하나는 무용 시간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나는 춤을 춰 본 적도 없었다. 재능도 없었다. 당연히 이 방면으로 칭찬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발전에 대한 기대심리는 그야말로 제로였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시작했는 데도 불구하고 내 상태는 상상 이상이었다. 못 해도 이렇게 못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벨리댄스 학원 생활은 그야말로 좌절 모드였다.


‘그래, 어차피 등록한 거... 딱 석 달만 해보고 그만 두자.’


거울로 죽어가는 산 낙지를 구경한 지 얼추 두 달 반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회원님들, 석달 후에 우리 학원에서 연말 페스티벌을 할 거예요. 큰 강당을 빌려서 울 회원님들의 공연을 할 겁니다. 꽤 크게 할 예정이니 가족이나 친구들 맘껏 초대하셔도 되어요. 회원님들 공연 연습이 어렵진 않을 거예요. 혹시 함께 하실 회원님 계실까요?”


나는 또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고 손을 번쩍 들었다. 나의 뇌야, 학습 능력 좀 챙기시길...


그렇게 나의 밸리 생활은 석 달이 더 연장되었다.




석류가 있는 정물 by 그림작가 손아영

이 글은 제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은 창작입니다.


산 낙지 묘사는 밸리댄스를 처음 접한 친구의 표현을 빌렸습니다. 친구에게 무한 감사를.


나의 밸리댄스 짝꿍이자, 멋진 그림을 하사하신 만능 엔터테이너 손아영님에게도 무한 감사를.




3화는 다음주 주말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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