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화된 마음을 통한 창의성 향상법
오규원 현대 시작법을 읽으면서 시를 배웠고
원고지에 얼굴을 파묻고 신춘문예로 밤을 지새웠고
이시영 시인에게 시를 배우려 서울로 상경했었다
지금은 마음 가는 곳에서 시를 배우고 싶다
강원도 키 큰 나무가 아주 높은 곳에서
젖살 같은 햇살을 토실토실 토하고
가지 끝에는 멀건 바람이 바작바작 댄다
그 밑에서 아주 깊은 더덕을 캤다
그 향내를 닮은 시를 쓰고 싶다
창비는 붉은 해와 반죽된 미나리밭이다
진흙 속에서 세상의 푸른 것을 건져 올린다
문지는 맑은 하늘과 반죽된 개울가의 물빛이다
그 물 밑에서 흰빛을 밀어 올린다
그 두색 사이로 스며드는 시가 내 시였으면 좋겠다
이스라엘 지크론 하늘은 너무 푸르르고 눈부셨다
올리브나무는 마음이 잘 익어 굵은 몸을 가졌다
해변가에는 맥주 한 캔에
수평선 노을을 깊게 들이마신 하이퍼 바다가 있었다
그 여행으로 내 시가 떠났으면 좋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혼자일 수 없다. 혼자가 아니므로 문화에 동화되기 위해 학습이 필요하다. 학습의 방법은 한 문화권에 소속된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만의 학습 방법이 있다. 학습 방법은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 시인은 시의 문화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시 쓰기를 학습해야 한다. 시인이 선택한 학습법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문학과지성사에서 1990년에 출간된 오규원의 《현대시작법》이라는 책을 통한 학습이다. 두 번째는 신춘문예 공모에 응시하기 위해 밤을 지새워 시를 쓰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시영 시인이라는 실재하는 사람에게 시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은 신인 작가가 되기 위한 일반적인 학습 방법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방법은 참으로 힘들어 보인다. 딱딱한 책을 읽어야 하고, 신춘문예라는 제도권에 맞추어 습작하면서 밤을 지새워야 하고, 시골에서 서울까지 올라가기 위해 시간과 돈을 희생해야 한다.
시는 창의성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장르이다. ‘창의적으로 사고하기’를 뜻하는 “Think out of the box”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박스 안이 아니라 박스 밖에서 사고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박스란 무엇일까? 제도권이다. 제도권 내에 갇히지 않고, 제도권을 벗어나 사고하는 것이 창의적 사고의 방법임을 이 영어 표현은 암시하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한 일화가 생각난다. 진중권 교수가 한 대학에 임용되어 그 대학 총장을 접견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총장은 진중권 교수에게 학생들이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 총장의 말을 듣고 진중권 교수는 차마 입 밖으로 표현은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총장님, 학생들의 창의성을 향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을 없애는 것입니다.” 진중권 교수는 이번에 임용되는 이 대학의 총장에게 차마 이 말을 실제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도 먹고살아야 하니까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대학은 가장 전형적인 학습의 제도권이다. 이 제도권 속에서는 진정한 창의성을 꽃피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여하튼 학교와 교육, 창의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는 참 어려운 과제이다.
시인이 시를 배우기 위해 선택한 시작법 읽기, 신춘문예, 시인 이시영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제도권이다. 이 제도권 내에서 시인은 시를 배웠다. 밤을 지새워 시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다. 짧은 운문을 통해 거대 사고를 표현해야 하는 시는 애씀의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구성되어야 한다. 시를 읽는 평범한 독자는 말 그대로 비범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함은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에 익숙한 존재들이다. 밤을 지새워 쓴 시는 인간 크기의 상식을 가진 독자에게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인은 이제 “마음 가는 곳에서 시를 배우고 싶다”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서양철학의 ‘몸과 마음 이분법’에서 말하는 마음은 아니다. 이분법에서 말하는 마음은 합리성과 논리, 이성의 영역을 말한다. 시인이 말하는 마음은 뭘까? 이분법의 논리에서 ‘마음’이 아니라면 ‘몸’이다. 몸이 말해주는 방식으로 시를 배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몸은 ‘행동’의 영역이다. 문제는 행동만으로 시를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시인이 말하는 마음이란 ‘신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이다. 이성과 사고가 몸과 분리된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몸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신체화된 마음이다. 이는 ‘마음속의 몸’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마음이라는 것에는 몸이 그 속에 있으면서 마음의 기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고도 수반되어야 하지만, 그 사고는 몸에 기초한 사고여야 한다. 시인은 신체화된 마음을 통해 시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신체화된 마음을 통한 시 학습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간 곳은 강원도 키 큰 나무가 있는 곳이다. 젖살 같은 부드럽고 토실토실한 햇살을 받는다. 나뭇가지 끝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모습이 보인다. 나무 밑 깊은 곳에서 더덕을 캐고 그 향내를 맡는다. 햇살은 촉각이고, 바람이 불어 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시각이고, 더덕의 향기는 후각이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이 세 가지 몸의 모습을 품고 시를 쓰고 싶은 것이 시인의 바람이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미나리밭과 개울가이다. 붉은 해가 진흙에 내려앉아 서로 반죽이 되어 한 몸이 된 미나리밭에서 푸른 미나리를 건져 올린다. 시인은 미나리밭을 창비(창작과비평)에 견준다. 맑은 하늘이 개울가에 비추어 물에서 빛이 발한다. 그 물 밑에서 흰빛이 밀어 올라온다. 시인은 이러한 개울가를 문지(문학과지성)에 견준다. 창비의 틀도 아니고 문지의 틀도 아닌, 두 제도권을 넘나들고 초월하여 푸른색과 흰색 사이로 창의적으로 스며드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세 번째로 간 곳은 이스라엘 지크론이다. 지크론 하늘은 너무 푸르고 눈부시다. 올리브 나무는 마음이 잘 익어 굵은 몸을 가졌다. 굵은 나무에 과실이 잘 익었다. 나무 자체는 몸이고 과실은 마음이다. 그 마음은 몸에 기초해 열리는 신체화된 마음이다. 해변에서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수평선 노을을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본 바다는 내 현실을 초월한 하이퍼(hyper) 바다이다. 시인은 자기 시가 현실을 초월하는 여행을 떠나듯 이국적 맛이 묻어 있길 바란다.
시인의 새로운 시 학습은 신체화된 마음을 통한 학습이다. 시인이라면 모두 이 학습법을 활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시인은 위대하다. 짧은 글에 거대 담론을 담아내는 시인은 예사로운 존재가 아니다. 이런 존재는 몸만으로도 아닌, 마음만으로도 아닌, 철저하게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활용하여 시를 쓴다. 몸을 동원하여 마음을 활성화하는 시작법처럼, 학교라는 제도권에서도 우리 학생들에게 몸을 참여시켜 마음이 작동하게 하여 창의성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학습법을 시도해 보길 강력하게 권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