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잘살고 싶은가

지금처럼 살거나 지금보다 잘살거나 #6

by 인생짓는남자

나 혼자 잘 먹기 잘살기 위한 고민을 하면 고만고만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 먹고 잘살게 하려는 고민을 하면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잘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한다. 여기서 잠깐, 잘산다의 기준을 정해야 할 것 같다. 이 글에서 말하는 잘산다의 기준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뜻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제적인 상황을 넘어서는 삶에 대한 만족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잘사는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는지 괴로워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지금보다 잘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적다. 대부분은 그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남을 부러워하기만 한다.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비교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부러워할 시간에 행동하는 게 현명한 행동이다.




지금보다 잘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왜 잘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잘살고 싶은지 그려야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잘살고 싶은 이유는 추동력 역할을 한다. 잘살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잘살고 싶다고만 생각하면 생각으로만 그친다. 왜 잘살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가령 “나는 빚에 압박당하고, 짓눌려 살기 싫어”라고 잘살고 싶은 이유를 정했다고 치자. 물론 투자 관점에서 빚은 자산에 속하지만, 어쨌든 그 이유 때문에 잘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살고 싶은 이유가 추동력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왜 잘살고 싶은지 정했으면 어떻게 잘살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에 따라 삶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서울에 빚 없이 아파트를 마련하고, 외제차 한 대를 몰만큼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수준에 맞게 살기 위해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서울에 집을 사고, 외제차를 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부모 도움 없이 직장 월급만으로 서울에서 빚 없이 아파트와 외제차를 사기 쉽지 않다. 월세나 전세, 카푸어로 산다면 모를까 두 가지를 동시에 잡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 가지를 포기하고 나머지 한 가지만 선택하는 것이다. 어쨌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정해야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정리하면, 잘살려면 목표와 추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왜 잘살고 싶은지, 어떻게 잘살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라면 글이 싱거울 것 같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게 한 가지 남았다.




잘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 치고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어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수준보다는 훨씬 더 잘살고 싶어 할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고 바라는 만큼만 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삶의 기준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단, 그 기준을 높일 때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이왕 잘살기로 했으면 그 이유를 내 만족이 아니라 외부로 확장하자. 인류 발전과 평안에 이바지하는 걸로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개인이 인류 발전과 평안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정치인이나 기업가처럼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을 것이다.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간단하다. 단, 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인류 발전에 기여하려면 이런 고민을 하면 된다.

‘인류가 지금보다 잘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류’라는 말이 너무 거창해서 부담스럽다면 ‘인류’와 ‘잘살게’ 이 두 부분을 다른 말로 바꾸면 된다. 어떤 말을 넣어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맛있는 치킨을 먹게 하려면 어떤 메뉴를 개발해야 할까?’

이 고민은 생활 밀착형일수록 좋다. 문제와 해결점을 찾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면 좋다. 그래야 금방 포기하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 먹기 잘살기 위한 고민을 하면 고만고만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 먹고 잘살게 하려는 고민을 하면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유명 유튜버인 라이프 해커 자청은 다른 사람도 잘살게 하기 위한 고민을 ‘최적화’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표현하든, 중요한 건 잘살고 싶은 욕구가 어디로 향해 있느냐이다. 나 혼자 잘살고 싶은지, 더불어 잘살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개인의 만족을 넘어서는 보다 큰 욕구는 보다 큰 결과물로 이어진다. 개인의 욕구가 아무리 커도 일정선을 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욕구는 무한정 커진다. 생각이 확장되고, 방법이 다양해지니까.

나는 왜 잘살고 싶은지, 어떻게 잘살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막연하게 잘살고 싶다고만 생각하면 결코 잘살 수 없다. 나보다 잘사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으로 그치고 만다. 또한 나 혼자만 잘먹고 잘살겠다고 하면 그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 욕구를 외부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나 모두 더 잘살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너 또한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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