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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Jun 07. 2019

부모님 사진을 찍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부모님 사진도 많이 찍어두세요.”

이제 막 2세를 출산하여 아기 사진을 열심히 찍던 내게 직장 동료가 한 말이다. 그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미처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두 분 얼굴을 보려고 핸드폰을 뒤졌는데, 사진이 한 장도 없더란다. 그제야 그동안 부모님 사진을 찍어두지 않을 걸 후회했단다. 그러니 나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살아계실 때 많이는 아니더라도, 몇 장이라도 찍어두라고 가슴에 담아둔 말을 건넸다. 일부러 “어머니, 아버지, 함께 사진 찍어요”라며 찍으면 어색하니까 아기랑 놀아 주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으라고.

순간 진도 10의 강진이 머리를 강타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모님께 매우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죄송한 마음이 들고 가슴이 미어졌다. 내 핸드폰에도 부모님 사진이 한 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사진이 한 장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떳떳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너무 부끄러웠다. 내 기억에 이날 이때까지 부모님 속을 썩여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부모님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핸드폰에 부모님 사진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내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을 부모님께 저지른 듯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솔로일 때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셀카를 엄청나게 찍었다. 지금 보면 예전 모습이 참 촌스럽고 볼 때마다 민망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예전 모습을 남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셀카를 찍지 않았으면 내 예전 모습을 볼 수  없을 테니까.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는 조카 사진을 엄청나게 찍어댔다. 연애할 때는 아내 사진만 연신 찍었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모님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두 분 사진은 찍은 적이 없다! 핸드폰을 사용한 이래, 시간을 내고 마음을 써서 일부러 찍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럴 수가...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사진을 어떻게 단 한 장도 찍지 않았을까. 아니, 부모님 사진을 찍을 생각을 어찌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나는 내가 불효자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불효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한 장 안 찍었다고 불효자일 수 있겠냐마는, 그만큼 부모님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니, 불효자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내겐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집마다 앨범이 있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보관하려면 앨범이 필요했다. 본가와 처가에도 앨범이 있다. 나와 아내의 어릴 적 모습이 그 앨범 속 사진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한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집에 앨범을 구비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그 이전부터 앨범은 구시대를 회상하는 감성품이 되었다. 스마트폰보다 먼저 탄생한 디지털카메라가 필름 카메라를 시장에서 밀어낸 후부터 말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 된 후 사람들은 더 이상 인화한 사진을 보관하지 않는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나 클라우드 등에 몽땅 저장하고, 필요할 때 필요한 사진만 인화한다. 이제는 앨범과 인화한 사진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그 나름의 독특한 낭만과 감성을 아무도 누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앨범의 낭만과 감성을 누리지 않는 게 대수랴. 앨범이 없다고 해서 사진을 찍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찍은 사진을 감상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나, 추억할 만한 혹은 남기고 싶을 만한 장면이 보이면 찍는다.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 사진을 더 많이 찍는다. 예전에는 필름이라는 제약 때문에, 필름 값이 꽤 비싸서 정말 신중하게 사진을 찍었다. 필름 한 통으로 고작 24장이나 36장밖에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찍을 장면을 고르고 골라서, 정말 남겨야 할 만한 장면만 찍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제약이 사라졌다. 핸드폰 용량이 되는 한 무한정 사진을 찍는다. 핸드폰 용량은 한정되어 있지만, 용량이 다 차면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클라우드에 사진을 옮기니 아무 문제없다. 그야말로 사진을 무한정 찍을 수 있다. 그러니 누구도 굳이 사진을 신중하게 찍지 않는다. 카메라에 멋진 장면만 골라 담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고 아무 장면이나 닥치는 대로 우겨 담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삭제하고, 다시 마음에 들게 찍는다. 이제는 특별하고 멋진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는 게 아니라, 어떤 장면, 어떤 상황이든 고민하지 않고 찍는다. 어떤 장면이든 특별하고 멋진 장면으로 만들어서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은 이제 남기고 싶은 멋진 장면을 담는 감성 작품이 아니라, 무엇이든 특별하고 멋진 모습으로 만드는 마법의 결과물이 되었다.

스마트폰의 보급 덕분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진에 담는다. 볼품없는 장면도 멋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카메라로 무엇이든 찍을 수 있고, 무엇이든 멋진 모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어찌 나는 그동안 부모님을 찍을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내 인생에서 부모님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잘못한 일인데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아내가 애인이었을 때 아내와 함께한 모든 것을 사진에 담으려고 그토록 기를 쓴 나이다. 결혼 후에도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것을 찍으려고 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기가 태어나니 아이의 모든 모습을 담으려고 한다. 그런데 어찌 결혼 전까지 평생 함께한 부모님은 외면했을까? 나는 정말 불효자다.




“아버지, 어머니/장모님, 장인어른, 함께 사진 찍어요.”

인제 와서 갑자기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자기?”라고 말씀하실 게 뻔하니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얼굴이 보고 싶어 지면 보려고요.”

이렇게 말할 수도 없다. 듣기에 따라 빨리 돌아가시라는 저주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도 너무 슬픈 말이니까.


“그동안 저희 (부부) 사진은 열심히 찍었는데 부모님 사진은 찍지 않은 게 왠지 죄송하게 느껴져서요”

이렇게 적당히 둘러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직장 동료의 조언대로 아기를 안으실 때 찍어두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 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앞으로 부모님 사진을 내 사진첩에 차곡차곡 담아 두련다. 훗날 아기가 크면 모아둔 사진들을 보여주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너를 이렇게 예뻐해 주셨다고 말해주어야지. 내 눈에 비친 이름답고 소중한 모습들을 남겨두는 것은 아이에게 내가 전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자, 부모님에게는 (보이지 않는) 효도가 되리라. 가장 좋은 건 직접 효도하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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