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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Aug 30. 2021

아는 사이일 뿐인데 친한 사이라는 착각

주식을 하다가 깨달은 인간관계

십수 년 전 일이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있었다. 함께 참석하는 모임이 있어서 주말마다 만나고, 주중에도 종종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7년이니, 그 정도면 당연히 우리는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속까지 터놓고 지낸 사이니 친하다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느 날 그의 연애 상황과 관련해서 쓴소리를 했다. 나름 애정을 담은 말이었다. 친한 사이이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그가 대뜸 성을 내며 “너와 내가 그 정도 말을 할 사이이냐”라고 따졌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내 말에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났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화가 날 수도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가 여자 친구와 관계가 잘 풀렸으면 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미안했다.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니...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제대로 벙쪘다. 어찌 우리가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지? 그가 “그런 말을 해서 기분 나쁘다”라고 말했다면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하기만 했겠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친한 사이가 아니라니. 그러면 7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라는 말인가.


'함께한 시간이 길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없구나.'

'마음을 나눴어도 친한 사이가 되는 건 아니구나.'


이 사건은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주식 투자를 할 때 종목 분석은 필수다. 스캘핑(초단타)이나 데이트레이딩(단타)을 할 게 아닌 이상 기본적 분석은 무조건 해야 한다. 주식 시장에 진입한 기간이 짧을수록, 주린이들은 기본적 분석력이 떨어진다. 분석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분석 결과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분석 결과가 부실하니 그것을 투자 근거로 삼기에 미흡하다. 하지만 주린이들은 자신의 분석 결과가 뛰어나다고 착각한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라는 말처럼, 아는 것이 전부이니까.


주식 시장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기본적 분석을 철저히 했어도 안심하면 안 된다. 아무리 분석 결과가 뛰어나도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고수라고 해서 시장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운전수가 아니고서야 시장을 앞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분석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종목의 모든  꿰차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분석한 종목의 재무제표와 차트가 눈에 익었을   종목에 대해 모든  안다고 착각하면  된다.  종목에 대해 모든  꿰뚫었다고 확신하는 순간 종목을 핸들링할  있다는 교만에 빠진다. 그때부터 무리하게 투자한다. 시장을 거스르기 시작한다. 그런 태도는 자신의 투자금을 전부 불태울 준비를 마친 셈이다.




아는 것과 친한 것은 다르다. 인간관계에서 누군가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연예인의 나이, 키, 생년월일, 필모그래피 등을 꿰고 있는 상태와 같다. 상대에 대한 외적이고 기본적인 지식만 습득한 상태이다. 반면 친한 것은 습관, 취미, 가정 형편,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등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필요하거나 요청하면 서로 언제든 도와줄 수 있는 상태이다.


생각해 보니 앞서 언급한 지인과 7년 동안 관계를 맺었어도 그저 알고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에게 나의 고민을 말한 적은 종종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어려울 때 나에게 찾아온 적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내 속사정을 털어놓았기에 우리는 친한 사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에게 나는 그저 아는 사람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그가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다면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았겠지.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길다고 친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날마다 붙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함께한 시간과 대화한 시간이 길다고 해서 친한 사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대 선후임이나 직장 동료는 전부 친한 사이가 될 것이다. 직장 동료처럼 매일 보고, 하루 종일 붙어 있고, 수다를 많이 떨어도 그저 아는 사이로 그칠 수 있다.


아는 사이에 불과하지만 혼자 친한 사이라고 착각하면 상대에게 언젠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친한 사이라면 으레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한 기댓값이 크니까. 그래서 아는 사이와 친한 사이는 잘 구분해야 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나 혼자 착각하면, 한 종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다가 무리한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처럼 유무형의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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