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제 2의 인격

지킬앤 하이드.

by 김국주


아름다운 선생님께서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셨다.


첫 번째 인격은 정규 수업시간에 발현되는 상냥한 인격. 그리고 두 번째 인격은 공연 연습 시간에 발현되는.... (모자이크 처리) 인격.


학원 수강생들의 공연 성과는 곧 선생님의 실적과 연결된다. 그러니 지금이야 나도 선생님들이 수강생들의 학예회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저 처음 겪는 내 앞의 저 다중이가 마냥 공포스러웠다. 인격을 넘나드는 그 변화의 양상은 지킬 앤 하이드 급이었다.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들 웃어요! 지금 안 웃으면 공연할 때는 그 반의 반도 안 나와요!”


아직까지는 첫 번째 인격이다.


처음 선생님께서 공연할 안무라고 보여줬을 때만 해도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줄 알았다. 어쩜 저렇게 사뿐사뿐 예쁘게도 걷는지....

지금 그 안무를 열일곱 번째 반복시키는 선생님은 하데스였다. 저승의 지배자.


사진을 찍는 짧은 순간, 단 3초도 웃는 얼굴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내가 지금 한 시간째 억지로 웃고 있다. 웃는 얼굴 상태로 고정 스프레이를 뿌리고 싶었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선생님, 이렇게 얼굴 근육을 쓰면 얼굴살도 빠질라나요. 이런 잡생각을 하며 정신 나간 여자처럼 실실 쪼개고 있는데 아름다운 선생님 말씀하셨다.


“회원님, 지금 웃음이 나와요? 아직 덜 힘든가 봐?”


하, 젠장, 두 번째 인격이다.

당신의 첫 번째 인격이 웃으랬어요.


“연습 두 번 추가에요. 웃으면서 나갈 생각 하지 마세요.”


아, 당신의 첫 번째 인격이 웃으랬다고요.

한 달 전으로 돌아가서 페스티벌에 나가겠다고 지껄인 내 주댕이에 박음질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극심한 근육통으로 맥주 없이는 잠들 수 없던 나날이 계속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 날따라 아름다운 선생님께서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회원님들, 공연할 때는 춤도 중요하지만 의상도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해 봤는데 한 번 봐주세요. 나 옛날부터 이런 거 되게 하고 싶었거든요.”


뭐라구요? 선생님께서 디자인하셨다고요? 선생님의 어릴 적 꿈을 이런 식으로 실현시키지 말아주세요. 라는 말이 목구녕까지 나왔지만 삼켰다. 오랜만에 잠든 그 녀의 두 번째 인격을 다시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럼 한번 볼까?


“요즘은 이런 디자인이 유행이에요, 여기 허리에 사선 끈 보이죠? 이게 또 허리를 날씬하게 보여주거든.”


오호,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정말 날씬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회원님들, 입고 싶은 색상을 골라주세요. 겹치지 않게. 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


선생님, 색상 통일하면 안 되나요? 굳이 독수리 오형제처럼 나가야 하나요?

라고 생각은 했지만,


“네, 그럼 저는 빨강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왜냐면 독수리 오형제에서도 빨강이 주인공이니까. 어차피 반항 못 할 거, 토 달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복종하자.

우리도 멋있을 수도 있잖아. 독수리 오형제처럼.


그렇게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가 되었고, 충격에 빠져 미처 색상을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은 은색과 금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은갈치 아니, 금도끼 은도끼냐고...


골라놓은 의상이 몹시 마음에 드신 아름다운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의상은 제작하는 데는 한 이주일 걸려요. 우리 이젠 액세서리를 골라야 해요. 최대한 큰 걸로 고르세요. 큰 게 아름다운 겁니다.”


아름다운 선생님의 흔하지 않은 취향에 맞춰 최대한 큰 걸로 골라보았다. 핸드폰으로 엄지손톱만 한 큐빅이 달린 목걸이를 보고 있자니 어깨너머로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회원님, 그거 너무 작아요. 그리고 목걸이, 귀걸이, 반지, 팔찌. 발찌, 머리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착용하세요.”


와, 코뚜레는 왜 빼세요. 선생님, 우리 그 금속들 다 짊어지고 춤은 출 수 있는 거죠?


“속눈썹은 제가 선물해드릴게요, 회원님들.”


아니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그렇게 불안함과 설렘과 빡샘이 공존하는 2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의상과 액세서리가 도착했다. 젠장.


날씬해 보인다면서요, 선생님.


허리를 날씬하게 보여준다던 그 사선 끈은 내 허리살에 쏙 들어가서 보이지를 않았다. 허리살의 접힌 부분만 한 군데, 아니 양 옆으로 두 군데 더 늘었을 뿐이었다. 마치 돼지고기를 싼 끈...

아니다. 거기까지만 하자.

이건 아니다 싶어 아름다운 선생님께 따지려고 고개를 홱 돌린 순간 나와 똑같은 의상을 입은 선생님이 보였다. 인어 허리처럼 미끈한 허리에는 사선 끈이 흐를 듯 말 듯 걸쳐져 있어서 허리가 더 여리여리해 보였다.


아, 그렇구나. 내 허리가 문제였구나. 내가 틀려먹은 거였구나. 그렇지. 애초에 날씬하지 않은데 날씬해 보일리가 없지. 나는 묵묵히 고개를 원위치시켰다. 그리고 함께 온 액세서리를 착용해보았다.

이건 마치 ... 주술사 같았다.

벌건 옷은 나를 한 층 더 돼지고기처럼... 아니다.

그리고 호두알만 한 큐빅의 목걸이는 칼을 차고 있는 느낌이었다. 낙타 같은 속눈썹은 내 시야 윗부분의 반절을 가렸다. 그리고 무게 때문에 눈꺼풀이 자꾸 내려가서 안 그래도 작은 눈이 한층 더 작아 보였다. 한마디로 눈이 떠지지를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거울을 보면서 생각했다. 빡세게 연습하자. 이렇게 된 이상 기댈 건 실력밖에 없다. 선녀 같은 걸음으로 사뿐사뿐 돌아다니시면서 이 사태를 관망하시던 아름다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회원님 너무 예쁘세요. 잘 어울려요.”


와, 우리 다중이 선생님께서 이렇게 또 전투 의지를 불태워 주시네.


그래요. 외모는 글러먹었으니 연습이라도 빡세게 할게요.






춤추는 나 by 그림 디자이너 손아영


손아영 그림작가님,

날씬하게 그려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저런 몸매 가져보는 게 평생소원이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지만,

등장인물은 창작입니다.

특히 인물의 성격 묘사는....

그래요, 다중이는 저를 묘사한 겁니다.

저에게 잠깐 배우셨던 분들, 그땐 죄송했습니다.



4화는 다음 주 주말에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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