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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May 21. 2019

10년만 젊었어도...

나는 20대 때 어른들이 이 말을 하면 코웃음 쳤다. “10년만 젊었어도...”라고 말하면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지금은 왜 못해? 핑계도 좋네’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 괜한 핑계를 대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인생에 그렇게 자신감이 없나 싶었다. 조금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이해한다. 그 말을 했던 내가 부끄럽다. 그때는 어렸구나 싶다.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 어른들이 왜 그런 말을 내뱉은 건지 이제야 이해된다. 그리고 또 다른 맥락에서 그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삼십 대 후반인 나. 사회적으로 아직 한창 나이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는 나이이다. 단, 생각으로만 말이다.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현실이라는 벽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하던 일을 그만두는 순간, 가정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 밥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굶게 된다. 한해 전만 해도 도전이 가능하긴 했다. 식구라고는 아내와 나 둘 뿐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며칠 뒤면 아기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내가 쉬면 저 젖먹이가 굶게 된다는 생각에 인생의 도전은 꿈에서나 가능하게 됐다.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이다. 이것 말고도 도전하지 못하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심리적인, 근본적인 이유이다.

잃는 게 두려워서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경제적 안정을 잃기 싫어서다. 도전해서 실패했을 경우, 만에 하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어서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뿐이랴. 궁핍해졌을 때 느끼게 될 주위의 반응 또한 신경 쓰인다.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게 싫어서이다. 걱정해 주는 그 마음, 처음 느껴보는 그 시선이 불편하니까. 그런 경험을 하게 될까 봐 도전을 못하는 거다. 별걱정을 다한다만.




성공이 100% 보장된다면 누구든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이다. 노력한다고 해서 항상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지 못한다. 책임져야 할 게 있다면 더욱 도전하기 힘들다. 잃을 게 많다면 도전이라는 단어는 인생 사전에서 깨끗이 지운다. 그래서 우리는 “10년만 젊었어도...”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문자 그대로 10년만이라도 젊어지고 싶다는 말이다. 10년이란 지금보다 좀 더 팔팔하고 건강한 체력을 가진, 실패해도 얼마든지 재기할 심리적 여유가 있는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를 가리킨다. 지금보다 체력이 있고, 실패해도 여유가 있다면 무엇에든 도전하겠다는 말이다. 이것은 표면적인 뜻이고, 그 이면에는 깊은 속 뜻이 담겨 있다. 아무것도 책임질 게 없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잃을 게 적거나 없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에든 도전하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책임질 게 많아지는 것을 뜻한다. 그 책임은 사회에서의 책임일 수도 있고, 가정에서의 책임일 수도 있다. 좁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잃을 게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잃을 게 많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돈이나 지금까지 닦아놓은 안정적인 생활 기반일 수도 있다. 건강일 수도 있고 여유 시간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보다는 잃을 게 많아진다. 잃을 게 많아지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어려워진다. 잘못하다가는 다 잃게 되니까. 다 잃고 다시 쌓기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도전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 말을 한다.

“10년만 젊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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