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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Feb 28. 2022

'자존감'은 낮은데 '자신감'이 높았던 이유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 보다 착각하는 것이 더 쉽다.

여보 일을 잘하는 건 알겠는데, 자만하면 안 돼요. 겸손해야 오래가요!(ㅎㅎㅎ)


아내는 직진하는 나에게 제동장치 역할을 해준다. 내가 너무 추진하려고 할 때 아내가 말리면 딱 좋은 속도에 일이 진행된다. 최근에 온라인으로 '내면아이 셀프치유'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아내의 예상보다 3개월 일찍 열었다. 아내는 조금 더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일단 시작해야 일이 진행되고 방향도 정해진다고 했다. 나는 종종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하나씩 놓치면 '아내 말을 잘 들을걸!' 하고 후회한 적이 많다. 요즘은 어느 정도 일을 완성하고 아내에게 꼭 조언을 구한다. 


최근 재독 하고 있는 책 <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에서 나를 잘 나타내는 내용을 찾았다.

과대성, 과대 자아를 가진 사람은 어디를 가든 '경탄'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경탄을 꼭 필요로 하거나 경탄 없이는 살 수가 없다. ... 이것들이 무너지면 야단이 난다. 곧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재앙이 덮친다.           
                                                 -앨리스 밀러, 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 p.71-


'과대성'은 현실을 부정하는 꼴이다. '과대 자아'는 현실보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지금의 나로 인식하며 산다. 쉽게 말해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다. 현재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기엔 너무 고통스럽다고 느꼈던 걸까. 나는 하는 일마다 최고로 잘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일을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책했고, 상급자가 나를 형편없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동안 이런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잘해야 한다. 나는 잘해야만 한다.


매 순간 이렇게 자기 암시를 했다. 의식해서 새기지 않으면 삶이 무너질 것 같이 두려웠다. 나는 주어진 일을 곧 잘 해내는 편이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을 잘 못한다거나 유두리가 없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직장마다 관계의 문제는 항상 있었다. 잦은 실수가 있었고 사람을 오해하는 일도 있었다. 나에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항상 상대방과 상황을 지적하며 탓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결혼하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의 말을 듣고 내 자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보 굉장히 내 눈치 많이 보는 것 알아요? 여보는 생각보다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요."


그렇다. 자존감은 낮으면서, 어떻게 자신감이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을까? 나의 자신감 안에는 과대성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쌓인 내면의 고통을 피하려고 허상을 그리며 살아왔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암시해야 했다. 변화를 위해 책을 읽고 머리로 이해하면 내가 그렇게 변한 줄 알았다. 또 내 직업이 곧 나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일을 잘하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일을 그르치면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자존감이 내려갈 때는 아내가 나에 대해 사실을 말할 때다. "공감능력 없는 사람,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일 중독인 사람, 혼자 결정하는 사람, 혼자 살기 딱 좋은 사람." 인정하기 싫지만 맞다. 내 밑바닥이 일찍 드러나서 참 다행이다. 과대성을 가지고 구름에 떠다니는 것처럼 살았다면 내 주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결혼생활은 내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여줬다. 그동안 내 보잘 것 없는 모습, 불안한 내면을 그대로 인정하기까지 수없이 열등감은 폭발했고 아내가 쏟은 눈물이 많았다. 내가 이상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지금의 나를 좀 안아줘야겠다.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는 만큼 내 자신도 좀 알아줘야겠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자신감이 나온다. 진짜 자신감은 허세 부리고 애쓰지 않아도 건강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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