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있어요.
‘부모님이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뵐 날이 얼마 없구나... 길어야 10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시겠네...’
자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 생각만 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철없는 자식이더라요. 불혹, 나름 어른이 되었음에도 부모님보다는 제 생각만 해요. 귀찮다는 이유로 연락도 제대로 드리지 않으니까요. 제 살 궁리만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보다는 아직도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게 편해요. 그게 더 친근감이 느껴지니까요. 어른들 말씀대로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철부지 행동만 하나 봐요.
이삼십 대 때에는 부모님 나이가 그리 많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언젠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죠. 갑자기 가시지 않는 이상, 적어도 80살 까지는 살아계실 테니까요. 80살 까지는 적어도 30년 이상 남았었으니까요. 30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 긴 시간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사십이 넘었어요. 제 나이를 바라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눈길이 가더라고요. 어린 제 기억 속에 부모님은 거인이었어요. 항상 매우 단단하고, 굉장히 든든한 존재로 느껴졌었죠. 안전하고 편안한 쉼터였어요. 두 분 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머리에, 얼굴에는 주름이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요. 제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그런 모습을 유지하고 계신 것만 같아요.
하지만 제 두 눈에 들어온 부모님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해요. 흰머리가 무성하죠. 어릴 적 저를 길러 주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과 똑같아졌어요. 두 분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어요. 손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실제 모습이 말이죠. 두 분은 더 이상 거인 같지 않아요. 안전하고 편안한 쉼터가 아니라, 제가 지켜드려야 할 연약한 존재가 되었어요. 아직 허리까지 꼬부라지지는 않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그렇게 되겠죠.
얼마 전에 102세 엄마와 85세 딸의 일상을 담은 다큐 영상을 봤어요. 엄마도 딸도 꼬부랑 할머니더라고요. 남들이 보면 두 분 다 할머니예요. 하지만 한 분은 엄마, 한 분은 딸이죠. 딸이 아픈 데가 있어서 병원에 간다고 하니 엄마가 따라가시겠데요. 아픈 데도 없는데요.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으시다면서요. 같이 갔다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냐며 딸을 따라가고 싶으시데요. 함께 나이가 드니 친구가 되네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두 분이 중국집에 가셨어요. 엄마가 통장을 꺼내며 짜장면을 먹자고 하시더라고요. 딸이 아픈 데가 나았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사주시는 거래요. 엄마가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뭐든지 얘기해 봐, 다 사 줄게. 뭘 먹어도 되니까. 많이 먹어."
이 장면을 보며 울컥했어요. 자식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역시 엄마는 엄마더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저를 102세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시겠죠?
안 그래도 눈물 많은 저인데, 사십이 넘으니 눈물이 더 많아졌어요. 오십이 되면 울보가 될까요? 부모님이 제 곁을 떠나시면 눈물이 얼마나 나올지...
오늘은 꼭 부모님께 전화드려야 겠어요. 아니, 그럼 또 다음으로 미룰 테니 이 글을 다 쓰고나서 해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