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지 100일 만에 프러포즈한 사연
나는 확신했다. 아내(당시 여자 친구)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증거가 있냐고? 물론이다. 나의 세뇌 작전이 통했던 걸까? 대화할 때 기회를 엿보아 틈틈이 결혼 얘기를 했는데, 어느 순간 아내도 결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령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결혼해서 퇴근하고 이렇게 둘이 매일 공원을 걸으면 좋겠다”, 맛집에서 저녁 먹을 때 “퇴근해서 요리해 먹으면 맛있겠다”와 같은 말들을 아내가 했다. 아내도 나와 결혼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저 ‘결혼해서’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내가 아니라 누구와 결혼하든 말이다. 웁쓰.
착각이면 어떠랴! 아내의 반응에 고무된 나는 이제 적극적으로 구애하기 시작했다. 아예 대놓고 결혼 얘기를 꺼냈다. “결혼하고 싶다.” “우리 언제 결혼해?” 틈만 나면 결혼 노래를 했다. 아내도 내 말이 듣기 싫지 않았는지 맞장구 쳐줬다. 이때도 착각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맞장구쳐주는 게 아니라 나와 결혼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착각이었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잘했는 생각이 든다. 계속 결혼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정신을 못 차렸다. 바람에 돛단배가 떠밀려 가듯, 내가 미는 대로 쭉 밀려갔다.
착각이 확신으로 굳어질 때쯤, 큰 결단을 했다.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말이다. 이 정도 반응이면 나와 결혼하고 싶은 게 확실하니 변하기 전에 그녀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 프로포즈를 잘못하면 그간의 공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에는 마음이 느긋한데,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갑자기 급해진다. 급해진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친 적이 많다. 그래서 일단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사람들은 보통 프로포즈를 상견례를 한 후에 하거나 결혼 준비까지 끝낸 후에 한다. 그럼 안 된다! 당연히 프로포즈를 먼저 해야지! 프로포즈란 무엇인가? 결혼하자고 하는 청하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프로포즈를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상견례 후나 결혼 준비를 마친 후에 프로포즈하면 그게 프로포즌가? 아니다. 그건 ‘직무유기’다. 프로포즈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 하려거든 미루지 말고 얼른 해야 한다.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꼭 남자만 해야 하나?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 사람이나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이 먼저 하면 된다. 왜 여자들은 (모든 여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통념상)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왜 남자가 해주길 바랄까. 성 평등을 외치는 시대다. 왜 여자들은 프로포즈를 받고 싶어 하고, 못 받으면 그걸로 바가지를 긁나? 그건 잘못된 거다. 문화적 환상이다.
어쨌든 프로포즈 준비에 돌입했다. 언제 어떻게 프로포즈를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과연 프러포즈를 멋지게 잘할 수 있을까? 그녀가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줄까? 괜히 혼자 설레발레 치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물릴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 않았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얼른 프로포즈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녀에게 멋진 프로포즈를 해줘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