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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May 03. 2019

직원은 회사의 부품일 뿐이다.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착각해요. 스타병에 걸리죠. 내가 어떤 일을 좀 해냈을 때 “역시, 이 나의 훌륭함” 하면서 이건 내가 꽉 잡고 있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거나 혹은 약간 튕겨도 내가 좀 몸값을 올릴 수 있을 거야, 조직 내에서 내 위상을 올릴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대체가 불가능한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지향하는 것은, 대체하기 최대한 골치 아픈 사람이 되자입니다.

- 책읽아웃 80-1, 오은의 옹기종기, 신예희 작가의 말



직원을 기계 부품으로 생각하는 고용주가 있다. (모든 고용주가 그렇다는 게 아니니 오해 말기를) 그런 고용주는 직원이 일을 잘해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른다. 사람은 괜찮은데 일을 못 하면 가차 없이 자른다. 일 잘하는 직원을 자르면 손해일 것 같지만,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경력자로 새로 뽑으면 그만이니까. 일 못 하는 직원이야 하루라도 빨리 자르는 게 좋다. 돈 주기 아까우니까.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고 일 못 하는 직원과 함께 일하는 게 손해다. 얼마나 보기 껄끄럽고 돈 아깝겠는가. 전 직장 상사가 딱 그랬다.

전 직장은 원래 가족 회사였다. 직원이 없었다. 회사 매출을 전략적으로 늘리기 위해 직원을 고용했다. 그런데 사장 아들인 본부장은 직원을 처음 고용해 봤다.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뽑아야 하는지 몰라서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 직원을 뽑았다. 그 기준은 실력이 부족해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인격이 괜찮은지였다.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신입으로 자신의 팀을 구성해서 회사와 직원의 동반 성장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는 리더를 처음 해봤기에 직원을 다룰 줄 몰랐고, 업무 지시가 미숙했다. 그 결과 불균형 성장이 이루어졌다.

직원 중에는 성장이 빠른 직원도 있었지만, 느린 직원도 있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본부장의 이상은 너무 높았고, 그 이상을 향해 전진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나와 다른 동료는 그의 속도에 맞추지 못했다. 나는 그 회사 업무와 관련하여 신입인 데다 업무 지시를 우왕좌왕한 탓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내일부터 나오지 마.” 예고 해고도 없이 동료 직원이 잘렸다. 그 직원이 잘린 지 반년 후 나도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느닷없는 통보와 함께 해고당했다. 나와 다른 직원이 잘리는 과정에서 한 직원이 본부장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잘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본부장은 다른 직원을 자르기 전에 이미 몰래 새 직원을 뽑았다. 전 직원이 나가자마자 곧장 새 직원을 출근시켰다. 그리고 나도 자르자마자 새로운 직원을 뽑았다. 직원을 고용한 지 1년 만에 그가 직원을 뽑는 기준이 변했다. 인격이 개차반이어도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나에게 직접 말했다. 인격이 개차반이어도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건 없으니까. 인격이 어쨌건 실력만 있으면, 그 직원을 통해 그가 원하는 대로 회사는 성장할 테니까. 대신 그 직원으로 인해 직원들만 힘들어지겠지. 정 직원이 마음에 안 들면 또 자르고 새로 뽑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본부장은 인정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는 참으로 냉정했다. 직원을 회사의 부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그의 말속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고용주가 직원을 회사 부품으로 생각하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만에 하나 내가 고용주가 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장담하지 못한다. 부품이라고 (비인격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맞지 않는 직원이나 일 못 하는 직원이 있다면 곤란함을 느낄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 그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그런 취급당하는 게 기분 좋지는 않다. 내가 어찌했든 필요할 때는 써먹고, 필요 없을 때는 잘라 버리면 정말 기분 나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직원은 힘없는 을이니 말이다.

신예희 작가의 말대로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얼마든지 잘릴 수 있다. 일을 잘하는 직원을 잘라도 다른 직원을 통해 회사는 잘 굴러간다. 회사는 직원을 부품으로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최대한 대체하기 골치 아픈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계속 쓰자니 껄끄럽고, 그렇다고 자르자니 당장 이만한 실력을 갖춘 직원을 구하기 어려운 직원이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계륵 같은 직원이 되어야 한다. 각자 자신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마다 목적이 다르지만, 여기서는 실력을 쌓아서 연봉을 더 많이 주는 회사로 이직하는 거로 한정한다.




IMF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 직업 개념이 생겨났다. 정년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다.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게 직장 생활이다. 직원은 부품에 불과하니까. 따라서 우리는 한 직장에 오래 있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 그러니 실력과 경력을 쌓아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여 연봉을 높일 생각을 해야 한다. 실력을 쌓기 전까지는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잠시 붙어 있다가 이직할 회사가 생기면 당장 옮기자. 필요 없는 부품이 되어 잘리기 전에 먼저 사표를 던지자. 복수하려는 게 목적은 아니지만, 직원을 부품으로 생각하는 고용주에게 이보다 통쾌한 복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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