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깊이 생각합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7

by 인생짓는남자

“말수가 적다.”

내향인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다. 겉모습만 놓고 봤을 때 그건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 맞다. 보이는 모습만 놓고 보면 내향인은 분명히 말수가 적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오해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수가 적다”는 평가에는 한 가지 전제가 담겨 있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탄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수가 적은 걸 소심함이나 부끄러움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심쟁이, 부끄럼쟁이라 말수가 적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타면 말수가 적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말수가 적다고 해서 무조건 소심하다거나 부끄러움을 타는 거라고 볼 수는 없다. 분명히 그 이유도 있긴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으니까. 내향인이 말수가 적은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있다. 생각이 느리고, 대화에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이다(후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뤘으니 패스).




여기서 ‘생각이 느리다’는 말은 두뇌 회전이 느리다는 뜻이 아니다. 두뇌 회전이 느린 건 머리가 둔한 것이지 느리다고 할 수 없다. 내향인이 생각을 느리게 하는 건 머리가 둔해서가 아니라, 넓고 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향인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여과 없이 내뱉거나 여과를 간단히 또는 신속히 하고 내뱉지만, 내향인은 다르다. 복잡한 공정을 거쳐 출력한다. 내향인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여러 단계의 여과 과정을 거친다. 하숫물을 1급수로 만들 만큼 생각을 거르고 또 거른다. 그러니 말이 곧바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향인의 머릿속에는 멀티 유니버스가 존재한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상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방향이나 한 가지 상황만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방향과 상황을 가정하여 살핀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계속 확장되기 때문에 결론에 다다르고, 출력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떤 주제가 화두로 떠오르면 곧바로 머릿속에 있는 ‘생각 스위치’를 켠다. 스위치를 켜면 ‘위잉’, ‘드르륵드르륵’ 거리며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머릿속이 활발하게 돌아간다. 혼자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그 주제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살핀다. 귀로는 대화 내용을 계속 듣고 있지만 입은 다물고 있는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머릿속은 정말 바쁘다. 그 순간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기상청 슈퍼 컴퓨터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를지도? 그만큼 머릿속이 바쁘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주제에 대한 분석을 마칠 때쯤이면, 아니 분석 중에 대화 주제가 바뀐다는 것이다. 대화의 속도는 늘 내 생각의 속도를 앞서간다.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쌩하고 지나가는 승객을 태운 택시처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대화는 멈춰주지 않는다. 계속 진행된다.

결국 생각하는 사이에 대화를 놓치고 만다. 새로 떠오른 주제를 놓고 또다시 분석에 들어가면, 대화 주제는 그 사이 또 바뀐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이런 일이 항상 발생한다. 이러한 내 속사정을 사람들은 알턱이 없으니 나를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실은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건데도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내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왜 말을 안 해?”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해서 그래.”

사실이다. 실제로 듣는 걸 좋아한다. 말하기보다 듣는 걸 좋아하는 건 내향인의 또 다른 특성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대화 중에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게 더 큰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물을 때마다 매번 해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생각이 많아서 그래.”

설명하는 것 자체도 번거롭거니와 설명한다고 해서 내향인의 그런 특성을 이해해 줄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러냐 하면서도 속으로는 참 특이하다고 생각할 게 뻔하니 상대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만 대고 만다. 사실 설명하는 것 자체도 내향인인 내게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니 설명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간명한 이유만 대고 끝낸다. 그마저도 피곤하면 그냥 슬쩍 웃고 만다. 그럼 나는 그냥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된다.




생각을 넓고 깊게 하는 게 어찌 보면 에너지 낭비일 수도 있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때만 하면 되는데, 뭐하러 피곤하게 늘 깊이 생각하냐고 외향인이 물을 지도 모르겠다. 필요할 때만 깊이 생각하는 게 외향인의 습관이라면 늘 깊이 생각하는 건 내향인의 습관이다. 자동으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외향인은 깊이 생각할 줄 모른다는 말은 아니다.) 내향인이 사사건건 깊이 생각하는 건 아니다. ‘생각 스위치’를 항상 켜놓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 피곤하다. 다만 수시로 켤 뿐이다.

대화할 때 생각이 깊은 건 장점이 된다. 그만큼 말실수가 적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이 느리기 때문에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단점이긴 하다. 그건 내향인이 풀어야 할 숙제다.

생각이 깊은 게 대화할 때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큰 장점이 된다. 생각할 일이 있을 때 말이다.

내향인은 깊이 생각하는 게 생활화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단체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다각도로 문제를 분석하고, 다방면에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래서 의견을 제시할 때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견을 내놓곤 한다. 물론 그럴 일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어쨌든 생각이 깊은 내향인은 말을 아끼니 말실수할 일은 적다. 사람들이 왜 말을 안 하는지 의아해하면 어떠랴. 말을 많이 해서 괜히 말실수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내향인의 머릿속에는 멀티 유니버스가 존재한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상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방향이나 한 가지 상황만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방향과 상황을 가정하여 살핀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계속 확장되기 때문에 결론에 다다르고, 출력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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