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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Apr 25. 2019

월급은 노동의 대가일까? 기회비용일까?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회사에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번다. 돈을 버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쓰기 위해 번다는 점은 같다. 물려받은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지 않은 한 돈을 벌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월급을 받는다. 시간으로 가치로 환산해서 돈으로 돌려받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가 받는 월급은 노동의 대가일까? 아니면 기회비용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월급을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앞서 썼듯이 우리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력을 제공한 만큼 돈으로 환산해서 받기 때문이다. 이때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하는 기준은 시간이다. 시간당 적정 금액을 책정하고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다. 월급은 ‘한 달 동안’ 일을 한 대가로 받는 것이니, 노동에 대한 대가가 맞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생각의 변화가 일고 있는 듯하다. 지인들과 이러저러한 대화를 하던 중 요즘 20대 중 일부는 전통적인 관점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인이 다니는 회사 직원 중에 자신이 일해주러 회사에 출근해주니, 회사는 내가 일해주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몇 명 있다고 한다. 그들은 회사에서 나를 고용해줘서 내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회사에 나가 일을 해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니 회사는 자신에게 뭐라 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기 싫으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마음대로 한두 시간씩 휴게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다. 팀장이 팀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서, 지인이 속한 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롭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다른 지인도 자신의 부하 직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소규모 회사라 사무실 청소를 직원들이 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는데 20대 막내 직원은 청소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인이 혼자 그 직원에게 왜 청소를 하지 않냐고, 함께 청소하자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고 한다. 자신은 일하러 왔지 청소하러 온 게 아니라며 청소를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지인 혼자 청소를 한다고 한다.

두 사례 중 두 번째 사례는 이 글의 주제와 살짝 비켜나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중요한 건 두 사례를 통해 일에 대한 일부 20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둘 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두 지인의 부하 직원들만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이 좀 더 많을 수도 있다. 모든 20대 회사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20대 때에는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때도 그런 사람이 있었지만, 내 인맥이 좁아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때는 능력이 있어서 회사를 골라 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회사가 나를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인식이 깨지고 다른 인식이 점차 퍼지고 있는 듯하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월급 혹은 회사생활을 기회비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네이트판 회사생활 카테고리에 한 직장인이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을 남겼다. 급여는 적당히 받고 있는데 관계  문제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어찌하면 좋겠냐고 묻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미처 글의 출처를 적어두지 못했다.)

“(상략)
다들 월급 받는거 노동의 댓가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니요. 그거 기회비용이예요. 님이 지금같은 대우를 받지 않고 그저 사람대우받으며 일할수 있는 기회에 대한 비용이라구요. (중략) 허나 그 노동력을 어디에 활용하나는 우리의 선택이예요. (하략)”

동의 여부를 떠나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무튼 생략된 부분으로 추측하건대 댓글을 단 사람도 20대인 듯했다.

이상의 세 가지 사례로 전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위에서 든 사례는 극히 일부이기에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일부로 전체를 추측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조심스레 추측하면 월급이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늘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 20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월급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기회비용일까? ‘기회비용’은 경제학 용어로 ‘어떤 재화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한 재화의 가치’를 말한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어떤 것을 선택할 때 실제로 지출하는 ‘명시적 비용’과 그것을 선택함으로 포기하게 된 것 중 가치가 가장 큰 ‘암묵적 비용’의 합이 기회비용이다. 그럼 이것을 월급에 대입해보자.

우리는 한정된 노동력과 시간을 회사라는 곳에 사용함으로 월급을 받는다. 우리의 노동력과 시간을 회사에 사용함으로 그만큼 취미생활에 쓸 시간이나 쉴 시간을 포기한 셈이다. 바꿔 말해서 우리는 월급을 얻기 위해 우리의 한정된 노동력과 시간을 회사에 사용한다. 여기서 기회비용은 월급을 얻기 위해 회사에서 제공한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그 노동력과 시간을 이용해서 즐길 수 있었던 취미나 쉼의 총합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월급은 기회비용이 맞다.




월급이 노동의 대가인지, 기회비용인지 여부가 뭐 중요하랴. 이렇게 보면 노동의 대가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면 기회비용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월급이 노동의 대가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제공한 노동력만큼, 그 대가를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회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게 손해 보려고 노동력과 시간을 제공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런 취급을 당하려고 취미생활과 쉼을 포기하고 월급, 일을 선택한 게 아닌데 말이다.

왜 우리는 노동력을 다 제공한 시점에서 마음대로 퇴근을 못 하고, 눈치를 봐야 할까? 왜 업무 시간에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맡아서 해야 할까? 그러려고 우리의 노동력과 귀한 시간을 제공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노동력을 제공했음에도 왜 그 대가를 받지 못해야 하는가? 야근을 ‘시켰으면’ 당연히 수당을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왜 우리는 상사와 동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그런 대우를 받으려고 일을 택한 게 아닌데 말이다.

월급이  노동의 대가든, 기회비용이든 우리는 착취당하고 차별받으며 억압당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제공한 노동력만큼 월급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력 제공을 선택했으니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일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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