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상견례
아, 상견례! 결혼하려면 반드시 거처야 하는 절차이다. 상견례를 하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다. 결혼 주인공들이야 상견례를 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겠지. 서로 잘 알고, 결혼까지 결심했으면 이미 양가를 오가며 인사드렸을 테니까. 하지만 양가 식구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상견례를 해야 한다. 서로 안면을 트고, 결혼에 대한 대략적인 얘기를 나눠야 하니까. 또한 상견례를 기점으로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니 상견례는 꼭 해야 한다.
상견례는 격식 있는 자리라서 그만큼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양가가 아주 친한 사이라면 분위기가 그나마 낫겠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서로 전혀 모르고, 상견례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서로에 대한 이미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상견례는 정말 불편하다. 예의를 다해야 하니까. 점잖은 척해야 하니까. 근데 왜 상견례는 꼭 식사와 함께하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불편한데, 불편한 상태에서 밥까지 먹다가 체하면 어떡하려고. 조용한 카페에서 차 마시며 대화하면 안 되나? 한국 사람은 일단 밥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얘기하려면 밥이 필요한가 보다. 그 마음 이해한다. 나도 한국 사람이니까.
아무튼 상견례에 대한 양가 부담이 얼마나 큰지, 부담이 큰 만큼 어떤 실수가 오가는지 인터넷을 통해 많이 접했다. 그래서 나도 준비하는 동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특히 상견례가 처음이 아니어서, 이 말을 오해는 마시라. 형 상견례에 참석해 봐서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안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그때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는데도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상견례 분위기를 잘 알기에 걱정되었다.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텐데, 양가 부모님을 잘 모셔야 하는데...
상견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았다. 어떤 글은 신랑은 그저 양가 부모님을 편히 모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고, 다른 글은 분위기와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건지? 형 상견례 때는 내가 신경 쓸 게 없어서 봐두지 않았다. 그때 잘 봐둘걸. 나도 잘 모르겠다! 양가 부모님을 안내해 드리는 것과 메뉴 주문이나 잘하자 싶었다.
상견례 장소는 양가 중간 위치에 있는 식당으로 잡았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쪽에서 오기가 힘들 테니까.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다른 쪽이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양해를 구하고 한쪽과 가까운 장소로 잡을 걸 싶었다. 양가가 지척이 아닌 이상, 중간으로 잡으니 양쪽 다 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두 번 결혼할 것도 아닌데. 혹시 지인이 결혼하는데 상견례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하면 그때나 알려줘야지.
메뉴는 한식으로 택했다. 상견례 메뉴로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맛도 좋은 중식집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사람은 한식 아닌가! 상견례 메뉴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식이면 된다. 물론 한식집도 메뉴가 조금씩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지만 그건 열심히 검색해서 찾으면 되니 아무 문제없다. 상견례는 무조건 한식! 메뉴와 상견례 장소는 양가 부모님께 여쭙고 허락받았다. 준비 끝, 이제 실전이다!
상견례 장소에 도착했다. 예약한 홀로 들어가서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처가 식구들을 만났다. 내가 나서서 어른들께 양가 식구들을 소개해 드렸다. 그리고 모두 함께 착석. 이제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두 아버지께서 갑자기 말문을 트시더니 술술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라? 이게 아닌데…’가 아니라 ‘이거 좋은데!’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그 뒤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끼어들 틈이 없었다. 네 부모님께서 알아서 말씀을 나누셨으니까. 게다가 형수와 어린 조카도 함께했는데, 조카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쉴새 없이 말을 해서 분위기가… 부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좋았다! 경직된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지고, 조카에 관해 얘기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형 상견례 때는 내가 주인공도 아니었는데도 숨이 막혀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내 상견례 때는 정말 맛있게 식사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식사에만 열중하여 밥맛을 온전히 느꼈다! 정말 의외의 결과였다.
경쾌한 분위기로 상견례를 마쳤다. 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상견례는 잘 마쳤는데, 상견례가 끝나고 문제가 생길 줄이야. 그것도 전혀 예상도 못 한 문제가 말이다. 상견례 후에 아내와 데이트하고 싶었는데…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며 집에서 쉬어야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뭣이라고? 데이트하고 싶은데!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데…
부모님들이 눈치 없이 집에 가자고들 하셔서 울며 겨자 먹기로 아내와 헤어졌다. 이런 일이!!!! 아내와 데이트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생이별인가! 그날은 상견례 신경 쓰느라 아내를 낮에 못 봤고, 통화도 제대로 못 했는데 말이다. 상견례하는 동안 고작 한두 시간 얼굴만 보았다. 안아보지도 못하고, 손도 못 잡아보고, 얘기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정말 슬펐다. 너무너무 슬펐다!! 아니, 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 참, 상견례 잘 끝내고 이게 무슨 일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