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내에게 이제부터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큰소리쳤어요. 직장인 주제에 사업이라니, 사업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수는 없잖아요. 자리 잡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웬만한 노력으로는 자리 잡기 힘든데 말이죠. 그래도 해야만 했어요. 나이도 나이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더 나이가 들면 도전할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저의 비즈니스 모델은요
저는 지금까지 직장생활만 해서 사업 설명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설명회 준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아내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여보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렇게 진행할 거야."
사업 내용, 방법, 방향 등을 열심히 설명했어요. 설명을 하면서 내심 기대했어요. 아내가 이렇게 반응해 주길 말이죠.
"와, 대박! 어떻게 그런 걸 구상했어? 자기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잘해봐. 파이팅!"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래, 잘해봐!" 이 정도만 기대했죠.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냉담했어요.
"... 에휴..."
한숨을 쉬더니 자버리더라고요. 말문이 막혔어요. 조용히 방을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나름 야심 차게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 모델을 구상하고 도표까지 만들었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고요. 만든 자료를 눈앞에 들이대니 그제야 흘깃 흘려보고 말더라고요. 아내가 왜 그렇게 반응을 했는지 이해는 됐어요. 지난 8개월의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요.
8개월 동안 하루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어요.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쉼 없이 N잡에 집중했어요. 과정만큼은 부끄럽지 않았고,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거예요. 결과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저의 계획에 당연히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겠죠. 아내의 반응은 잘못된 게 아니었어요. 그저 현실의 냉담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이었죠. 아내의 한숨은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사실적으로 대변해 주었어요.
죽어라 해도 성공하기 힘들어
며칠 뒤, 2년 전 사업을 시작한 지인에게 사업 내용을 설명했어요. 사업 계획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조언을 받으려고 말이죠. 지인도 한숨을 쉬더라고요. 저는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우겼어요. 그는 그걸로는 안 된다고 말했어요. 죽을 각오로 해도 실패하는 게 사업이라더라고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미친 듯이 해야 한다며, 아직 자세가 부족하다고 꼬집었어요. 역시 먼저 시작한 사람이라 그의 눈에는 뭔가 부족한 게 보였나 봐요.
아내와 지인의 반응에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제 목소리를 듣고 안타까움을 느낀 지인이 그래도 응원을 한 마디 해주더라고요.
"어차피 준비해야 하니 시작해 봐. 직장에 조금 더 다닌다고 해도 어차피 퇴사해야 할 날이 오잖아. 오십, 육십이 돼서 뭐 할 거야? 그때 가서 준비하면 늦어. 그러니 길게 보고해 봐."
'해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면서 사업은 무슨...' 심드렁한 마음에 알바 어플로 지역 일자리를 검색해 봤어요. 월급에서 출퇴근 차비라도 아껴보려고요. 하지만 현실은 정말 냉담하더라고요. 지금 저의 상황이 지옥이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나이 사십 넘은 남자를 찾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회사는 물론이고, 알바조차도 말이죠. '내가 정말 사십 대 긴 하구나', 새삼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게 마흔의 현실이구나...' 저의 현실이 처참했어요.
가슴이 찢어졌지만, 그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어요.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면 십 년은 더 일할 수 있겠지만, 그다음은? 지인이 꼬집어준 대로 오십 이후의 삶이 전혀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되든 안 되든 사업 준비를 해야만 했어요.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오십 넘어서 지금 한 고민을 다시 할 테고, 그때는 더 답이 없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아내가 걸렸어요.
사업 설명회까지 한 마당에 '내 주제에 무슨 사업이냐'며 직장생활이나 해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하면, 앞으로 제 말을 신뢰하지 않겠죠. 다시는 저를 지지해주지 않겠죠. 성공하든 못하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깨지고 부서져도 한계 넘어까지 가보면, 설령 성공하지 못해도 최소한 아내가 저에게 실망하지는 않겠죠? 나이를 핑계 대지는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