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준 감동의 첫 생일선물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마침내 양가 부모님 모두에게 결혼 허락을 받았다. 최대 고비였던 장인어른의 승낙까지 받았으니 결혼에 대한 고민이 싹 사라졌다. 게다가 결혼 날짜는 1월 첫 주 주말. 12월에 결혼하고 싶다던 나의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면 나의 바람을 이룬 거나 다름없었다.
장인어른께 결혼 허락을 받고 올라와서 며칠 지난 후 연락드렸다. 결혼 날짜는 이때로 잡았고, 상견례는 이 날인데 괜찮으시냐고 여쭈었다. 이번에도 “뭐가 그리 급하냐”고 말씀하셨지만,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다. 이내 “알았다”고 하셨다. 장인어른까지도 승낙하셨으니 상견례만 잘 치르고, 결혼 준비만 잘하면 된다. 앗싸, 나도 이제 곧 결혼한다!
상견례를 기다리던 사이, 아내의 생일이 다가왔다. 태어나서 여자 친구 생일은 처음 맞아본다! 당연하지. 난 모태솔로니까. 그런데 어떡하지? 나와 사귄 후 첫 생일인 만큼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깜짝 프로포즈 이벤트를 한 지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그보다 더 거창한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 아주아주 기억에 남고 감동적인 생일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뭘 준비해야 할까?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매우 강력한 비밀 선물이 있었으니까!
아내와 사귄 첫날부터 아내 몰래 준비하기 시작한 선물이 있었다. 아내에게 안겨 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준비한 선물이다! 그 선물은 바로 ‘사랑 편지’다. “에게~ 겨우 편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보통 편지가 아니었다! 아주 특별한 편지였다. 우리가 사귄 날부터 아내 생일까지는 136일. 하루도 안 빠뜨리고 매일 쓴 편지였다. 아내가 편지를 받고서 읽은 후 한 말이 있다.
“죄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우리 언제 결혼하냐’라는 말밖에 없네~”
그렇다. 136통의 편지 모두 하나같이 그런 내용만 담았다. 아름다운 시나 감동적인 고백은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나 내 심정이 어땠는지 같은 내용도 담지 않았다. 아내가 말한 그대로 전부 ‘사랑한다’, ‘보고싶다’, ‘우리 결혼 언제하냐’라는 말만 잔뜩 썼다. 한 장의 편지에 온통 그런 말뿐이었으니 어쩌면 아주 조금 실망했을지 모른다. 기대가 엄청나게 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아내와 결혼할 때까지 내 마음은 결혼으로 가득 찼고, 결혼 생각뿐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만큼 아내와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아무튼, 첫 번째 편지를 쓰기 전에 편지지와 편지 봉투 색깔을 깔맞춤하여 준비했다. 그리고 편지를 다 써갈 즈음 백수십 장의 편지가 딱 들어갈 수 있는 상자를 준비했다. 이렇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여 선물을 준비했다. 매일매일 편지를 쓰며 얼마나 입이 간질거렸는지 모른다. 아내한테 티 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선물을 주는 것도 깜짝 이벤트로 만들고 싶어서 정말 겨우겨우 참았다. 그렇게 엄청나게 공들여 준비한 선물이다. 공들인 만큼 어서 빨리 전해 주고 싶었고, 아내의 반응이 기대됐다. 그리고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그 선물을 전해 줄 시간이 왔다!
많고 많은 생일선물 중에 편지를 택한 이유가 있다. 이보다 더 큰 정성과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선물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물은 돈을 주고 사면된다. 돈만 있으면 어떤 선물이든 살 수 있다. 돈만 많으면 값어치가 큰 선물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돈으로 내 마음을 치장하고 싶지 않았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마음을 전달할 수 있고, 값어치가 큰 선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값어치가 큰 선물이 받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도 비싼 명품 가방이나 옷 아니면 장신구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비싼 선물을 하면서 이만한 선물을 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고 아내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형편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비싼 선물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게 지금도 한이 된다. 알량한 자존심에 할부로라도 사서 그런 선물을 해줄까도 생각했다. 그러려고 했지만, 왠지 나 자신이 처량해져서 관뒀다. 애초에 거창한 선물을 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비싼 선물을 해줄 수가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게 사랑 편지다.
편지는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담을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을 담을 수 있다. 편지에는 편지를 쓴 시점에서 ‘현재’와 편지를 읽는 시점에서 ‘과거’가 담겨 있다. 지난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편지를 쓰던 그때 당시의 ‘현재’를 편지에 오롯이 담았다. 또한 감정과 생각은 지나고 나면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과 생각은 소실된다. 나는 그날그날의 감정을 편지에 가득 담았다. 이렇게 아내에게 주기 위해 만든 생일선물에는 나의 시간과 감정이 전부 녹아있다. 시간이 지나서 쓰려고 하면 결코 담을 수 없는 것들이다.
게다가 아내를 만나고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가 넘었고, 편지를 쓰고 자면 새벽 2시가 다 됐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매일 5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날마다 3시간만 자며 136일, 최소 8,160분 동안 쓴 편지다. 이보다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선물이 있을까? 매일매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쓰며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고, 아내를 향한 사랑을 키웠다. 그런 선물이기에 이보다 더 값어치가 있고, 뜻깊으며 감동적인 선물은 없으리라. 비록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선물이었다.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이런 선물을 해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처량했고,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매일매일 편지를 쓰며 말도 못 하게 행복했다.
나의 땀과 시간과 혼이 담긴 생일선물을 전해 줄 시간이 왔다! 참 무드 없게, 처음 맞이하는 생일인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내 집에서 장모님과 셋이서 생일 축하를 하고, 저녁 식사했다. 식사 후에 선물을 내밀었다. 아내와 장모님이 그게 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편지가 담긴 상자를 열어보더니 뭐냐고 물었다. 우리가 사귄 날부터 어제까지 매일 쓴 편지라고 설명해줬다. 비싼 선물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정성을 담은 생일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뿌듯하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미안했고, 서글펐다. 아내와 장모님이 선물을 살피는 동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내와 장모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을 슬그머니 보니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퍽 감동한 눈치였다. 장모님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신 걸 보니 아내보다 더 감동하신 것 같았다.
아내는 그 편지를 얼마 동안 지인들에게 자랑했다. 지금도 가끔 친한 지인이 집에 놀러 오면 자랑한다. 얼마 전에는 이제 곧 태어나는 2세가 크면 보여줄 거라고 말했다. 그게 뭐라고... 비록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나 보다. 거창한 선물은 못 해줬지만, 그런 선물에 고마워 해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 꼭 비싼 선물을 해주고 싶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날이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서 아내에게 꼭 비싼 선물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