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과 비문증, 그 후의 삶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주변이 조용하면 귀 안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요할수록, 깊은 밤일수록, 되려 더 선명하게 울렸습니다.
또한 눈앞에는 언제나 무언가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실처럼 가느다란 선들, 점처럼 흔들리는 잔상들. 나만 보이는 환영 같았지만, 분명 존재했습니다. 병원에 가니 비문증이라 했습니다.
위험한 건 아니지만, 치료법도 딱히 없다고 합니다.
이제 30대 중반입니다. 사실 누구나 '작은 고장들'이 생기는 게 이상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작음'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몰랐습니다. 아니, 무시했습니다. 밤새 게임을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10대.
술과 스트레스로 지친 20대 후반. 그 시절의 저는 '내 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제 몸은 묵묵히 참아주지 않습니다. 눈은 더 자주 피로를 호소하고, 귀는 과거의 소음을 되갚기라도 하듯 낮에도 고요 속에서 울립니다. 제 안의 기관들은 여전히 '정상'이라고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불편합니다.
뭔가가 분명 달라졌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참으로 정직한 기록관 같습니다. 과거의 모든 선택들이 세포 깊숙이 각인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그 흔적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은 단순한 통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회상이고, 예고입니다.
과거 습관이 미래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타임캡슐 같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건강은 언제나 배경음악처럼 있었습니다. 없어지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배경이 사라지니 비로소 들립니다. 그토록 소중했던 '당연함'의 무게가.
건강이란 어쩌면 투명한 유리창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깨끗할 때는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다가, 금이 가거나 흐려져야 비로소 그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에게는 비문증과 이명이 찾아왔지만, 누군가에게는 허리 통증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장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장 약한 고리는 다릅니다. 그리고 그 고리가 결국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리듬이 됩니다.
모두 알아야 합니다. 20대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30대부터 '신체를 어떻게 관리했는가'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 진짜 기준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몸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어떤 이의 무릎은 과거의 운동 부족을, 어떤 이의 눈은 깊은 밤의 과로를 기억하며 신호를 보냅니다. 이는 결함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증거입니다.
저는 지금도 완벽하게 건강한 몸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조금 더 자주,
제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새기게 됩니다.
음식을 더 천천히 씹고, 소리에 민감해진 만큼 더 조용한 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예전에는 귀찮았던 산책도, 지금은 감사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작은 고통이 저를 조금 더 사려 깊게 만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불완전함이 저에게 완전함의 의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귀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가, 오히려 제 삶에 더 큰 고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눈앞에 떠다니는 점들이, 정작 더 소중한 것들을 보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당신도 혹시, 몸 어딘가에서 '작은 신호'를 받고 있다면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신호는,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당신 자신을 더 사랑하라는 말일지도 모르니까요.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이,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자각으로 이끄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