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모태솔로의 신혼일기 #6

러브러브러브. 깜짝 프로포즈 준비~

by 인생짓는남자

화려하게는 못 해줘도 평생 기억에 남는 프로포즈를 해주고 싶었다. 차 트렁크를 ‘짜자잔’ 열면 풍선이 날아가면서 ‘Marry Me’라고 쓰인 피켓이 따라 올라가고, 트렁크 안에는 예쁜 꽃이 한 다발 들어 있는 장면을 연출할까? 아니, 이건 절대 불가능. 일단 차가 없다. 차야 빌리면 되지만, 장롱 면허라 운전을 못 한다. 탈락!

현관에서부터 거실까지 촛길을 만들고, 촛길 끝 바닥에는 초로 하트를, 하트 중앙에는 작은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꽃다발과 반지를 놓아둔다. 천장에는 헬륨 가스를 놓은 풍선을 한가득 띄워 놓는다. 좋아! 하지만 이것도 탈락! 우리 집에서는 못한다. 부모님이 계시니까. 아내(당시 여자 친구) 집에서도 불가능. 그럼 이벤트 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건 싫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손으로만 꾸며서,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이것도 탈락! 그럼 어떡하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에 카페를 하는 지인이 있었다. 다행히 그 카페는 주택 단지 구석에 있어서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없었다. 딱이다! 그 카페에서 이벤트하자! 이만한 장소가 없다! 장소 섭외 끝. 이제 이벤트를 구체적으로 기획해야 했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프로포즈 받을 걸 알고 받으면 설렘과 감동이 덜할 테니까.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감동이 넘치고 넘치게 하려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지! 어떻게 해야 티 안 내고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 오호라, 그래. 지인 카페에서 데이트하자고 해야겠다. 그럼 그냥 데이트하는 줄 알겠지. 아니, 바로 눈치챌걸! 여자의 직감은 거짓말 탐지기보다 더 무섭다! 100일에 지인 카페에서 보자고 하면 여자의 직감이 아니라도 당연히 눈치채겠지. 뭔지는 몰라도 내가 뭘 준비했구나, 감 잡을 것이다. 그럼 안 돼! 감도 못 잡게 해야 하는데... 그럼 이 수밖에 없다. 한 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100일 기념식은 과감하게 버리자. 100일 이벤트를 해주는 척하고, 사실은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다. 그럼 거짓말 탐지기를 가져와도 프로포즈는 절대 눈치 못 채겠지. 그리고 어차피 내가 100일 기념 이벤트를 해줄 거라는 건 충분히 눈치챘을 것이다. 그 전 주말에 이케아에서 데이트했는데, 아내가 보는 앞에서 미니 캔들을 샀으니까. 아내가 왜 사냐고 물어봤는데 집에서 쓸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무려 30개나 샀으니 눈치를 못 챌 수가 없다. 하지만 100일 이벤트는 예상해도 프로포즈는 결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사귄 지 100일 만에 프로포즈할 거라는 걸 어찌 눈치챌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무모하고 엉뚱한 행동이기 때문에, 여자의 직감도 소용없을 것이다. 나의 스텔스 작전은 여자의 직감이라는 레이더망을 보란 듯이 피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럼 어떤 내용으로 하지? 일단 초를 샀으니 어떻게든 써야 하는데... 그래, 러브 액츄얼리다! 본 건 있어서.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을 따라 하자! 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유명한 그 장면은 수도 없이 봤다. 크리스마스에 칼이 줄리엣의 집 앞에서 피켓으로 고백하던 장면 말이다.

다 기획했도다! 이제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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