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배도 쳐다보는 눈을 가져야 할 시기
돈은 우리집 마당을 닮았다
마른 흙에서 상추가
갓 올라와 몸을 후닥닥 털 듯
돈은 마당을 노닐며 풍류를 풍성하게 즐긴다
우리집 마당 귀퉁이 박두 단감나무는
눈에도 아름답고
그 기세가 학처럼 스스로를 잘 드러낸다
붉은 앵두는 제 무게를 못 이기고
가지마다 붉은 속마음을 축 늘어뜨려
이 사람 흘깃 저 사람 흘깃
햇볕에 넉넉한 마음을 느엇느엇 뜯어먹고 있다
속에는 청춘이 희끗하고
겉에는 잘 익은 반죽이 푸렁푸렁 매달린
대추 몇 개를 지갑에 넣고
외출하면 몸이 든든하다
한 달에 천 개의 바람이 빠져나가도
그 마당은 그대로다
마당 스스로가 오백 개의 바람을 만들고
나머지 오백 개의 바람은 젖은 구름이 만든다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사태와 지금 그 여파로 인한 경제 침체가 최근의 화두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방역 방침으로 인해 우린 외식을 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외식을 못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로 인한 식당가의 위기와 몰락이 문제였다. 자영업자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지원금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 뉴스를 보니 택시 요금이 갑자기 40%로 인상되면서 시민들이 대중교통으로 시선을 돌렸다고 한다. 그로 인한 문제는 택시 회사가 파산하는 일이다. 택시 회사의 대표는 물론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시던 분들이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기술 발달로 일자리가 자동화되면서 갈수록 사람들의 생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돈 문제이다. 어제는 대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제자가 나를 찾아왔다. 개인 학원을 운영하기 힘들어 대구에 있는 큰 학원원 강사로 들어가기로 했단다. 3월까지만 학원을 하고 6월부터 옮길 예정이었다. 2개월 정도 수입이 없을 듯하여 걱정되어 집에 사모님이 일하시냐고 물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업이 없어지면서 학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내와의 관계도 안 좋아져 지금은 별거 중이라고 했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이 돈이라는 것이 사람의 관계까지 바꿔 버리는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것 같다.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 돈을 시인은 자기네 집 마당과 닮았다고 한다. 흙에서 상추가 갓 올라와 묻은 흙을 털고 마당에 자리를 잡는다. 상추는 땅속과 다른 땅 위의 풍류를 풍성하게 즐긴다. 우린 돈이 없으면 밖에 나갈 질 못한다. 흔히 말하듯 움직이면 돈이기 때문이다. 밖에는 우리 집과 다른 풍류가 있다. 먹고 마실 것도 있고 볼거리도 많다. 문제는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이 바깥세상의 풍성함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게 된다. 이쯤 되니 돈이 없는 나는 차라리 ‘상추’라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추는 땅속에서 밖으로 외출을 하여 바깥의 풍성함을 즐기니 말이다.
시인의 집 마당에 박두 단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단맛을 품고 있는 단감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자신이 풍채가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단감나무는 학처럼 기세등등하여 스스로를 자신 있게 드러낸다. ‘단맛’에 비유되는 ‘돈’을 가진 사람은 마치 단감나무 같다. 그런 사람은 돈이 많으니 비싼 옷과 비싼 신발, 좋은 가방을 구매해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한다. 멋있는 모습을 하고 외출을 하니 기세가 등등하고 풍요롭지 않은 주변 사람들보다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한 원로 교수가 자기가 회에 소주 한 잔 사겠다고 하면서 후배 교수들을 데리고 참가지미를 전문으로 하는 횟집으로 갔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면서 술을 마시던 중, 그 원로 교수가 어떤 술자리가 제일 기분 좋은 술자리인 줄 아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남이 사주는 공짜 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코웃음을 치면서 “본인이 사는 술자리”라고 내 말에 응수했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자기가 술을 사니 술자리를 하는 동안 자기가 말을 많이 하면서 술자리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난 진심으로 “그래도 난 공짜 술이 맛있다”라고 응수를 해 버렸다. 사실 그 술자리 내내 그 원로 교수가 이야기를 다 하고 우린 그냥 듣는 위치에 있었다. 이처럼 돈이란 그 사람이 술자리를 주도하면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시인의 집 마당에는 앵두나무가 있다. 앵두가 너무 탐스럽고 붉게 자랐다. 수분이 넉넉한 그 앵두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진다.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붉은 앵두를 흘깃흘깃 쳐다본다. 먹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잘 익은 앵두를 하나하나 뜯어 먹는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퇴직금을 받아 목돈이 생긴 사람 주변에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여기 투자하고 저기 투자하라고 부추기면서 사기를 칠 모양 세다. 언제까지 갚겠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식구 중에서는 누가 아파서 그런다면서 병원비 명목으로 돈을 빌리기도 한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돈을 쓰면서 남은 돈도 결국 바닥을 보인다. 바닥을 본 사람들은 서서히 그에게서 떠나고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만 입는다.
