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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May 31. 2019

어른이 되려면

‘어른’들은 말한다.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말이다. 애를 낳으면 인생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게 되고, 그 무게만큼 책임감도 늘어난다는 말이다. 그 책임감을 짊어지어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었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생각해주지 않는다. 21살이 되면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하지만 누구도 21살 청년에게 어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21살 청년은 그저 법적으로 성인일 뿐이다. 오륙십 살이 넘으면 어른이라 부를까? 그렇지도 않다. 나이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해야 어른이라고 불러준다. 말과 행동이 어른스럽지 않은 사람에게 누구도 어른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어른은 천근 쇳덩이 같은 인생의 짐을 짊어진 사람을 뜻한다. 그 짐을 짊어질 만한 정신적 완력을 갖은 사람을 가리킨다. 인생의 짐을 어떤 경우라도 내려놓지 않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을 어른이라고 말한다. 자기 말과 행동을 세밀하게 살피며, 충동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조절하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자기 일을 책임지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어른이 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도 이제 어른들 말씀대로 어른이 되었다. 2세가 생기니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더 많이 느낀다. 그전까지는 인생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적었다. 인생의 피난처가 있었으니까. 결혼 전에는 부모님이 쉼터였다. 일이 힘들거나 하기 싫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만둘 수 있었다. 그런 적은 없지만, 잠깐 부모님께 신세 지며 숨을 돌리면 된다는 심적 여유가 있었다. 일과 인생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가 그늘막이었다. 일하다가 정 안 되면 역시 그만두고 잠시 쉴 수 있었다. 아내도 일했으니까.

아기를 낳으니 삶의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인생의 무게가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한시도 쉴 수 없다는 압박을 느낀다. 인생의 무게를 언제든 회피할 수 있다는 심적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일을 쉬면 연약하고 가녀린 한 생명이 굶는다. 배고프면 제비 새끼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앵앵 우는, 용변을 보면 찝찝하니 얼른 치워 달라고 빽빽 소리 지르는,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악을 쓰는 아기를 돌봐주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 먹고 자고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연약한 생명을 바라볼 때마다 어떻게든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든다. 그뿐이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악인이 될 수도 있다. 못된 사람으로 자라게 하면 안 된다는, 바른 아이로 양육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먹이고, 입혀야 한다는 부담보다 이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어른의 상징과도 같은 책임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떤 사람들은 어른이 된 것을 특권으로 여기기도 한다. 나이만 먹으면 자동으로 어른이 된다고 착각한다. 나이 먹었다고 어른 대접을 받으려 한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나 어른이니 대접해 달라”는 뜻을 담은 말과 행동을 은연중에 한다. 특히 전철에서 그렇다. 아니면 길거리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 잘잘못을 따지지는 않고 대뜸 “너 몇 살이야”, “나이도 어린놈이...” 대뜸 나이부터 따진다. 자신이 윗사람이니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강요다. 자신은 어른이니 무조건 대접받아야 하고, 대접받을 만한 특권이 있다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린 것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은 전혀 지지 않으면서 어른으로 대접받으려 하면 안 된다. 어른이 되면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어른으로서 공경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내 인생에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지 싶다. 이제 내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아내와 아기와 함께하는 인생이다. 전에는 나 개인의 인생이었지만, 이제 우리 속에 녹아들어 우리의 인생이 되었다. 나 혼자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사는 인생이다. 인생에 책임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인생의 무게를 얼마나 느끼고,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식구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한시도 게을리 살 수 없고, 허투루 살 수 없다.

우리는 아무나 어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좁게는 가족 넓게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 사람만 어른이라고 부른다. 나의 인생은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의 인생임을 아는 사람만 어른이라 칭한다. 내 말과 행동이 너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는 너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만 어른이라고 말한다. 그런 인생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 못한다면, 그 무게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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