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결혼 준비하는 법
남자에게 결혼 준비란? 그저 빨리, 최대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기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발언권과 선택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혀’라고 하면 너무 큰 과장일까?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의 커플이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야 이것저것 알아보고 마음에 드는 걸 마련하느라 신이 나겠지만, 남자들은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 들어도 “오, 좋은데! 예쁜데! 아주 좋아!” 신명 나게 맞장구 쳐줘야 한다. 괜히 “그거 별로야. 이거 어때?” 했다가는 큰일 난다. 이제 그런 통념이 점차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집안일은 아내가, 바깥일은 남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 결혼 준비, 특히 혼수는 아직 여자의 영역이다. 혼수만이 아니다. 결혼 준비 자체가 그렇다. 그러니 절대 선을 넘으면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눈치 없이 껴들면 안 된다. 평생 바가지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나는 결혼 준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고?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아무 생각 없었다. 애초에 결혼 준비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는, 무념무상이었다.
결혼 준비를 할 때 나는 일절 코멘트를 달지 않았다. 이불을 맞추러 갔을 때도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다. 화장대를 산다고 했을 때도 “오케이”만 외쳤고, 결혼반지를 맞출 때도, 아내가 어떤 게 괜찮냐고 물었을 때 난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얼 하든 무얼 사든 연신 “오케이”만 외쳤다.
자, 여기서 남자들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마냥 “오케이”만 외치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내 아내는 무던한 사람이어서 내가 “오케이, 오케이” 했을 때 아무 말 하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 남자의 그런 반응에 무관심하다거나 성의 없다며 핀잔을 주고, 급기야 다툴 수도 있다. 맞장구를 치더라도 상대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쳐주어야 한다. 시기적절하게, 그리고 상황에 맞는 리액션을 펼쳐주어야 한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좋다고만 하면 또 큰일 난다. 이건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결혼 후의 평안을 위해서.
결혼 준비 최대의 고비는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이다. 커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가 많은 커플에게 고비임이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의 리액션을 출산했을 때 그리고 아내가 밥상을 차려줬을 때와 함께 남자가 크게 반응해주어야 할 결혼 3대 리액션(이 말은 내가 만들었다)으로 꼽힐까? 예비 신부가 ‘짜잔’ 하며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을 때 적절한 리액션을 해주어야 한다. 아니, 최대한 과장되고 화려한 리액션을 해주어야 한다. 그냥 멍하니 있으면 큰일 난다. “예쁘다!”고 한마디만 해도 큰일 난다! 그건 큰 화를 부르는 반응이다. 무조건 “우~~~~~~~~~~~~~~~~~~~와!!! 우주 최고의, 하이, 슈퍼, 울트라, 초특급, 유니크, 레어 절세 미녀다!!!!!!!!!!!!!” 온갖 오두방정을 떨고, 수식어란 수식어는 다 붙여서 큰 목소리로 반응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뒷일을 각오하시라.
나는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왔을 때, 무사히 넘어갔다. 아니 아내가 넘어가 줬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정말 아무 말 하지 않았냐고? 그렇다. 정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 푹푹 삶고 우린 사골 국물처럼 지인~하고 깊은 반응을 해주었다. “예쁘다!”고 말이다. 그러고도 무사했냐고? 당연하지. 아내는 이해심이 깊은 여자여서 서운해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즉시 해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 주었다. “너무 예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 심경을 설명해 주었다. 솔직히 나도 “우~~~~와!!! 우주 최고~~~” 어쩌고 저쩌고라는 반응을 해주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다. 웨딩 드레스숍 직원들과 아내 지인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민망했다. 나는 숫기가 없어서 남들 앞에서는 점잖게 있는데, 아내 앞에서는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면서도 말이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한 대신 감탄사를 마음으로만 연신 내뱉었다. 아내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설명해 주니 쿨하게 넘어가 주었다. 아내가 이해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이해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사실 웨딩드레스를 입으러 가기 전에 많이 걱정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 모습을 보며 충분히 반응을 해주어야 하는데… 나는 숫기가 없어서 그렇게 못 해주는데 어쩌면 좋지, 많이 걱정했다. 다행히 아내가 넘어가 주었으니 일단 3대 고비 중 1단계 고비는 무사통과했다!~
리액션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예상 못한 고비가 앞을 가로막았다.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갈아입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었다. 원래 기본 비용으로 세 벌인가 두 벌 입어볼 수 있었다. 아내가 워낙 말을 잘하고 사근사근해서 추가 비용 없이 무려 열 벌인가, 열한 벌을 입게 해주었다!!! 한 벌 입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실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꽤 길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걸 열번이나 반복하고 기다려야 하니 곤욕스러웠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다. 아직 친하지 않은 아내 지인과 어색하게 서 있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힘들었는데, 열 벌을 연달아 입으니 어느 게 더 어울리고 예쁜지 헷갈렸다! 계속 보니 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마치 새로 살 향수를 고른답시고, 이 향 저 향 다 테스트하면 코가 무뎌져서 어느 향이 마음에 드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보고 또 보니 아내에게 어울리는 웨딩드레스를 고르기 힘들었다. 다행히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체형과 피부색 등을 고려해서 어느 게 더 어울리는지 가이드를 해주셔서 아내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고를 수 있었다. 이렇게 웨딩드레서 피팅을 무사히 마쳤다!
이제 다음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출산이다. 두 달 뒤면 2세가 태어난다. 그때는 어떻게 반응을 해주어야 할까? 아마 나도 눈물을 흘릴 것 같다. 태아가 심장 뛰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도 눈물이 나려고 했으니,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봤을 때는 오죽할까? 하지만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 앞에서 눈물 흘리려니 창피해서 말이다. 아마 출산 때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모르지, 그때는 너무 감동해서 참지 못할 수도. 얼마 있으면 알게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