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하고 삽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12

by 인생짓는남자

‘내향인’하면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소심한 사람’
‘말수 적은 사람’
‘수줍음 많은 사람’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

이 이미지들을 이렇게 하나로 모을 수 있다.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아서 말수가 적고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

한 마디로 하면 ‘모질이’다. 나도 내향인이기에 나 자신에게 이런 꼬리표를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보는 사람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불만족스러운 꼬리표를 붙여봤다. 근데 내향인은 정말 모질이일까? 아니, 나는 내향인이 결코 모질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에 언급된 특질들은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기질에 기인한 결과이니까.

나도 내향인이기에 소심하고,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으며 사교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어디가 모자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으니까. 나도 상황에 따라 대범하고, 낯가리지 않으며, 말이 많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서 친해지기도 한다. 그럴 만한 자극이 내부나 외부로부터 생기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 나는 내 기질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그런 일이 드물다는 게 함정.




사람들은 왜 자꾸 내향인에 대해 오해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 내향인의 실제 모습은 다른데 말이다. 뭐,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테니 이해한다. 정보가 한정되어 있으니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하지만 보이는 대로 생각하기보다 그 이면을 꿰뚫어 보고 해석할 수는 없는 걸까? 물론 넘겨짚으면 괜한 오해, 더 큰 오해를 할 수 있으니 넘겨짚을 때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위대한 사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인간의 사유, 추론 능력은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사실에 근접한 결론을 낼 수 있을 만큼 위대하다!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려면 관련 정보를 최대한 확보해야 하고, 지루한 분석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한 마디로 부지런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지런하지 않다. 아니, 그보다는 주변에 있는 내향인 한 명을 그렇게까지 분석할 필요가 없지. 그럴 만큼 중요한 인물이거나 득이 되는 인물이 아닌 한 말이다.

어쨌거나 내향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오해다. 그중에 내향인이 말수가 적고, 소심해서 할 말도 못 할 거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해다. 내향인도 때론 말이 많고, 꼭 할 말은 하니까.

내향인은 불편한 자리에 있거나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때는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사람들은 바로 이 모습을 보고 말수가 적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야 말수가 적은 게 맞지만, 말 그대로 말수가 적은 것과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르다.

소심한 기질이 강한 내향인이라면 정말 말수가 적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보통의 내향인은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것이니 결이 조금 다르다.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경우는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말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머릿속이 바빠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라면 모습이 달라진다.

내향인도 말이 많아질 때가 있다. 편하거나 친한 사람과 만나면 말이다. 아무 말이나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상대방이 ‘어, 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할 만큼 수다쟁이가 된다.

또 하나, 불편하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말을 아끼지 않을 때가 있다.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떻게든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싶으면 어떻게든 하고야 만다. 다만 그런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대화 내내 내향인이 한 마디도 안 한 줄 안다. 정말 한 마디조차 말을 안 했을 수도 있겠지만, 혹 몇 마디 말하긴 했어도 대화에 금세 묻히기 일쑤다. 내향인은 꼭 하고 싶어서 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 임팩트가 없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한 마디도 안 한 줄 알지.




나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 할 말은 한다. 하고 싶은 말,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싶으면 어떻게든 한다. 하지만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이 번뜩 떠오르고, 그 말이 입가로 내려와서 터져 나오기 직전의 상황이 돼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싶으면 목구멍으로 삼켜 넘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아니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으니 대화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사람들의 대화를 경청할 때 나도 수시로 할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열에 일곱은 쓱싹쓱싹 지운다. 세 가지만 내뱉는다. 그 정도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침묵하고 있다가 한 마디 툭. 한 마디 겨우 던지고는 또다시 오랜 시간 침묵. 한참 뒤에 또 한 마디 툭. 늘 이러니 사람들은 내게 꼭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할 말 없어? 할 말 있으면 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 할 말 없어. 할 말 있으면 할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 아까 말했는데. 할 말 생각나면 알아서 말하지. 왜 자꾸 말을 하라고 그래.’

알아서 말을 하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못 마땅해서 혼자 속으로 뾰로통해진다. 한두 번 겪는 일이라 적응이 될 법한데,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겉으로는 웃어넘기지만, 속으로는 ‘또 그 말이야?’ 질린다.

사람들이 자꾸 그러니 한때 말을 많이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말을 많이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내 몸에는 수다가 탑재되어 있지 않으니까. 내향인인 내게 미덕은 수다가 아니라 경청이다. 바꿀 수 없는 걸 억지로 바꾸려 하면 스트레스만 받고 탈이 난다. 그래서 내 모습을 바꾸길 포기했고, 사람들의 말에 그냥 계속 웃어 넘기기로 했다.




내향인도 말이 많아질 때가 있다. 편하거나 친한 사람과 만나면 말이다. 아무 말이나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상대방이 ‘어, 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할 만큼 수다쟁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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