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탐구 3

기획자가 좋은 이유

by 김영

기획: 일을 꾀하여 계획함

기획자: 어떤 일을 꾀하여 계획하는 사람.


'기획자'는 뭐 하는 사람일까? 회사마다 있는 기획팀, 기획자. 그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기획팀에서 일하는 자신도 모를 수도 있다. 자기 일에 대해서 탐구를 해 본 적 없다면 말이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 그다음에 입사한 회사는 좀 더 작은 규모의 교육 출판사였다. 두 번째 회사는 문제집과 교육 활동 프로그램에 필요한 교구, 교재를 출판하는 곳이었다. 업무 강도나 업무량은 매우 적당해서 심심할 정도였으나, 일에 영 흥미가 안 생기고 어딘가가 계속 불편했다. 입사 3개월째에 그만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무엇이 문제였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쁨을 느끼고 싶은데, 이곳에서는 기존의 것에 더하거나 고치는 일뿐이라, 직업적 만족도가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어쩌면 직업을 바꿔야 할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러다 세 번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세 번째 회사이자,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회사는 그 당시에는 교육 앱 사업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이었다. 교육 앱이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었고, 그중 출판 사업을 확장하게 되어 새로운 인력이 필요했다. 나는 도서, 완구를 기반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에 채용되었다. 세 번째 회사로 이직하면서 단행본 출판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을까 했는데,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나의 경험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당연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자신 있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있었는데, 사실 회사가 회사지 별다를 것이 있을까 했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 보고 나서야, 스타트업이 빠른 성장을 위한 압축적인 업무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압축적인 업무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개인이 맡아야 하는 역할이 많다는 뜻이다. 가령 내가 도서 편집자로 입사했지만, 편집자 역할만으로는 참여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없다면 다른 역할도 자처해야 한다. 실제로 내가 3년간 교육 프로그램 출시를 위해서 한 일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프로그램 커리큘럼 개발과 교육용 도서, 완구 기획 개발은 이전 회사에서도 늘 했던 일이다. 그러나 제작 및 물류, 홍보, 판매 등의 일은 이전 회사였다면 제작팀, 물류팀, 마케팅팀, 영업팀에서 했을 것이다. 스타트업에는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이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팀에서 이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한다. 콘텐츠에 들어갈 인형 탈을 만들기 위해 인형 탈 업체를 찾아서 직접 의뢰해야 한다. 또 완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해외 완구 제작사를 만나야 한다. 팝업 스토어를 연다고 치면, 새벽까지 스토어 설치도 직접 해야 한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판매를 해야 한다면, 내가 방송 기획부터 방송 진행까지 해야 한다. 홈쇼핑 판매를 한다면, 홈쇼핑 라이브 당일에 세트 설치도 해야 한다. 서포터스가 필요하다면? 직접 서포터스를 인형 탈을 쓰고 만나러 가야 한다.

나는 이때 내 직업이 편집자에서 기획자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생각한다. 개고생을 했지만, 지나고 나니 뷰티 필터가 낀 것처럼 그 시절의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내가 직업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경험하고서 나의 직업인 '기획자'를 이렇게 정의했다.


Creator 창작자 / Planner 설계자 / Project Manager 프로젝트 관리자 / Director 연출자 / Editor 편집자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창작자, 그 새로움을 일로 만들기 위해 설계하는 설계자, 일을 관리하는 관리자, 일을 시각화하는 연출자, 결과를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 편집자. 기획자는 이 모든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일을 시작하고, 일이 끝날 때까지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기획자인 것이다.

나는 기획자라는 나의 직업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세상에 없는 것을, 혹은 원래 있던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모여 일하는 것.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간 친구들에게 회사 욕은 했어도, 일이 재미없다고 한 적은 없을 정도로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는 다시 작가를 꿈꾸게 되었을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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