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깊게 사귑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4

by 인생짓는남자

나는 친구가 적다. 카카오톡에 등록된 친구는 525명이지만, 이중에 90%는 거래처 사람들이다. 나머지 10% 중에 가족과 고등학교 친구가 각각 2%이고, 3%는 친하게 지내며 이따금 연락하는 사람이다. 나머지 3%는 꽤 안면 있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3%에 해당하는 사람은 안면은 있지만 일부러 연락하고 지내지 않으면 금세 멀어질 사람들이다. 가벼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내 카카오톡에 등록된 친구가 적지는 않지만, 속마음을 가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고 손에 꼽는다. 인간관계를 좁게 맺기 때문이다.

반면 아내는 인간관계가 넓다. 나에 비하면 넓어도 너무 넓다. 아내는 스쳐가는 인연도 결코 그대로 떠나보내지 않는다. 그냥 스쳐갈 인연도 기어코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로 만든다. 가령 거쳐왔던 모든 직장 동료와 아직도 연락하고 만난다. 직장에서 웬만큼 친한 동료가 아닌 이상 고만고만하게 지낸 사이는 퇴사하면 그만이다. 헤어지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는 친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적당히 거리를 두던 사람도 퇴사할 때쯤이면 가까운 사이로 만들고, 퇴사하면 이따금 연락하고 만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무척 신기하다. 나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인간관계에 있어 부지런해서 가능한 일이다. 아내는 상대의 말을 열심히 들어준다. 그리고 상대가 연락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상대가 먼저 연락하든 안 하든 한결같이 먼저 연락하고 계속 신경 쓴다. 그러니 가까워지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는 신경 쓰는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상대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마음을 쓰는 만큼 관계가 지속되거나 끊어진다. 또한 인간관계는 직장이나 학교, 모임 등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를 통해 유지되기도 한다. 매개가 존재하는 한 관계는 이어진다. 하지만 매개가 사라지면 서로의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지고, 이윽고 관계가 끊어지고 만다.

가만히 있으면 인간관계는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 계속 신경 쓰고 가꿔야 한다. 문제는 신경 쓰고 가꾸는 게 꽤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외향인은 그 피곤을 기꺼이 감수한다. 사람 만나는 게 즐겁고, 사람을 만나야 활력이 돋으며, 살맛이 나기 때문이다. 외향인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피곤을 느끼지만,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기 때문에 피곤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신경 쓴다. 내향인은 다르다.

내향인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을 때 발생하는 일들이 피곤하다. 그렇다고 관계 맺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내향인도 누군가와 관계 맺는 걸 좋아한다. (단 쿵짝이 잘 맞는 사람과만) 관계 맺는 과정과 관계를 맺고 난 후에 발생하는 정신노동이 피곤할 뿐이다. 외향인은 그 정신노동을 즐기지만, 내향인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한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든 일단 연락을 해야 한다. 연락하면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했어.”

“나야 잘 지내지. 너도 잘 지내지?”

“응, 잘 지내. 그럼 또 연락할게.”


이렇게 상투적으로 대화를 끝낼 수는 없다. 귀찮아도 좀 더 안부를 물어야 한다. 상대가 대답하면 또 다른 질문을 하거나 상대의 말에 맞장구치며 대화를 몇 분 정도는 이어나가야 한다. 대화를 이으려면 두뇌를 끊임없이 회전시켜야 한다. 머리를 쓰고 싶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써야 하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가까운 사람이면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덜’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과는 억지로 대화해야 한가. 대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로가 누적된다. 이러니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그뿐인가 누군가와 친해지면 피곤할 일도 늘어난다. 만나야 하고, 연락이 오면 받아야 한다. 이런저런 부탁을 하면 들어줘야 한다. 내향인은 거절을 쉽게 못하니, 크게 손해 보거나 피해받는 부탁이 아닌 이상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게 피곤하다.

이처럼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피곤한 일이 필연적으로 생기니 내향인은 절대 관계를 넓히지 않는다. 넓히면 넓힐수록 피곤이 증가하니까. 관계로 인해 피곤하기 싫어서 관계의 폭을 제한한다.

내향인은 관계를 좁게 맺는 대신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로 작정하면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지 않는다. 막역한 사이로 만든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내향인은 관계의 폭이 좁기 때문에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사람만 골라 사귄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만 일부러 골라서 깊은 관계로 만든다.




아는 사람이 많으면 좋긴 하다. 여러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살면서 만나는 여러 난관을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좀 더 수월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 하지만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도움을 받기만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받기만 하면 관계를 악용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내향인도 때로는 관계를 넓게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으니까. 사람은 사람 냄새를 맡아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내향인은 태생적으로 관계를 넓게 유지할 수 없기에 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관계를 깊게 맺는 것으로 해결한다. 자신의 기질의 한계에 순응하며 좁으면서 깊게 관계 맺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향인은 관계를 좁게 맺는 대신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로 작정하면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지 않는다. 막역한 사이로 만든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내향인은 관계의 폭이 좁기 때문에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사람만 골라 사귄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만 일부러 골라서 깊은 관계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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