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기심을 극복하는 묘책
사람과 사람 사이는 미나리 같아야 한다
미나리는 논바닥 진흙 속 깊이
흰 뿌리를 철벅철벅 내려
온 힘을 다해
몸동을 파들파들 흔들어댄다
서로 간의 뿌리가 깊고 단단해야
몸동이 금세 다시 자란다
몸동을 벨 때 너무 깊게 베면 밑동이 다친다
서로가 서로에게
겉을 바싹 구워 속을 가두고
속을 두루두루 익힌
오겹살에 미나리 한 잎 척 걸치면
사람과 사람 사이 푸른 물즙이 확 퍼져 생겹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부추 같아야 한다
부추는 외딴곳에서 거름만 한 슬픔을 깊게 흡입하고
늘 곳곳 하게 서서
꼬질꼬질 향내 풍기는
낡은 잡풀을 한올한올 골라내고 있다
낫달로 적당한 깊이로
부추 밑동을 베면 벨수록 그 향은 멀리 퍼진다
부추전 밀가루 반죽은 묶지도 텁텁하지도 않게
매운 고추를 빗살로 빚어
넓고 동그랗게 다져
지평 막걸리 한잔 착 말아 올리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바삭거리고 구수한 향내가 퍼져야 정겹다
이 시를 읽으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의 시 〈섬〉이 생각난다. 사람들마다 ‘섬’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사람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완충지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나는 이 중에서 전자의 해석에 더 끌린다. 인간은 이 세상에 홀로이 태어난다. 홀로이 태어나지만 가족이라는 조직 속에서 태어난다. 조직 속에서 태어나지만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이기심은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이성을 가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뜻한다. 각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존재하게 된다.
시인 정현종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희망을 표현한다. 그는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그 섬에 다리를 놓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를 놓은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는 미나리 같아야 하고, 부추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미나리 같고 부추 같다’가 아니다. ‘미나리 같아야 하고 부추 같아야 한다’처럼 의무성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섬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우린 의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해서 미나리와 부추 같이 되면 그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단순히 미나리 같고 부추 같다면 장애물의 개념은 나오질 않는다.
미나리와 부추가 대관절 무엇이길래 이기적 성향의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해법이 되는 것일까? 이 시에 말하는 미나리와 부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채소이다. 미나리는 논바닥 진흙 속 깊이 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뿌리가 깊으니 줄기(몸동)는 힘을 다해 흔들어 댄다. 뿌리가 깊고 단단해야 줄기(몸동)도 금세 다시 자란다. 줄기를 너무 깊게 베면 밑동이 다친다. 시인은 미나리의 줄기를 ‘몸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몸통’이라고 적고 싶었는데 오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잠시 생각해 보니 줄기를 뜻하는 ‘몸’이 파들파들 흔들어 대므로 움직일 ‘동(動)’ 자를 쓴 것 같다. 부추는 산과 들에서 자생하거나 농가에서 재배되기도 한다. 외진 곳에서 거름을 먹고 자란다. 시인은 거름을 ‘슬픔’에 비유한다. 그 슬픔은 외딴곳에서 홀로이 자란다는 느낌에서 나왔다. 슬픔을 깊게 흡입하면서도 부추는 늘 당당하게 꼿꼿이 선다. 부추는 맛이 시고 맵고 떫어서 꼬질꼬질 향내를 풍긴다. 적당한 깊이로 부추 밑동을 베면 그 향은 멀리 퍼진다.
미나리와 부추는 음식 재료로 활용된다. 미나리는 각종 비타민이나 몸에 좋은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하여, 해독작용을 하고, 간 기능을 향상하며, 숙취와 변비, 고혈압에 좋다고 한다. 시인은 오겹살을 구워 먹을 때 미나리 한 잎을 척 걸쳐서 먹는다. 시인은 오겹살 굽은 기술도 뛰어나다. 겉을 바싹 구워 속을 가두고 그런 다음 속을 두루두루 익힌다. 속이 잘 익은 오겹살의 육즙과 미나리의 푸른 물즙이 만난다. 서로 독립적이고 홀로이던 오겹살과 미나리 사이에 서로의 ‘즙’으로 다리가 놓여 생기가 돋는다. 부추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고 독특한 향미가 있는 식품이다. 꽃대가 올라오기 전의 부드러운 부추를 나물이나 다른 식품과 혼합하여 반찬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우리 시인은 부추전을 만들어 먹는다. 부추전을 만드는 시인의 요리 솜씨 또한 일품이다. 밀가루 반죽은 묶지도 않고 그렇다고 텁텁하지도 않게 한다. 그 반죽에 매운 고추를 빗살로 잘라 넣는다. 이렇게 넓고 동그랗게 다져 부추전이 완성된다. 바싹하게 구워진 부추전과 지평 막걸리가 만난다. 서로 다른 영역에 속했던 부추전과 막걸리 사이에 바삭거리고 구수한 향내로 다리가 놓여 정겹다. 시인의 힘들인 노력의 결과로 오겹살과 부추전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미나리와 막걸리도 한몫한다. 이러한 음식과 술로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생겹게 하고 정겹게 한다.
이제는 미나리와 오겹살, 부추전과 막걸리가 따로가 아니라 서로 융합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다리가 놓여 서로 교류가 시작될 조짐이다. 어떻게 이런 음식과 술이 이성을 갖춘 이기적 존재인 인간을 함께 하여 사회성을 달성하게 할까? 인간의 뇌에는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이 있다. 이 부위는 전두엽피질 중 앞부분에 해당한다. 이 전전두엽피질이 이성의 중심지이다. 전전두엽피질은 완전히 발달하고 마지막으로 성숙에 도달하는 데까지 20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 어린아이들은 이성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쉽게 친구를 사귄다. 이성이 완성되지 않았고 자신의 사리사욕에는 별 관심이 없으므로 상대를 쉽고 믿고 같이 잘 어울린다. 이런 아이들도 20세가 넘어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전전두엽피질이 완전히 발달하여 남이 아닌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이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섬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성이 부족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야 한다. 몸과 뇌는 이미 성인이므로 이성을 잠시 내려 두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몸은 성인이지만 이성이 부족한 어린아이의 상태가 되는 방법은 같이 좋은 음식을 먹고 술을 같이 한잔하는 것이다. 특히 술은 이성의 중심지인 전전두엽피질의 작동을 일시 정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원히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정지시키는 것이므로 많은 양의 술은 위험하다. 음식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 우리가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르면 이유 없이 행복하고 그냥 바보가 된 듯 히죽히죽 웃는다. 이렇듯 적당한 양의 좋은 음식과 좋은 술은 이성의 작동을 잠시 멈추게 하고 행복이라는 감정이 들어오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미나리 같아야 하고 부추 같아야 한다는 시인의 말은 이성의 작용을 일시 멈추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나리와 부추로 만든 좋은 음식과 막걸리 같은 좋은 술을 같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에드워드 슬링거랜드 교수는 2021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 《취함의 미학》(Drunk)에서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서로 협력하여 지금의 문명을 이룩하기 위해 인간이 창의적 동물이어야 하고, 협력적 동물이어야 하고, 공공적 동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술취함’을 그 해법으로 제안한다. 우리 시인은 술취함 외에 맛있는 음식 나눠 먹기도 그 해법으로 제안하고 있다. 우리 모두 이성의 작동을 일시 정지시키고 서로에게 진정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같이 둘러앉아 맛있는 미나리와 부추, 막걸리를 함께 나누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