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일곱 살, 허은미 글 / 오정택 그림, 양철북
“하늘의 별만큼, 들의 꽃만큼 수많은 일곱 살이 있지만 진정한 일곱 살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진정한 일곱 살은 앞니가 하나쯤 빠지고, 음식도 골고루, 스피노사우루스를 그릴 줄도 알고, 애완동물도 잘 돌봐요.
또 마음이 통하는 단짝 친구가 있고, 양보도 하고, 용기도 있어요. 자기 집 주소와 전화번호도 외우며, 산타 할아버지도 실수한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혼자 잘 수도 있지요.
물론 진정한 일곱 살이 아니면, 진정한 여덟 살이 되면 되고, 진정한 아홉 살이 되면 되고, 진정한 열 살이 되면 되어요!
이 책은 만보가 일곱 살이 되면 꺼내어 읽어 주려고 책장 맨 위칸에 꽁꽁 숨겨 두었다. 그러나 키가 훌쩍 자란 만보가 의자를 밟고 서서 책을 꺼내오는 바람에 여섯 살에 읽어 주고야 말았다. 작가의 말속 작가님의 아이처럼 만보는 ’진정한‘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역시 난 진정한 여섯 살이야.‘ 하면서 말이다.
내일이면 일곱 살이 되는 만보에게 가장 먼저 읽어 주고 싶은 첫 책이라, 올해의 마지막 그림책으로 골라 보았다. 정말로 진정한 일곱 살을 맞이하는 만보가 단단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진정한 일곱 살>은 바야흐로 무려 내가 스물일곱 살 시절에 함께 일하던 선배에게 선물 받은 그림책이다. 직장 생활 4년 차, 아마도 대리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던 때였다. 밀려드는 업무와 성향이 맞지 않은 상사 때문에 화가 엄청 많던 시절이었는데, 그나마 함께 일하던 선배들이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들이라 견디던 시절이었다. 나의 화와 짜증을 그저 귀엽게 보아 주고, 커피도 사 주고, 밥도 사 주던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20대를 무사히 보냈던 것 같다.
아마도 스물일곱 살 언제쯤에도 화가 잔뜩 나 있었던 것 같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선배가 선물로 그림책을 주었다. 그림책에는 장면마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진정한 스물일곱 살’에 대해 적힌 귀여운 메모였다.
진정한 스물일곱 살도 많지 않아요.
진정한 스물일곱 살은 쿨하게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진정한 스물일곱 살은 애완동물과 이별해 본 적이 있어요.
진정한 스물일곱 살은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올 때까지 놀거나, 공부하거나, 일해 본 적이 있어야 해요.
진정한 스물일곱 살은 폭탄주 제조법 하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해요.
진정한 스물일곱 살은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친구들에게 연락할 수 없어요. 번호 몰라요.
2013년 진정한 스물일곱 살이 되길 바라요!
메모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책 속에 꼭꼭 붙여 두었는데, 만보와 읽으면서 면지 쪽에 메모를 옮겨 두었다. 그러다가 이 책에 대해 글을 쓰려고 다시 메모를 읽는데, 그만 눈물이 살짝 고이고 말았다. 모든 기억이 미화되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진 것이다. 종로의 수많은 맛집을 함께 누비던 동료들의 얼굴도 떠오르고, 항상 나를 아기처럼 대해 주던 품이 넓던 선배들도,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말 안 통하는 과장님도, 종각역의 쿰쿰한 냄새까지.
지금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선배지만, 그때는 많이 의지했고 엄청 어른처럼 느껴지던 선배였다. 과장님에게 말도 안 되는 피드백을 받고 나오면 둘이 씩씩거리며 커피를 마시러 나가기도 했었는데. 어쩌면 가족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덕분에 지금까지도 내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늘 응원해 주고, 기대해 주고, 좋아해 주던 멋진 선배들! 정말 고맙고, 존경한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진정한 스물일곱 살을 훌쩍 지나서, 이제 진정한 마흔 살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자란 나의 아이가 곧 진정한 일곱 살이 된다. 내일 밤 멋지게 한 살 더 먹은 어린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 것을 상상하며 그림책을 다시 덮는다.
카테고리: 창작 그림책 (국내)
추천 연령: 7세 - 진정한 일곱 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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