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몰랐다. 평범하게 사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는 나도 어른이 되면 당연히 대학교에 가고, 졸업하면 직장생활을 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 기를 줄 알았다. 그 모든 게 당연한 일로 보였고, 쉽게 느껴졌다. 다들 뚝딱뚝딱하니까.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물론 나는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거치고 있다. 진행 중인 과정도 있다. 하지만 쉽게 넘어간 과정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첫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렸다. 겨우 모태 솔로를 모면했고, 자칫 결혼도 못 할 뻔했다. 각 과정마다 진입이 순조롭지 않았고, 한 과정에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남들은 각 과정을 쉽게 지나는 것 같았는데, 나만 그렇지 않았던 걸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아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다고 하면 자랑이 될까. 오죽하면 '삼포 세대', '오포 세대', '칠포 세대', 심지어 '구포 세대'에다 '십일포 세대'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이 말이 어디까지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이 정말 혹독하고 암울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서 혼자 살아야할까? 아니, 그것도 쉽지 않겠지! 세상 참 살맛 안 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평범한 일들을 마음 편히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한 가지를 포기하면 될까? 그러면 당장이야 편하게 살 수 있겠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때는 어떻게 먹고 살까? 나라가 지원해 주는 최저 생계비로 살 수는 있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그러나 쪽방에서. 그렇게 사는 분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렇게 살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최저 생계비로 살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런 곳에서는 재개발 등으로 언제 내쫓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것도 결코 평범한 삶이 아니다. 이것 보라! 평범하게 사는 건 쉽지 않다니까!
세상 진짜 살맛 안 난다. 위에서 한 말 같은데... 누구는 잘 먹고 잘살던데. 돈도 많이 벌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던데. 나는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매일 출근한다. 회사에서 짤리면 아내와 이제 곧 태어날 아이는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다. 나는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닌데,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니지 위에서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소싯적에 노력하지 않은 대가이리라. 어른들이 “십 년만 젊었어도”라는 말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그런 말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십 년만 젊어지면 내 삶이 지금처럼 되게 놔두지 않을 테다! 음, 생각해보니 십 년으로 돌아가도 소용없을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니까. 혹시 지금의 경험과 생각을 모두 가지고 돌아가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십 년 전 그 상태로 돌아가면 나아지는 건 조금도 없을 것이다.
역시나 평범하게 사는 건 어렵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다. 아니, 무지 노력하고 계속 몸부림치면 평범하게 살 수 있을지도.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일까. 노력하고 몸부림쳐도 평범하게 살지 못하면, 시간 낭비에다가 쓸데없이 에너지만 소모한 셈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면 어떤가?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해도 우울해 하지 말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잖은가. 삼포, 오포, 칠포, 십일포가 이제 남 일이 아니니까. 그건 누구나 겪는 문제다. 이제는 평범하지 않아 보이던 삶이 지극히 평범한 삶이 됐다. 그러니 너무 낙담할 필요 없다. 그렇다. 처음에 말했던 바와 다른 면에서 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