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저보고 부럽다네요. 일을 안 하고, 집에 있으니까요. 1년 동안 육아 휴직 중이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집에서 노는 줄 알아요.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말이죠.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바쁘고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잠깐 주부이지만, 어쨌든 주부이니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등하원시키고, 아침저녁 먹이고, 잘 때까지 놀아주고, 씻겨 재우는 건 당연히 제 몫이죠. 주부님들, 다들 공감하시죠. 이것만 해도 하루가 금방 가잖아요. 이렇게까지만 해도 할 말이 많은데, 저는 할 말이 더 있어요. 놀려고 육아 휴직을 한 게 아니에요. 인생의 2막을 준비하기 위해 준비 기간을 갖은 거죠.
능력 있게 살지는 못해서 아쉽지만, 참 부지런하게는 살았어요. 10년 넘게 하루도 안 거르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5시 반에 출근했으니 정말 부지런하기는 했죠. 그런데 말이죠. 부지런하게만 사니, 나이 먹고 남은 건 퇴사더라고요.
임원 진급? 그런 건 중견 기업 이상에 다니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자리죠. 모두가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잖아요. 혹시나 겨우 그 자리에 앉았어도 결말은 같아요. 결국 퇴사죠. 사업 혹은 자영업? 22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 폐업률이 너무 참담해요. 1년 미만이 21.2%, 1년 이상 3년 미만이 39.5%, 3년 이상 5년 미만이 28.1%, 3년 이내에 폐업 비율이 88.8%래요. 직장인이었던 사람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퇴직금 쏟아붓고, 빚까지 끌어모은 결과가 폐업이에요.
퇴사 아니면 폐업. 이게 지극히 평범한 40대 가장이자 직장인이 맞이하게 되는 흔한 결말이잖아요. 그래서 40대가 되면 고민을 하는 거죠. '퇴사하고 내 일을 해야 하나, 끝까지 다녀야 하나?' 하고 말이죠. 뻔한 결말에서 벗어나려고요.
뻔한 결말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고 육아 휴직을 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싹이 보였던 N잡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지금 N잡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있어요. 아이를 등원시킨 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에 집에 올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어서지 않아요. 그리고 아이고 돌아오면 밥 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재운 후 밤 10시부터 늦은 밤 2시까지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요. 하루에 12시간을 앉아 있어요. 물론 그 시간 동안 100% 몰입하는 건 아니에요. 시간 누수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직장 생활할 때보다 더 오래 앉아 있어요.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생활한 지 8개월 째에요. 제게 주어진 1년에 모든 걸 걸었어요. 1년 동안 승부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에요. 실패하면 다시 회사에 돌아가야 돼요. 그러면 또다시 제 미래가 암울하고 불투명해지니, 그렇게 될까 봐 걱정돼요. 육아 휴직이 4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서 우울해요.
이런 제 속도 모르고, 부럽다니요. 속사정을 모르니 부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요. 그저 제 속만 타들어가는 거죠.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
가끔 직장 동료와 통화를 해요. 통화할 때마다 돌아오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돌아가기 싫어요. 밖이 지옥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차라리 지옥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싶어요. 회사에서의 전쟁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으니까요. 제 몸에 붙은 불을 끄지는 못할지라도 소화기를 뿌려보기라도 하고 싶어요. 그러다 잘 되면 재탄생할 테니까요. 도박이라는 걸 알지만, 시도는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해볼걸...'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후회보다는 후련한 게 나으니까요. 해봐서 안 되면, 제 탓이라도 할 수는 있잖아요.
아무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육아 휴직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아내와 상의해 봐야죠. 과연 4개월 후에 가끔 통화하던 그 동료 옆에 앉아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자리에 앉아 있을까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말이죠. 시도는 해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