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
내성적이지만 충분히 잘살고 있습니다 #25
내향인은 감정이 상하면 일단 정리해야 한다. 흐트러진 생각을 정리하고, 격앙된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내부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 문제를 결코 수습할 수 없다.
아내와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아내는 외향인이고, 나는 내향인이다. 이 자체만으로 우리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확연히 다른 우리가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된 게 참 신기하다.
아내는 소개팅 자리에서 나를 보자마자 고민했다고 한다. 내가 내향인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채고, 내가 애프터를 신청하면 더 만나볼지 고민했다고 한다. 아내의 고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이 성향이 너무 다르니 취향이나 대화 등 여러 면에서 부딪힐 건 불을 보듯 뻔하니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내는 처음 만난 날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자 친구와 같은 책을 함께 읽고, 서로 느낀 걸 나누고 싶어 하지 않나요? 근데 저는 책 안 좋아해요.”
아내는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고, 책을 좋아한다고 대답하니 대뜸 저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취향이 다르니 그래도 사귀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아내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 혼자만 읽어도 돼요. 제가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꼭 여자 친구와 같은 책을 함께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책 읽는 걸 싫어하지만 않으면 돼요.”
내 대답에 아내는 서로 다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서로 맞춰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과연 아내의 예상대로 우리는 서로 잘 맞춰갔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에서 아내를 언급할 수 없을 테지.
우리가 서로 맞지 않을 거라는 아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 대답을 듣고 난 후에 한 생각이 옳았다. 우리 둘은 의외로 잘 맞았다. 아니 서로 잘 맞춰나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너무나 다른 부분이 많았지만, 서로 양보해가며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별다른 마찰 없이 연애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다르다”는 결혼 선배들의 조언은 명언이자 진리였다! 연애 때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티격태격했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싸운 건 아니다. 어김없이 한 달에 한 번씩 투닥거리를 했다.
결혼은 정말 현실이다. 연애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부분이 결혼하게 되면 심한 부부싸움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 사이에 가장 큰 골칫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서로 나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아내는 외향인, 나는 내향인이다. 외향인과 내향인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외향인은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한다. 문제가 터진 즉시 말이다. 게다가 외향인은 자기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전부 쏟아내야 하고,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전부 들어야만 한다. 상대가 꿍해 있는 걸 못 봐준다.
내향인은 정반대다. 내향인은 감정이 상하면 일단 정리해야 한다. 흐트러진 생각을 정리하고, 격앙된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내부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부 문제를 결코 수습할 수 없다. 그래서 내향인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뒤로 물러선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려 한다.
아내와 나는 이렇게 달랐지만, 결혼 초기에 서로의 차이점을 잘 몰라서 갈등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다툼의 원인 때문에 답답한 게 아니라, 서로 갈등 해결 방식의 차이로 답답해했다.
내향인은 갈등에 접근하는 방식이 외향인과 다르다. 내향인은 누군가와 갈등을 겪으면 즉시 숨을 곳을 찾는다. 내부에 발생한 소용돌이를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외향인은 문제를 즉시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말과 감정을 밖으로 쏟아낸다. 이때 내향인은 당황한다. 자신 내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는 외향인의 반응을 감당하지 못한다.
반면 내향인은 상처를 받으면 왜 상처를 입었는지 자체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일단 후퇴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찾는다. 이때 외형인은 내향인에게 반드시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숨지 말라고 몰아세우면 해결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내향인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화가 나도 외향인처럼 한 번에 분출하지 않고 꾹꾹 눌러 담는다. 상대의 잘못을 참고 참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갑자기 터트려 버린다. 자신의 감정을 막 쏟아낸다. 외향인은 갑작스러운 이 일로 인해 크게 당황한다.
이러한 외향인과 내향인의 차이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얼마큼 좁혀 나갈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아내와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왜 싸웠는지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살피는데 집중했다. 그 차이를 어떻게 좁혀 나갈지를 중점에 두고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 5년 차인 지금, 그간의 노력으로 서로의 차이를 많이 좁혔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더 줄여야 한다. 서로를 더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의 간격을 종이 한 장 두께만큼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서로를 더 이해하고, 지금보다 더 이해할 날이 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