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짓는남자 May 11. 2020

부끄러움이 많은 게 아니라 신중한 겁니다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살고 있습니다 #26

내향인이 다수 앞에서 말이 적은 이유, 특히 일대일이든 일대 다수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 적은 이유가 있다. 신중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탐색하는 것이다. 나를 꺼내 보여도 이해해 주고받아줄 사람들인지, 말을 막 던져도 괜찮은 사람인지 판단하느라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내가 내성적이라서 부끄러움이 많은 줄 알았다. 부끄러움 때문에 모임에서 말도 잘 안 하고, 듣기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속으로 ‘이놈에 부끄러움, 없앨 수는 없나’라고 가끔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야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니 부끄러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많은 게’ 아니었다. ‘신중한 거’였다.

몇 주 전,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 아기들 엄마, 아빠, 부부 모임을 했다. 네 부부가 모였는데,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웃고 떠들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장장 다섯 시간 동안 나는 말을 여섯 마디 정도 했을까? 스스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뭔가 물어볼 때만 대답했다. 그런 내가 신기했던지, 어떤 사람은 나에게 내성적인 성격이냐고 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와 농담을 주고받는 게 목표라고까지 말했다.

부부 모임에 있던 커플 중 한 커플은 신기하게도 우리 옆집에 살았다. 그리고 더욱 신기하게도 두 집 여자는 나이가 같다. 근 2년을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데,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야 존재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며칠 전에 아기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 다 시간이 남아서 대화를 했다고 한다. 전해 듣기로 그 집 남편,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인데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여보, 옆집 ㅇㅇ가 자기 남편이 그랬데, 자기는 부끄러움이 많은 게 아니라 신중한 거라고 말이야.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 적은 게 아니라, 신중해서 탐색하고 조심스러우니까 말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맞네,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 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말을 안 하는 이유가 말하기보다 듣는 게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듣고 보니 그런 이유도 있구나 싶었다.




내성적인 사람은 대체로 말이 벌로 없다. 말수가 적다. 항상 말수가 적은 건 아니다. 친하고 편한 사람 앞에서 그리고 일대일 자리나 말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을 한다. 친하고 편한 사람 앞에서는 수다쟁이가 되고, 일대일이나 말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할 말은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말을 아낀다. 굉장히 아낀다.

다른 사람은 이런 내향인의 모습을 오해한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 적은 거라고 말이다. 물론 부끄러움 때문인 건 사실이다. 부끄러움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게 한 가지 이유이기는 하다. 그러나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부끄러움은 말이 적은 이유에서 극히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내향인이 다수 앞에서 말이 적은 이유, 특히 일대일이든 일대 다수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 적은 이유가 있다. 신중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탐색하는 것이다. 나를 꺼내 보여도 이해해 주고받아줄 사람들인지, 말을 막 던져도 괜찮은 사람인지 판단하느라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괜히 말을 막 던졌다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거나 나에 대해 오해할까 봐 말을 아끼는 것이다.  

내향인은 처음 보는 상대에게 신중하게 접근한다. 말을 편하게 해도 되는 사람인지 판단이 설 때까지는 말을 아낀다. 그 기간이 다소 길다는 게 문제다. 한두 번 본다고 해서 판단이 끝나지 않는다. 여러 번 봐야 확실한 판단이 선다. 탐색 기간이 길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한다. 부끄러움쟁이라 말이 없는 거라고.

외향인은 친하지 않아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막 던진다. 어느 때고 수다쟁이가 될 수 있다. 아무 말이나 막 던지면서 탐색한다. 이 말 저 말 던지며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다. 이런 말을 했을 때는 이렇게 반응하고, 저 말을 했을 때는 저렇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어느 선까지 말을 해도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얼마큼 가까워질 수 있는지 판단한다. 물론 이 판단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하는 건 아니다. 기질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내향인은 반대다. 절대 아무 말이나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향인은 말을 아낀다. 말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상대를 판단하냐고? 일대 다수일 경우,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반응을 면밀히 관찰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다. 조용히 앉아서 사람들을 살피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말을 못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파악하는 시간 동안 혼자 머리가 부지런히 돌아가니 말할 정신이 없다. 물론 이 과정도 외향인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부러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외향인은 상대를 파악하는 시간 동안, 자신이 던진 말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말실수를 하면 얼른 대응책을 마련한다. 상대가 버럭해도 어떻게든 무마하고, 상황을 해결한다. 그러니 끊임없이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내향인은 상대를 파악하는 동안, 실제로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 대도 혹여나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하다. 괜히 말을 해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고, 상황을 안 좋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자책한다. 그런 경험이 있기도 해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욱 말을 아끼고,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옆 집 형님만 나의 특성을 파악했다. 그래서 더욱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단다. 신중하고, 진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어서 빨리 친해지고 싶다고 아내를 통해 말을 전해왔다. 그 형은 활달한 성격이라 무척 재미있다.

내향인이라고 해서 얌전하거나 진중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내향인 중에도 장난기가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 많다. 마음을 열고, 친해지면 외향인 못지않게 장난꾸러기란 사실이 드러나는 내향인이 있다. 내가 그렇다.

옆 집 형과 몇 번 더 만나면 나도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마음을 열면 아무 농담이나 막 던지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가 되면 케미가 굉장히 잘 맞을 것 같다. 그날이 오면 그 형이 나에게 내성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향인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