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모태솔로의 신혼일기 #10

“1월에 결혼해라.” 드디어 결혼 허락을 받다!

by 인생짓는남자

야심 차게 준비한 깜짝 프러포즈에 성공하고 고민에 빠졌다. ‘프로포즈는 잘 마쳤는데, 결혼 허락은 어떻게 받지?’ 우리 부모님이야 내가 빨리 결혼했으면 하는 눈치여서 결혼 허락을 받는 데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아내(당시에는 여자 친구) 쪽 사정은 달랐다. 왜, 그렇잖은가. 아들 가진 부모 마음과 딸 가진 부모 마음은 다르지 않은가. 그것도 부모 나름이긴 하지만, 대개 딸 가진 부모들은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딸에게 결혼 좀 하라고 채근해도 막상 결혼하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아쉬워한다. 그 이유가 있다.




우리 문화에서 결혼과 관련하여 남자는 ‘장가가고’, 여자는 ‘시집간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장가’는 사전적으로 ‘사내가 아내를 맞이하는 일’이라는 뜻이고, ‘시집’은 ‘시부모가 사는 집’을 가리킨다. 훗날 우리 세대가 부모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들은 며느리를 ‘데려오고’, 딸은 ‘시집에 ‘보낸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을 쓴다. ‘시집간 딸은 가족이 아니라 남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제 이 말을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부모님 세대는 물론이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우리 세대도 그런 인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아내는 ‘딸’, 그것도 ‘맏딸’이다. 안 그래도 딸이라 장인·장모님(당시에는 여자 친구 부모님)께서 결혼시키기 아쉬워 하실 텐데, 첫째라 더 그러실 게 분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두 분 중에 장모님을 먼저 뵀는데, 프러포즈하기 전에 아내를 통해 인사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 드렸더니 싫다고 하셨다. 내 청을 전달 받으시고 처음에는 보자 하셨다가 이내 싫다고 말씀을 바꾸셨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싫어서 그러신 줄 알고, 크게 낙담했다. 얼른 결혼하고 싶은데, 보기 싫다는 건 결혼 반대나 마찬가지니까.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까워져야 결혼 허락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날벼락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다행히 나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기 싫다고 하신 건 아니었다. 나에 대해 괜찮게 느끼셨지만, 내 직업을 마음에 안 들어 하셨다. 아니, 정확하게는 직업 자체가 아니라 박봉인 게 문제였다. 이 말인즉슨 나와 결혼시키면 아내가 고생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딸 시집 ‘보내는’ 것도 서글픈데, 딸이 결혼해서 고생하면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는가. 본인 삶과 겹쳐서 괴로워하시겠지. 본인이 결혼해서 평생 고생하셨으니 딸은 편히 살았으면 하는 게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다. 나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보기 싫다고 하신 이유가 또 있다. 보자고 하면 왠지 결혼 허락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정말 결혼하게 될까 봐 보기 싫다고 하셨단다. 프로포즈하기 전부터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노래를 불렀다. 아내를 4월에 만나서 5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12월에 결혼하자고 질리도록 노래를 불렀다. 그럼 사귄 지 7개월 만에 결혼하는 거다. 아내가 장모님께 내가 결혼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을 전해드렸으니 기가 막히셨을 것이다.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서로 얼마나 안다고 결혼을 해! 결혼이 장난도 아니고! 학교처럼 입학-졸업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자꾸 결혼하겠다고 하니 어이없으셨을 것이다. 나를 보겠다고 하시면 결혼 허락이나 다름없다고 느끼셔서 보기 싫다고 하신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프로포즈 후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허락을 받아야 결혼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결혼 허락을 받냐고! 머릿속이 하얬다. 그래도 다행인 게 한 가지 있었다. 장모님을 뵀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어이없게 말이다. 인사드리고 싶다는 내 청을 거절하신 후, 길에서 서로 엄청 뻘쭘하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뒤로 아내 집에 매일 놀러 갔다. 정말 매일, 월, 화, 수, 목, 금, 주말을 제외하고는 데이트를 아예 아내 집에서 했다. 아내 집에서 데이트했으니, 당연히 장모님도 매일 보게 되었다. 장모님과 함께 저녁 먹고, TV도 같이 보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난 후였던 것 같다.




프로포즈 후 보름하고도 이틀이 지난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내 집에서 장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하고 TV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장모님이 결혼식에 대해 말씀하시더니 1월에 결혼하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원래는 다음 해 9월로 허락하고 싶은데, 어차피 결혼할 거 9월이든 1월이든 무슨 상관이냐며 그냥 빨리 결혼하라고 하셨다.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됐다! 어찌나 감사하고 놀랍던지, 감사하다는 말만 조용히 읊조렸다. 너무 놀라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장모님이 갑자기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 직장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으셨지만, 아내에게 잘하고 서로 좋아하는 걸 보시며 마음이 바뀌신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매일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모습이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이신 것이다. 온종일 일하고, 퇴근하자마자 아내 집으로 와서 늦게까지 놀다가 막차를 타고 다시 집에 갔다. 당시 출근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났고, 아내를 만난 후 집에 가면 밤 12시가 넘었다. 씻고 누우면 1시가 다 됐다. 하루도 빠짐없이 놀러가서 막차를 타기 위해 헐레벌떡 아내 집을 나가서 뛰어가는 모습을 보시고는, 그리고 하루에 4시간만 자는 게 안쓰러워서 허락하신 것이다. 장모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시며 “젊은 혈기에 얼마나 참기 힘들겠냐”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됐지만, 알고 보니 젊은 사람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렇게 다니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뜻이었다.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그렇게 무리한 생활을 한 건 아니다. 그저 아내를 그만큼 사랑했을 뿐이다. 보고 또 보고 싶고, 1분 1초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그랬다. 전략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래서 피곤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아니, 사실 피곤했지만, 행복해서 참을 만했다. 솔직히 참을 만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생활은 몸에 무리가 가기에 한계에 다다르면 어떻게든 결혼할 생각이었다. 아내와 늘 함께하고 싶어서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결혼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그런 행동이 결과적으로 완강하던 장모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슨 결혼이냐고 말씀하시던 분의 마음이 나의 순수한 마음과 불쌍한 모습에 자연스레 녹아내렸다.




드디어 결혼 문턱에 이르렀다! 앗싸~ 도 잠시. 아직 고비가 남았다. 장인어른의 허락은 받지 못했다. 장모님이 몰래 먼저 허락하신 것이다. 아, 기분이 좋긴 했지만 이를 어쩐다 싶었다. 산 넘어 산이다. 장인어른의 허락은 어떻게 받아야 할지. 장인어른은 아직 뵙지 못했고, 심지어 아내와 내가 사귄다는 사실 조치 모르시는데, 어떡하면 좋지? 장인어른이 반대하시면 말짱 꽝인데... 좋다가 말았다. 다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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