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사라지더라도
여름이 되면 제가 가끔 산책하는 아주천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해집니다. 겨우 세 달 만에 자라난 잡초들이 하천 주변을 덮고, 발밑까지 밀려올 정도로 생명력이 넘칩니다.
그런데 그 잡초들은 어느 날 아침, 공무원들의 예초기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사라져버립니다. 한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거세게 자라났던 것들이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존재도 어쩌면 그 잡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어쩌면 잡초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매일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그리며 삽니다. 백 년, 천 년을 살 것처럼 계획하지만, 정작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남긴 흔적을 예초기로 밀어버리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쉽게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 절망을 가져다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절실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종종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얼굴을 남기는 것도, 업적을 남기는 것도 모두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제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숨이 멈출 때, 두 번째는 마지막으로 그를 기억하던 사람마저 세상을 떠날 때 말입니다. 그렇다면 글이라는 것은 어쩌면 두 번째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글을 씁니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제가 살아 있음을, 제가 느끼고 사유했던 모든 찰나들을 남기고자 합니다.
이 글이 수천 명에게 읽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곳에 하나의 문장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누군가의 마음과 어딘가에서 교차하고, 잠시라도 "아, 나도 그런 적 있었지" 하는 공감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연결의 행위입니다.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와 만나는 일이며,
나의 내면을 타인의 내면과 잇는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라질 존재입니다. 하지만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서로를 기억하고,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는 삶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이 글도 예초기에 밀리듯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디지털 공간도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 문장 하나하나가 나라는 존재의 살아 있었음을 조용히 증명해주기를 바랍니다.
아주천의 잡초들이 다시 자라나듯, 우리의 이야기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