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우리 신혼 방이야 - 신혼 방 꾸미기
신혼집은 신혼부부의 편안한 안식처이다. 둘만의 단란한 보금자리이자, 알콩달콩 사랑이 싹트는 대지이다. 말이 조금 거창했다. 신혼부부에게 신혼집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 부담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미혼 남녀가 결혼을 미루는 이유로 ‘경제적 상황’을 가장 많이 꼽을까? ‘경제적 상황’이라는 말 이면에는 ‘집 대출’이 있다. 집만 해결되면 웬만큼 못 벌지 안고서야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다. 집 대출금으로 월급의 상당량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결혼 후 겪게 되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금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결혼 전에 돈을 더 모아야 하고, 돈을 모으려고 결혼을 미루게 된다. 이처럼 신혼부부에게 신혼집은 애증의 대상이다.
우리도 결혼해서 살려면 신혼집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신혼집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됐다(지난 글 - 돈을 얼마나 모아야 결혼할 수 있을까?). 모아놓은 돈도 적었고, 양가에서 도와줄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결혼을 미룰 수도 없었다. 결혼은 미루는 게 아니다. 한 번 미루면 계속 밀리니까. 아무튼 결혼은 해야 했고, 집도 마련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방법이 보이지 않아 고민이 컸다. 없는 돈을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전세든 월세든 집을 마련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한다. 전세 대출은 대출금 이자를 갚으면 갚은 만큼 우리 돈이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월 상환 금액 크기만큼 부담이 커진다. 월세를 얻으면 월세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나는 내심 부모님 집에 들어가서 얼마 동안 살았으면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아니면 처가에 들어가든지. 하지만 시댁에 들어가자는 말은 절대 내가 먼저 할 수가 없었다. ‘시월드’라는 말이 있듯이 시집살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여서 체감은 못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얼마나 힘든 줄은 안다. 우리 부모님이 아무리 좋으시고, 형수도 5년이나 살다가 분가했지만, 그래도 자식이 아니고서야 며느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차마 불구덩이에 뛰어들자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살짝 떠보기는 했다. 들어가자고 한 건 아니다.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이러저러한 게 있는데 어떤 게 좋겠냐고 물어보며 시집살이를 살짝 끼워 넣었다. 선택은 아내에게 맡기고. 아내의 첫 반응은, 일단 시댁살이는 싫다고 정색을 했다. ‘그래 그 마음 이해한다.’ 그럼 전세나 월세로 가야지…
얼마 후,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던 아내가 불현듯 시댁에 들어가 살자고 말했다. ‘뭐라고? 시댁? 정말?’ 의외의 결정이었다! 분명히 싫다고 말했는데, 그 어려운 시집살이를 선택하다니…! 고마운 마음이 컸다. ‘휴우’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담스러운 대출은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대신 아내가 부담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집살이를 시작하게 됐고, 부모님 집에 남는 방에 신혼 방을 마련하게 됐다.
신혼집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신혼 방이 마련됐으니 이제 꾸며야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주도권이 없다. 아내가 알아서 잘 꾸미겠지. 미적 감각이 없어서 방을 예쁘게 꾸밀 자신도 없고, 자신이 있어도 어찌 내가 주도권을 갖겠는가! 시집살이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말이다. 이제부터 생활하는데 여러 제약과 큰 불편이 따를 텐데 방이라도 마음대로 꾸미게 해주어야지.
우리가 쓸 방은 형과 형수가 신혼 방으로 썼던 공간이다. 다행히 형수가 방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아서 제거해야 할 게 전혀 없었다. 아내 취향대로 꾸미기 쉬웠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우리 집이 아니라 부모님 눈치가 살짝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우리 마음대로 꾸밀 수 없었다. “이렇게 꾸밀게요”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꾸며도 되냐고 여쭤봐야지. 반대하실 부모님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꾸미라고 허락하셨고, 우리, 아니 아내 취향대로 꾸밀 수 있었다.
과연, 어떻게 꾸밀지 기대됐다. 비록 좁은 방이지만 벽을 알록달록, 형형색색, 러블리하게 꾸밀까? 남자 혼자 사는 방은 여자들이 정말 싫어하는 홀아비 냄새가 나는데… 이제부터 우리가 사는 방에는 상큼하고 싱그러운 꽃향기가 가득할까? 어떤 향기가 날까? 형광등 전등갓은 뭐로 바꿀까? 간접 조명도 달까? 무드 등도 설치하고, 화장대도 예쁜 거로 놓고? 하얗고 푹신한 침대가 놓이겠지? 온갖 상상을 하며 소박한 리모델링을 기다렸다. 그 결과는?
엄청나게 기대하고 기대했는데… 너무 큰 기대를 했나 보다. ‘이게 뭐지?’ 싶을 만큼 아내는 소박하게 방을 꾸몄다. 소박해도 너무 소박했다. 한쪽 벽면만 단색 페인트로 칠했다. 화장대는? 내가 쓰던 좌식 책상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서 쓰기로 했다. 침대는 애석하게도 부모님의 큰 사랑의 결과, 칙칙한 흙 침대를 들여놓게 됐다(디자인은 별로였지만, 단독 주택 특성상 외풍이 심한 그 방에서 잘 썼고, 분가한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전등갓, 간접 조명? 그런 건 없다. 너무 살짝 꾸며서 형네가 썼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럴 줄이야… 아내는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해서 최소한으로만 손을 댔다. 미니멀라이프가 그런 게 맞아???
부모님 집에서 우리 공간이라고는 몇 평 안 되는 단칸방이 전부였다. 그때에 비하면 궁전처럼 넓은 집으로 이사한 지금은, 집 전체가 우리 공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집을 예쁘게 꾸밀 줄 알았다. 그런데…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아내는 그 정신을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 새집 그대로, 별로 꾸미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 같으면 이렇게 저렇게 온통 치장해놓을 텐데, 아내도 분명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도통 꾸미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그게 싫은 건 아니다.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집을 손을 거의 안 대서 깔끔하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