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위반. 대형 사고를 쳤다!
인생은 왜 이리 복잡하고, 힘든 걸까? 이제 막 고비를 넘기고 숨 좀 쉬려니 이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기 일쑤다. 한고비를 넘고 나면 또 한고비를 넘어야 한다. 인생은 태백산보다 더 높고 험하다.
장모님의 허락을 겨우 받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더 큰 고비가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제 장인어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혹자는 ‘장모님이 허락하셨는데 그게 뭐 어려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설령 장인어른이 반대하셔도 장모님이 설득해 주실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좋으련만,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장모님이 1월에 결혼하라고 허락하시자마자 속성으로 둘이서 날짜를 정했다. 우리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설득하여 정한 날짜를 허락받았다. 장모님도 그때면 괜찮겠다고 말씀하셨다. 날짜를 정하자마자 순식간에 결혼식장을 몇 군데 돌아보고, 한군데서 예약까지 마쳤다. 결혼 허락 후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순식간에 일을 벌이는 동안 장인어른께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 아니,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장인어른은 내 존재조차 모르셨으니까. 우리는 다른 면에서 속도위반 아닌 속도위반을 한 셈이다.
장인어른은 개인 사업을 하고 계셔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방에서 지내셨다. 워낙 먼 곳에 계셔서 찾아뵙기 힘들었다.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일단 교제 사실부터 알려야 했다.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시는데 결혼 허락이 웬 말인가! 그런데 교제 사실은 어떻게 알리지? 아내가 뜬금없이 전화해서 “저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 그럼 일단 내려가서 인사라도 먼저 드릴까?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방법을 고심하던 중에 큰일이 터졌다!
장인어른이 볼일을 보시려고 운전하고 가시다가 사고가 나셨다. 조금 열려 있던 차창으로 벌이 들어와서 쏘이셨다. 갑자기 당하신 일이라 놀라서 핸들이 틀어졌고, 차는 도로 옆에 있던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다행히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차가 크게 파손됐다. 후에 사고 난 차량을 봤는데 엄청난 사고였다. 포터의 가운데 부분이 뒷좌석과 딱 붙어 있었다. 운전석 쪽으로 받았으면 생사를 장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운전석 쪽은 아무 이상이 없었고, 장인어른은 가벼운 부상만 당하셨다. 하지만 사고 충격으로 반나절 동안 기절하셨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내상을 확인하기 위해 입원하셨다.
장모님이 급히 내려가셨는데, 아무 이상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듣고 바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아내는 아예 내려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모님도, 아내도 일해야 했으니까. 아내는 하필 한 달 중에 가장 바쁜 시기라 내려갈 수가 없었다. 장인어른께서 이에 화가 많이 나셨다. 사람이 다쳐서 입원했는데 어떻게 자식들이 내려올 생각을 안 하냐고 말이다. 당신은 자식이 사고 났으면 열일 마다하고 바로 찾아갔을 텐데 자식 낳아봐야 소용없다고 노발대발이셨다.
장인어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너무 먼 곳에 계셔서 갈 수가 없는걸. 가까운 곳에 입원하셨으면 당장 갔겠지. 게다가 다친 곳이 전혀 없다고 하니, 차는 폐차해야 할 정도로 부서졌는데 정말 다행히도 장인어른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으셨다. 그러니 당장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일을 마치고 주말에 내려가려고 했다. 아내가 장인어른께 그런 상황을 설명해 드리려 했지만, 화가 나신 장인어른은 아내가 전화를 수십 통 해도 받지 않으셨다.
큰일이다! 주말에 내려가더라도 보기 싫으니 그냥 가라고 하실지도 모른다. 그럼 어떡하지? 올라왔다가 그다음 주말에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한두 시간 걸리는 거리가 아니라 그럴 수 없는데... 사실 거리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화가 나셔서 전화를 안 받으시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문병 가서 결혼 허락받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아무리 다치신 곳이 없더라도 “결혼 허락해 주십시오!” 패기 부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그전에 인사라도 몇 번 드렸으면 모를까. 처음 뵙는데, 병상에서 다짜고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예식장 예약에 상견례 날짜까지 다 잡아놨으니까. 장인어른께는 이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해야 했다.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는 듯 연기를 하며 어떻게든 승낙을 받아와야 했다!!!