노자 《도덕경》 제12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취하기 힘든 재화는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 이에 성인은 배를 생각하지 눈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눈)을 버리고 이것(배)을 취한다.” 노자의 관점에서 배는 아주 적당한 기본적인 인간 욕구의 터전이다. 간소한 음식, 마실 물, 주거지, 잠자리에서 약간의 억제된 즐거움, 자식이 그러한 욕구이다. 다른 한편, 눈은 끊임없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멀리에 있는 것, 즉 가지고 있지 않지만 원하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멀리에서도 우리 것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우리를 유혹하는 빛나는 물건, 그리고 지금의 파트너보다 더 어리고 매력적인 사람을 볼 수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우리말 속담이 노자의 선견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남의 집 마당에 있는 잘 붉게 익은 앵두를 보지 말고, 현재 나 자신의 배에 집중한다면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시인의 집 마당에 대추나무도 한 그루 있다. 속은 잘 익어 희끗하고, 겉은 푸르스름한 대추가 매달려 있다. 간식으로 먹을 요량으로 대추를 몇 개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외출을 한다. 마음이 든든하고 몸도 든든하다. 외출할 때 돈 없이 밖을 나서는 기분이 어떨지 느낌이 온다.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냥 산책 삼아 운동이나 할 생각으로 외출을 한다면 문제가 없다. 운동하다 목이 마르면 음료수라도 한 잔 사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돈이 없으면 가벼운 산책도 꺼려질 것 같다. 그만큼 돈이란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시인의 마당은 보물창고 같다. 한 달 내내 수많은 바람이 불어 마당을 지나가도 그 마당은 그대로이다. 마당 자체에서 바람을 만들고, 젖은 구름도 바람을 만든다고 한다. 어쨌든 시인의 마당은 그대로이다. 돈은 항상 그대로이다. 너무나 부러운 시인의 마당이다.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면, 한 달 동안 번 돈을 다 써도 한 달 후에 또 얼추 비슷한 금액의 돈이 입금된다. 그 돈을 다 써도 된다. 다시 한 달 후에 돈이 생길 테니. 시인의 마당처럼 그런 사람의 통장에는 언제나 그대로 돈이 있다. 요즘은 공무원의 월급이 해마다 동결이라고 한다. 하지만 물가는 최소 20~30%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도 생활이 다들 빠듯하다. 시인의 마당 같지 않은 공무원들의 통장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적 타격으로 일자리가 잃었거나 자영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나머지 그 업을 버린 분들의 통장은 어떤가? 하루, 아니 일주일도 버티기 힘든 상황인데 바닥을 보이는 통장 잔액으로 한 달을 버티는 것이 가능할까? 노자는 남의 것을 탐내는 ‘눈’을 버리고 자신이 현재 가진 것인 자기 ‘배’를 취하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남의 것을 탐내는 눈이 아닌 남의 상황에 연민을 느끼고 같이 마음 아파하는 ‘눈’을 취해야 할 시기이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배에 집중하지 않고 상대의 배도 쳐다보는 눈을 가질 때인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경제 문제를 해결할 아무런 방안도 없다. 그냥 이렇게 언어로만 떠들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