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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Jan 21. 2021

내 연차 쓰는데 왜 님의 눈치를 봐야 하나요!?

부하 직원의 마음

우리 회사에 작년부터 연차 휴가 제도가 도입되었다. 5인 이상 사업장인데도 이제야 연차 휴가가 생기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내가 입사하기 전, 그전에는 직원들에게 여름휴가만 5일 정도 주어졌고, 평상시에 일이 생기면 대표님께 말씀드려서 하루 쉬었다고 한다.

언뜻 연차 휴가가 없던 게 더 좋아 보일지 모르겠다.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 연차 휴가가 없는 건 명백히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대신 상황상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어지는 연차 휴가 수보다 더 많이 쉬는 것도 가능하니까.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꿈에서라도 불가능하다.

분위기에 짓눌리고, 눈치 보다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어진 연차 휴가조차 1년 동안 다 쓰지 못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 그런 마당에 연차 휴가도 없는데 그보다 더 많이 쉬는 건 아무리 근로 환경이 좋아져도 불가능한 일이다. 여름휴가 5일 외에, 1년에 단 하루라도 쉬려면 눈치를 보고 겨우 사정해야 하니, 더 많이 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퇴사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겠지.

어쨌거나 연차 휴가가 생겨서 작년 1월 모든 직원이 기뻐했다. 하지만 연차 휴가 탄생 1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1주년을 자축하지 못했다. 업무에 치이고 대표님 눈치 보느라 연차 휴가를 다 쓰지 못한 직원이 다수 발생했으니까.

이 문제로 작년 말, 지난달에 직원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남은 연차 휴가를 어떡하면 좋을지, 수당으로 받을 수 있는 건지 직원들 간에 의견과 추측이 난무했다. 대표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대표님 몰래 회의를 했고, 우리의 복지와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연차 수당 문제에 대해 대표님께 말씀드리기로 말이다.

우리의 고민을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어이없어하셨다. 눈치 준 적도 없는데, 왜 연차 휴가를 다 쓰지 못했냐고 말이다. 어이없어해야 할 쪽은 우리들인데 말이다.

연차 휴가가 생기긴 했지만, 대표님께서 한 달에 연차 휴가를 쓸 수 있는 개수를 정하셨다. 직원들이 휴가 신청서를 제출할 때마다 “무슨 일 있냐?” 물으셨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연차 휴가를 다 쓸 수 있냐고요!

대표님 반응 중에 더 황당했던 게 있다. 연차 휴가 문제에 대해 말씀드린 게 2020년 한 해가 불과 열흘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남은 휴가를 다 쓰라고 하셨다.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연차 휴가 수를 정해 놓으셔서 남은 연차 휴가를 전부 소진할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니 그럼 어떡하겠다는 거냐고 물으셨다. 그걸 말이라고... 어떡하긴? 다 쓰게 해 주든가, 연차 수당으로 줘야지! 돈으로 주겠다고도 안 하시고, 연차 휴가 사용 제한 일수를 풀겠다고도 하지 않으시니 기가 막혔다.

그래서 결론은? 겨우겨우 한 달 연차 사용 제한 일수를 풀었다! 연차 수당 정산은? 작년에 남은 연차 수당은 받기로 했는데, 올해도 그러겠다는 말씀이 없으셔서 올 연말이 되면 다시 골치 아프게 생겼다.




연차 휴가를 사용하는데 왜 윗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연차 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명백히 명시되어 있는, 근로자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다. 근로자가 사용하고 싶을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연차 휴가를 사용하며 상사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회사가 바쁘든 한가하든 쓰고 싶을 때 쓰면 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회사가 태반이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건데 상사 눈치를 봐야 한다. 꼭 써야만 하는 이유를 줄줄줄 나열하고, 허락을 받아내야 한다.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눈치를 주지 않는 회사와 상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회사와 상사도 있다.

업무 상황을 고려해서 연차 휴가를 사용하는 건 직원이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부분이며 센스다. 회사가 바쁘거나 말거나 자기 쉬고 싶을 때 쉬는 개념 없는 직원들도 있긴 하다. 그런 직원들은 눈치를 주는 게 좋다. 안 그러면 업무상 다른 직원들이 피해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직원이 아닌 이상 눈치를 줄 필요는 없다. 아니 눈치를 주면 안 된다. 그게 상사의 센스다. 알아서 다들 업무에 피해 안 가게 사용하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부하 직원이 연차 휴가를 사용해서 하루 쉬고 출근하면 잘 쉬었냐, 하루 동안 뭐했냐고 물어보는 상사가 있다. 알아서 뭐하려고? 남이사 쉬는 날 뭘 하든 뭐가 그리 궁금한지 모르겠다. 애인도 아니고 말이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몰라도 부하 직원이 뭘 했는지 물어보지 마시라! 그것도 눈치, 압박 주는 것이다. 왜 그리 생각이 없는지 모르겠다. 부하 직원들만 센스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상사들도 센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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