고민은 그만! 에라, 모르겠다. 부딪혀 보자! 아내와 함께 무작정 내려갔다. 전화도 안 받으시고,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화가 풀리실 때까지 기다리면 절대 안 풀리실 것이다. 문전박대를 당하든 환영을 해주시든 가야 한다. 결혼 허락도 찾아봬야 받지. 일단 가자!
걱정을 한 아름 안고 내려갔다. ‘두근두근’ 마침내 장인어른 앞에 섰다!
“이 남자는 누구냐?”
장인어른의 첫마디였다.
“남자 친구예요.”
아내가 대답하자마자 나는 손에 든 과일과 음료수를 드렸다. 과일을 보시더니 씻어오라 하셨다. 아내와 함께 씻어 오니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다. 퉁명스럽게 아내와 몇 마디 주고받으시더니 밥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상당히 어색한 상태로 따라갔다.
장인어른과 아내가 늦은 아침을 먹으며 투닥거리를 했다. 옆에서 나는 굉장히 불편한 상태로 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장인어른이 갑자기 어디를 가자고 하셨다. 이리저리 길 안내를 하시더니, 지인에게 데려가서 인사시키셨다.
“얘가 내 큰 딸이야. 이 사람은 남자 친구고.”
“(아내와 이구동성으로) 안녕하세요.”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문병 왔는데, 아니 결혼 허락받으러 왔는데... 우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장인어른의 지인들 집을 순회하며 인사드렸다. 급기야 어느 집에서는 점심 겸 저녁까지 먹었다. 그 집에서 후식까지 먹으며 두어 시간을 있다 온 것 같다. 여러 집을 돌고 나니 각 집에서 장인어른이 갖고 올라가라며 얻어 주신 고구마, 호박 등 온갖 먹거리가 차 트렁크에 가득 찼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지인들에게 계속 인사를 시키셔서 장인어른과는 한 마디도 대화를 못 해봤다. 이게 아닌데... 마음이 급해졌다. 결혼 허락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다...
초조함이 절정에 다다르던 순간! 마침내 기회가 왔다! 올라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인 사업장에 아무도 없다! 장인어른이 누구 없냐고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때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여쭤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다시 오거나 일단 예식장 예약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 했지만, 아직 어색한 사이이고 게다가 예비 ‘장인어른’ 아니신가! 장인어른이 어렵게 느껴져서 쭈뼛쭈뼛 여쭈었다.
“(아내 이름을 언급하며) 00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무슨 결혼이야. 1년은 사귀어 봐야지.”
“그래도 결혼하고 싶습니다.”
“나한테 그런 거 묻지 마.”
너무 모호하게 대답하셨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확답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허락 못 받으면 식장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 예약을 취소하면 결혼 날짜가 미뤄질 수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어! 난 무조건 1월에 결혼해야 해! 필사의 각오로 다시 여쭈었다.
“결혼해도 될까요?”
“그런 건 너희가 알아서 해. 나한테 묻지 마.”
이게 무슨 말씀이지? 걱정과 달리 너무 쉽게 허락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올라가서 부모님께 허락받고, 상견례 날짜 잡을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알아서 해.”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정말 엄청나게 걱정했는데 대박이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시고,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시다니. 이름은 뭐냐, 무슨 일 하냐, 결혼하면 어떻게 데리고 살 거냐, 정말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으시고 그저 알아서 하라는 한마디만 하셨다. 너무도 쉽게 통과해서 꿈꾸는 것 같았다. 이미 결혼까지 한 것 같았다.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첫눈에 마음에 드신 듯하다. 아마 그래서 지인들에게 데리고 다니며 소개해 주시고, 자랑하신 것 같다. 자랑이래 봐야 키 크고 잘생겼다는 말씀뿐이었다. 직업이 뭐고 얼마나 버는지 같은 건 관심도 없으셨고, 지인들에게 얘기하지도 않으셨다. 자랑은 그저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의외였다. 그런데 딸 가진 아버지들이 그렇다고 들었다. 나보다 더 잘나 보이고, 내 딸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든든해 보이면 마음에 들어한다고. 다행히 내가 그리 보이셨나 보다.
모든 어려움이 다 지나갔다! 가장 큰 고비였던 장인어른의 허락까지 막힘없이 통과했다! 아내와 나는 결혼할 운명이었나 보다~ 그런데... 큰 고비까지 무사히 넘겼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들어보니 결혼 준비도 쉽지 않다던데, 결혼 준비하며 많이 싸우고 헤어지기까지 한다던데 우리는 어떨까? 결혼은 식장까지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던데, 어떻게 보면 결혼 준비가 가장 큰 고비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