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일하면 소가 된다,
회사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직원이 있다. 소 같은 직원과 여우 같은 직원이다. 소 같은 직원은 소처럼 일한다. 상사가 무슨 일을 시키든 조용하고 성실하게 한다. 반면 여우 같은 직원은 업무를 할당받으면 조용히 일하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주변 사람들과 상사에게 계속 어필한다. 그리고 자기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은근슬쩍 떠벌려서 자신은 유능한 직원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여우 같은 직원은 일을 잘하든 못하든 정말 유능한 직원으로 인식된다.
나는 소 같은 직원이다. 업무를 전달받으면 성실히 처리한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맡은 일로 인해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처리할 뿐이다. 끝날 때까지 상사에게 한 번 가지 않고 조용하고 우직하게 일을 한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저 그런 직원이 되었다.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닌 평범한 직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진급은커녕 연봉 협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내 성과를 입증할 만한 뚜렷한 지표가 없었으니까. 그저 맡은 일만 소처럼 하다 보니 내가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한 게 되어버렸다.
입사 동기 중에 여우 같은 직원이 있다. 그 사람은 정말 여우 같다. 일하며 엄청나게 투덜댄다. 굉장히 고난도의 일을 처리하는 듯 업무 내용이 까다롭다고 구구절절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끊임없이 주변 동료들에게 알린다. 한숨은 기본이요, 업무와 관련해서 이게 이상하고 저게 이상하다고 동료들에게 계속 전한다. 상사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자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을 맡았고, 이러저러한 점 때문에 자기 일이 어렵다고 계속 어필하고 설명한다. 그 직원은 어떻게 평가받을까? 투덜이가 되지 않았냐고? 아니, 유능한 직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늘 어려운 일을 맡는 직원이고, 어떤 어려운 일이든 능히 처리하는 직원이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진급했다.
소처럼 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소처럼 일하면 정말 소가 된다. 그저 일만 하게 된다. 마냥 일해야 한다. 어떤 업무가 주어지든 “악” 소리 한 번 못하고 떠맡아야 한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일이 너무 힘들다고 어필할라치면 “그게 뭐가 힘드냐!”고 핀잔을 듣는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 쉬운 일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무능한 직원이 된다. 정말 힘든 일이어도 말이다. 그리고 업무상 작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날벼락 맞는다. 작은 실수를 해도 큰 실수를 한 것처럼 혼이 난다. 억울한 일이다.
여우 같은 직원은 모두가 알아준다. 이제, 굳이 어필하지 않아도 그는 유능한 직원이다.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직원이다. 일이 힘들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어려운 일을 맡은 줄 안다. 역시 그는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그를 우러러본다. 그가 업무상 실수를 해도 상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실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 준다. 큰 실수를 하면? 정말 중대한 실수가 아니고서야,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하기 마련이라고 눈감아 준다. 오히려 위로까지 해준다.
물론 소도 소 나름이고, 여우도 여우 나름이다. 둘의 업무 능력이 비슷하다고 할 때 서로 완전히 대비된다. 소 같은 직원은 평범하거나 일을 못 하는 직원으로 평가받고, 여우 같은 직원은 일을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받는다. 서로 대비 효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소 같은 직원으로 인해 여우 같은 직원이 두드러지게 된다.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아무도 내 밥그릇을 챙겨주지 않는다. 회사는 전쟁터이기에 내 살길 찾기도 바쁘다. 남 챙겨 줄 시간이 없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내 밥그릇을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한다. 괜히 남을 챙겨줬다가는 내 밥그릇도 뺏긴다. 물론 회사마다 상황은 다르다. 분위기가 좋고, 직원 간에 손발이 맞는 회사나 부서라면 서로 챙겨 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스스로 밥그릇을 챙겨야 하고, 나서서 상사에게 내 능력을 어필하고 입증해야 한다. 남은 절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소같이 일했더니 정말 소가 되어버렸다. 온갖 잡무가 내게 쏟아졌다. 이 일 저 일 안 하는 일이 없다. 다른 사람 일까지 떠맡게 되었다. 나야말로 일이 많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주어진 모든 일이 마감 기한이 정해져 있고, 그 기한이 매우 짧다. 오늘 당장 끝내야 하는 일도 있고, 내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다. 세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처리할 때도 있다. 내게 자비란 없다. 기한을 넘기는 날에는 큰일 난다. 마감 기한 내에 일을 끝마치려고 초집중을 한다. 한숨 쉴 틈도 없다.
하지만, 여우 같은 직원이 또 방해한다. 옆에서 또 한숨 쉬고, 온갖 불평을 한다. 내 집중력을 자꾸만 깨뜨린다. 그는 매일, 퇴근할 때까지 매시간 이런다. “좀 조용히 해! 그렇게 일이 힘들면 옥상에 올라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오든가!” 꽥, 한 마디 내지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는 진즉 진급해서 상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고생이 많으시네요”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해 줄 뿐이다.
나는 짧은 위로만 건넸을 뿐인데, “월척이다!” 내가 미끼를 물었다는 듯이 이리 와서 자기 일 좀 보라고 한다.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러이러해서 일이 힘들다고, 일이 뭐 이러냐며 요구하지도 않은 브리핑을 한다. ‘굳이 왜 나한테 설명을 해?’ 이렇게 매일 시간 단위로 소중한 내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는 마감 기한이 긴 업무만 맡으니 가능한 일이다. 이 사람이 그런 일만 독차지 해서 마감 기한이 짧은 온갖 잡다한 일을 내가 다 맡게 되었다.
이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우 같은 이 사람 때문에 결국 마감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하는 직원이 되고 만다. 더 위에 있는 상사에게 “이 사람 때문에 일을 못 했어요”라고 말할라치면 “그건 핑계야. 일은 알아서 끝내야지!” 이런 말을 들을 게 뻔하기 때문에 그저 죄송하다고, 내일까지 꼭 마무리하겠다고만 말한다. 소가 되어버린 나, 나는 이렇게 소처럼 일만 하다가 소처럼 내 모든 걸 내어준 채 분해되고 전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