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브샤브 국물에 내가 소유하고 싶은 것을 담그며

삶을 인간만한 크기로 혼성하다

by 불비

샤브샤브 국물에 내가 소유하고 싶은 것을 담그며


팔팔 끓는 샤브샤브를 들여다보면

내가 가져야 할 세상의 것들이 보인다


국물은 사랑 같다

맑고 담백해야 지루하지 않고

몸뼈가 우러나와야

오랜 인연이 베이고

누군가의 무늬가 되어야 마음이 깊다


고기는 돈 같다

먹을수록 삶에 질감이 높고

푹 빠질수록 국물이 넓게 다가오고

가질수록 더 잘게 씹어야 체하지 않는다


야채는 여행 같다

낯선 것을 겹겹이 싸면

낯익은 것들이 부들부들 해지고

일상에 살짝 빠뜨려 건져 내면 생기가 살살 돋는다


버섯은 시 같다

산솔가지 아래 외따롭게 홀로 앉은

폼새가 시를 쓰는 폼새고

다른 재료의 몸을 말갛게 데운다




삶을 인간만한 크기로 혼성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냥 살아가지만, 또 어떤 이는 그 세상의 기호를 읽어서 나름의 의미를 창조한다. 시인은 샤브샤브라는 평범한 음식을 마주한다. 음식이 나왔으니 우리 시인은 식사를 하면 된다. 그는 식사 전에 이 음식의 세상을 비유적으로 읽는다. 그 비유는 ‘A는 B이다’라는 은유가 아닌, ‘A는 B 같다’라는 직유이다. 은유는 전혀 다른 두 사물을 ‘이다’라는 술어를 사용해 과감하게 동일시한다. 은유의 특징은 한 개념 A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개념 B의 특징을 빌려오는 것이다. 직유는 과감성이 좀 떨어지지만, 은유와 마찬가지로 개념 B를 활용해 개념 A를 이해한다.


샤브샤브를 들여다보면서 시인이 본 첫 번째 세상은 국물이다. 시인에게 ‘국물은 사랑 같다’. 샤브샤브의 국물을 보면서 사랑을 읽어낸다. 국물의 담백함을 보고서 사랑도 지루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샤브샤브에 들어간 고기와 갖은 채소를 오래 끓여 육수가 우러나오듯, 사랑하는 남녀의 인연도 오래되어 서로에게 베여서 무늬가 되어 사랑하는 마음이 깊기를 바란다. 시인은 지루하지 않고, 서로를 마음속 깊이 담아두는 사랑을 원한다.


샤브샤브의 두 번째 세상은 고기이다. 시인에게 ‘이 고기는 돈 같다’. 샤브샤브 속의 고기는 먹을수록 질감을 더 많이 느끼고, 국물에 푹 담길수록 국물의 깊이는 더 깊다고 느껴지며, 고기를 여러 점 입에 넣을수록 잘게 꼭꼭 씹어야 체하지 않는다. 이런 고기의 특징이 돈으로 그대로 투사된다. 돈을 아껴서 저축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사용하면 할수록 그 돈으로 인한 내 삶의 질이 풍부해진다. 내가 가진 돈을 자선의 형태로 세상 속에 더 많이 투자할수록 그 세상도 나의 것이 되도록 넓어진다. 돈이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은 성질이다. 돈을 더 많이 가지려다 무리한 일까지 하게 되어 나의 정서는 다치게 될 수 있다.


샤브샤브의 세 번째 세상은 야채이다. 시인에게 ‘야채는 여행 같다’. 낯익은 야채에 낯선 야채를 겹겹이 싸서 먹으면 익숙한 야채에 색다른 맛이 추가된다. 야채를 끓는 샤브샤브 국물에 살짝 빠뜨려 건져 내면 야채에 생기가 돋는다. 이런 야채의 속성은 여행으로 투사되어 야채와 여행 간에 유사성이 창조된다. 우리의 삶은 우리 것이다. 너무나 낯익은 삶이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익숙한 현재의 삶에 색다름이 추가되어 내 삶은 다시 유연해지고 생기가 조금씩 돋게 된다.


