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짓는남자 Mar 31. 2024

사십 먹고 아내에게 대드는 이유

요즘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어요. 10대 시절 사춘기가 왔을 때 온 줄도 모르고 지나갔던 것 같은데, 뒤늦게 사춘기를 겪네요. 요즘 아내에게 대들고 있거든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냉담하게 대답을 하고, 짜증을 부려요. 몇 주 전에 아들 녀석이 저와 아내에게 매일 짜증을 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요. 아들이 조용하니 제가 바통을 이어받았네요.


https://brunch.co.kr/@book-writer/301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는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나름의 핑계는 있어요.




여보 미안해...


아내를 향한 짜증은 사실 저를 향한 거였어요.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 해도 안 되고... 못난 제 자신을 향한 짜증이 아내에게 튀어나가더라고요. 저한테 짜증 부린다고 속이 후련해지지 않으니까요. 아내에게 쏟아낸다고 뭐가 다를까요. 그러면 아내 마음에 상처만 주죠. 알면서도 아내에게 못난 행동을 하게 되네요.


다른 남편들처럼 아내를 집에서 편히 쉬게 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더라고요.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봐야 쥐꼬리만 한 월급만 가져다주었죠. 아내가 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지 못했어요. 그런 제가 너무 한심해서 한숨을 내쉬는 거죠. 그 한숨이 아내에게 짜증으로 표현되는 거고요. 그 마음을 가리려고 잘난 자존심을 부리는 거예요. 돈 잘 버는 능력은 없지만, 나도 아직 힘은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아무 쓸모없는 힘을 말이죠.


또 한 가지가 있어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자꾸 짜증이 나더라고요. 제가 도전할 수 있게 아내가 기회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해서 미안하더라고요.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너무 미안하니까 오히려 위로받고 싶었어요. 저의 마음을 알아채 주고, 도대체 요즘 무슨 일 있냐고 먼저 물어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 짜증을 부리는 거예요. 차마 제 입으로 먼저 말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힘들면 말을 하면 되는데, 말을 못 하는 것조차 자존심이겠죠.




아내가 바라는 행복은 그게 아닌데...


"여보, 자기가 얼마를 벌든 괜찮아. 자기가 많이 못 벌어도 괜찮아. 내가 같이 벌면 되니까. 자기한테 많이 바라는 걸 바라지 않아. 얼마를 벌든 행복한 게 중요하니까."


아내가 신혼 때 한 말이에요. 결혼 9년 차인 지금도 아내는 같은 말을 해요. 그 말은 진심이었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죠. 하지만 제가 자꾸 흔들려요.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못난 자존심에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다고 근로소득이 갑자기 솟아오르지 않기 때문에 아내에게 늘 미안했어요. 아내는 계속 괜찮다고 말하지만, 저는 늘 목말랐죠. 그래서 육아 휴직을 했고, 사업을 하겠다고 아내에게 큰소리쳤죠.


도전은 했지만 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잘 될까 의문도 들고 불안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자꾸 짜증을 내요. 아내가 바라는 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하는 건데 말이죠. 아내가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사십 대 남편들의 마음이 저와 같지 않을까요? 나이는 점점 먹고 내 몸은 예전 같지 않아요. 하나둘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게 느껴져요. 냉혹한 현실은 그런 나를 받아주지 않아요. 미래는 깜깜하고, 현실은 암울한... 그래서 한숨만 쉬는 사십 대 가장들...


뉴스 기사를 보니 제 나이 대도 명퇴 대상자에 포함되기 시작되었더라고요. 이삼십 대 때 보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제 나이 대 친구들이 연출할 차례가 되었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족에게 출근한다고 말해놓고, 편의점에 가서 김밥을 먹는 사십 대 남편의 모습 말이죠. 사십 대가 되면 다 그렇게 되나 봐요. 어릴 때는 우리 아버지도 저럴까 생각하며 드라마를 봤는데요. 이제는 제가 그러게 생겼어요.


한숨 쉰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죠. 아침이 시작되고 밤이 돌아오겠죠. 오늘도 내일도요.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겠죠. 나만 빼고요. 그 틈바구니에 다시 끼려면 어떻게든 비벼봐야죠. 세상이 저를 밀어내고 거부해도 달라붙어야죠. 어쨌든 살아야 하잖아요. 세상이 저를 거부한다고 저까지 세상을 거부할 수는 없잖아요.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실질적인 가장은 아내이지만, 그 자리를 되찾아 올 거예요. 다른 아내들처럼 집에서 가사와 양육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줄 거예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가장의 자부심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너무 가부장적인가요? 아무렴 어때요. 그게 제 꿈인데요. 이루기만 하면 되는 거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