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점에서 01

엄마가 될 결심

by 김영


대단한 꿈을 꾸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도 앞으로 뭔가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내가 더 성장하기에는 능력 부족인지, 체력 부족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아무튼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너무 세게 압축적으로 내달렸더니, 지칠 대로 지쳐서 그냥 뒤로 발라당 자빠져 버리고 싶기도 했다. 번아웃인지, 삼진아웃인지 그라운드를 떠나고 싶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은 대단하지 않았다. 일에 빠져 몸을 혹사시켰더니 자궁에 적신호가 켜졌고, 어쩌면 엄마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내가 언제까지 젊고 건강한 자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임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으로는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생 그래프의 상향선을 내달렸다. 안정적인 남편을 만나서 첫 퇴사를 감행했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남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밖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남편에게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는 것은 어떨까. 청춘을 보낼 때 엄마가 되는 시간을 바라거나, 엄마가 되는 날을 상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막연히 엄마가 될 수도 있겠지 했지만, 그렇게 원하지는 않았다.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언니의 고달픈 날들을 함께 겪으며 엄마가 되는 일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야겠다고 다짐했다.


언니는 딸 쌍둥이를 낳았는데, 우리 엄마를 비롯해 온 가족이 아이들을 함께 돌봤지만 육아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언니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둥이들이 두 돌이 채 안 되었던 때였다. 그때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상태여서 당장 돌아올 수가 없었다. 언니 병실에는 형부가 남기로 하고, 내가 둥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6시에 맞춰 칼퇴하겠다고 하자, 팀장님은 조금 어이없어했지만 보내 주기는 했다. 퇴근 후 부랴부랴 둥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서 언니 집에서 저녁을 해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정리하고 나니 밤 열두 시였다. 밤새 둥이들이 이불을 걷어차는 바람에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새벽같이 둥이들이 깼다. 일어나자마자 차례대로 응가를 해서 씻기고, 아침을 먹이고, 조금 놀다가 또 점심을 먹이고…… 병원에서 형부가 집에 돌아와서야 육아가 끝났다.


아마 나는 그날 결심했던 것 같다. 엄마는 조금 나중에 되기로.


남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안 하게 해 주었다. 자녀 계획 역시 내 뜻에 따라 주었다. 어느 날, 긴 미팅이 끝난 뒤 화장실에 들렀다가 변기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하혈을 했다. 오랜만에 간 산부인과에서는 자궁에 작은 혹 - 근종이 아닌 - 이 있어서 생리양이 늘어난 것 같다고, 간단한 시술을 하자고 했다. 수면 마취를 하고 레이저로 혹을 떼어내는 것이라 정말 간단했다.

그런데 시술 후 생리를 두 달쯤 건너뛰더니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통증이 찾아왔다. 난생처음 겪는 통증에 반차를 내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산부인과로 갔다. 의사는 시술 후에 부작용으로 경부가 유착되었다고 설명하더니, 자궁에 피가 고여 있어서 바로 뚫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유착된 경부를 생으로 뚫고 두 달치 생리를 쏟아내게 했다. 처치가 끝나고 간호사가 대기실에 나를 데려다주더니, 많이 아플 수 있으니까 통증이 줄어들면 움직이라고 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 아팠다. 혼자 엉엉 울다가, 이제 임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연락했다. 이제 임신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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