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생각하는 영원한 내 편
내가 즐기며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을 남겨야 하나
내 침대 옆에는 두 남녀가 유채길 여행을 떠나는
최작가의 그림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어떤 사람을 남겨야 하나
여행을 하면서
함께하면 마음이 탁 틔이고
돌아보면 마음이 먹먹히 젖어드는
그런 사람이면 어떨까
골프를 치면서
공이 똑바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 등을 두드려 주는
그런 사람이면 좋지 않을까
시를 카톡으로 보내면
햇살 몇 토막 같은 답장을 보내주고
내가 읽어주는 시를
그냥 들어주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최근에 내가 관심을 두는 용어가 하나 있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인간성’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인간의 지능과 생리를 크게 향상하기 위해 널리 이용할 수 있고 정교한 기술을 개발하고 만들어서 인간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적인 지적 운동”으로 정의한다. 즉,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정신적ㆍ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운동이다. 트랜스휴머니즘에서는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 난 트랜스휴머니즘의 궁극적인 목적인 불멸 추구에는 크게 감동하지 않는다.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의 ‘고통’은 정말 싫다. 최근에 건강하시던 부친께서 두통을 호소하셨다. 두통이 너무 심해 잠도 주무시지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 모든 통증이 다 참기가 힘들지만, 난 두통만큼 참기 힘든 통증은 없다고 생각한다. 형님이 부친을 모시고 신경과를 다녀와 여러 가지 검사도 받고 약도 처방받아 드셨다. 그런데도 두통은 가시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내가 장모님 심부름으로 어른 집에 들렀다.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온 뒤 아내는 아버지께서 우울증 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막내 동서가 정신과 의사라 급하게 전화로 부친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 약을 먹고 나니 심하든 두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많이 가라앉았다고 하셨다.
‘몸’의 고통인 두통이 우울증이라는 ‘감정’ 문제에서 온 것이었다. 사실 몸과 감정 간의 이러한 연결고리는 크게 놀라운 것은 아니고 당연하다. 인간이 마음과 몸으로 구분된다고 할 때, 감정은 이성의 중심지인 마음이 아니라 몸에 연결된 것이다. 부친도 감정을 다치니 몸에서 통증이 유발된 경우였다. 최근에 큰아버지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부친께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 충격도 부친의 감정을 다치게 한 요인이었다.
시인은 자신이 가는 삶의 길을 즐기며 가고 싶어 한다. 그러한 즐거움의 길에서 어떤 사람이 옆에 남아 있으면 좋을지 《상도》라는 MBC 드라마를 본 후 한 번 생각해 본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생각하던 중 두 남녀가 유채길 여행을 떠나는 최작가의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을 남겨야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장면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첫 번째 장면은 여행이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그 사람뿐이다. 그 사람만 내 편이다. 내 편인 사람과 함께 하면 나의 마음이 탁 트이면서 세상이 밝고 아름답게 보인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그 여행을 돌아보면, 내 편이었던 사람이 내 마음에 먹먹히 젖어 들어 자리를 잡고 떠나질 않는다. 시인은 그런 사람을 자기 인생의 길에 남기고 싶어 한다.
두 번째 장면은 골프이다. 골프는 경기이다. 경기에는 경쟁이 수반된다.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내려면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몸이 가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클럽을 휘둘렀는데 공이 똑바로 가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다. 같이 골프 하는 사람이 옆에서 이렇게 했어야지, 저렇게 했어야지 하면서 나의 샷을 지적한다면 나의 불편한 마음은 더 불편해진다. 내 마음의 불편함은 결국 고통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내 샷이 엉망이더라도 아무런 언어도 동원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내 몸을 두드려 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하고 바란다.
세 번째 장면은 카톡 주고받기이다. 시인은 시를 카톡으로 보낸다. 압축된 글인 시는 이해하기 어려워 그 톡을 받는 사람은 간단한 이모티콘만 달랑 보내기도 하고, 읽고도 답장을 하지 않기도 한다. 나의 카톡에 무반응에 난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 요즘같이 원격으로 많은 일이 진행되는 세상에서 상대의 ‘좋아요’ 클릭 하나가 큰 기운을 북돋는다. 지금은 사람들이 ‘좋아요’ 클릭이라는 반응을 먹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시인은 카톡으로 보낸 자기 시에 햇살같이 빛나는 짧은 답장을 보내 주고, 자기가 읽어주는 시를 아무 말 없이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바란다.
결국 시인이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상대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다치게 하는 사람의 특징은 ‘이성’과 ‘언어’를 동원하는 사람이다. 나의 작은 실수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따지면서 말로 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내 감정을 긁으면서 나를 다치게 하고, 나에게 고통과 통증을 유발한다. 우리가 사고로 다치면 그 다친 부위가 예전 상태로 100% 완쾌되긴 힘들다. 감정을 다쳐 생긴 상처도 몸의 상처와 마찬가지이다. 그 상처를 낸 사람에게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남을 수밖에 없다. 시인이 원하는 사람은 험난한 세상에서 항상 내 편이고, 나의 실수를 어루만져주고, 나의 표현에 자그마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시인의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고, 결국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