샤브샤브의 네 번째 세상은 버섯이다. 시인에게 ‘버섯은 시 같다’. 산솔가지 아래 외롭게 홀로 피는 속성을 가진 흰 버섯은 푸른 야채에 말갛게 해 준다. 이런 버섯의 특징은 시인에게 투사된다. 시인은 홀로 외롭게 시를 쓴다. 시인의 시는 다른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는 범주화(categorization)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범주화한다. 주위 환경을 해로운 것과 해롭지 않은 것으로 범주화해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 범주화는 유기체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문제는 무엇에 근거해서 범주화를 하느냐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 속의 대상을 본질적 자질로 정의하고 범주화한다. 하나의 사물은 범주 구성원 요건을 위해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노총각’ 범주에 속하기 위해서는 ‘결혼하지 않았다’, ‘남성이다’, ‘성인이다’라는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이런 범주화 방식은 범주의 경계가 엄격하고 이분법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다. 원형(prototype) 개념을 활용하는 범주화 방법도 있다. 원형은 어떤 범주를 대표할 만한 가장 전형적이고 중심적이며 이상적인 좋은 보기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가구’라는 범주에 대한 원형은 ‘침대’와 ‘소파’이고, ‘의자’와 ‘커피용 탁자’는 덜 원형적이다. 한 범주의 구성원 요건은 이분법적이지 않고 그 경계가 엄격하지도 않다. 어떤 개는 다리를 다쳐 다리가 넷이 아니라 셋이다. 본질적 자질에 근거한 범주화 방식에서는 개는 다리가 넷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므로 그런 개는 개의 범주에 할당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리가 셋인 개도 원형적 개는 아니지만 비원형적 개로 범주화하면서 그 개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시인은 참으로 욕심이 많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도 갖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그 바쁜 와중에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고, 그러면서도 시는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삶은 이상적 삶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이상적 삶에서는 사랑과 돈, 여행, 시가 본질적 자질이고 필요충분조건이다. 논리적 삶이라면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없다면 시인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 거짓이다. 논리적 삶은 그 경계가 엄격하다. 이 네 가지 자질을 다 갖춘 삶은 가장 원형적인 삶이다. 이 중에서 한두 가지가 빠진 삶도 비원형적이긴 하지만 삶이다. 한두 가지 속성이 빠진 시인의 삶에서도 그는 나머지 속성을 추구하는 삶을 유지할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그의 삶이 된다.


시인은 샤브샤브의 네 가지 재료가 사랑과 돈, 여행, 시 같다고 했다. 나는 샤브샤브가 혼성(blending) 같다. 혼성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요소들이 서로 섞여서 각 요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닌 전혀 새로운 요소를 창조하는 인간의 상상적 과정이다. 이러한 혼성의 결과물에 대한 가장 쉬운 예는 ‘사자인간’이다. 사자인간은 1939년에 발견된 3만 2천 년 전의 상아로 만든 작은 조각상이다.

사자인간의 조각상

이 사자인간은 정확히는 사자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전혀 새로운 개념이다. 네 가지 재료인 국물과 고기, 야채, 버섯은 원래 그 자체의 고유한 속성이 있다. 각자의 독자성을 가진 이 네 가지가 한데 혼성되고 섞이면서 샤브샤브라는 음식이 창조된 것이다. 이 혼성물에서 각 재료는 그 자체의 고유한 속성을 일부 유지하면서도 다른 요소들과 인간 크기로 섞인다. 너무 터무니없는 혼성이 아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섞어지면서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탄생한다.


시인이 말하는 삶 또한 사랑과 돈, 여행, 시가 혼성되어 창조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혼성물에서는 이 네 가지의 고유한 독자성이 어느 정도 희석되어 다른 요소들과 인간 크기로 섞이고 혼성된다. 어느 한 가지가 두드러지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어느 한 가지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을 추구하는 삶인지, 돈을 추구하는 삶인지, 여행을 추구하는 삶인지, 시를 추구하는 삶인지 정확히 판단되지 않는 삶의 추구 방식이다. 이 네 가지가 우리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혼성되므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는 삶의 추구 방식이 된다. 얼마나 겸손한 삶의 추구 방식이고, 얼마나 큰 삶의 추구 방식인가! 사람들마다 혼성된 삶은 모두 그 재료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저마다 다른 삶의 요소를 저마다 다르게 혼성하여 각자의 삶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여러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 또한 나의 삶의 부담스럽지 않게 주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인간 크기로 혼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