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비 Sep 01. 2023

그린 리바이어던

기후위기와 AI 시대에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어제 저의 번역서가 출간되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책 내용은 이 책의 ‘옮긴이의 말’과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옮긴이의 말


기후변화와 AI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돌연변이가 아니다. 오랜 기간 쌓이고 축적된 결과적 현상이다. 그렇기에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간은 첨단기계나 로봇일 수 있는가?’ 여기에는 개개인들이 선택할 자유의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마크 코켈버그는 기후변화와 AI 위기가 초래할 숱한 위험과 그 영향을 떠올리며 우리가 예시할 수 있는 자유의 의미와 한계를 파고든다. 하나는 구속받지 않는 절대적 자유의 개념에 기초한 자유주의 정치의 한계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높은 형태의 통치 필요성을 역설하는 권위주의 정치의 한계이다.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 한계에 천착한 결과, 저자는 구속받지 않는 자유는 부정적 효과의 악화를 초래할 뿐이고,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다른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글로벌 거버넌스 형태의 집단행동이다. 

코켈버그는 자유와 AI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3의 길로 여긴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낸 오래전 상상 동물을 상기시킨다.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가르는 해협에 사는 바다 괴물 스킬라Scylla와 카리브디스Charybdis이다. 스킬라는 원래 아름다운 요정이었다가 흉측한 바다 괴수로 변한 것이고, 카르비디스는 바닷물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뱉으며 끊임없이 소용돌이를 만드는 존재이다. 선원들은 멕시나 해협을 무사히 통과하려면 이 두 바다 괴물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한다. 상상력을 신이 인간에게 준 위대한 선물로 간주하는 작가 보르헤스H. J. Borges의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에는 이것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된다.


괴물로 변해 소용돌이가 되기 전만 해도 스킬라는 바다의 신 글라우코스가 사랑한 요정이었다. 그녀를 얻기 위해 글라우코스는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마술로 유명한 마녀 키르케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키르케는 글라우코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지만 글라우코스는 스킬라를 잊지 못했다. 그러자 키르케는 스킬라가 자주 목욕하던 샘물에 독을 풀었다. 독물에 닿자마자 스킬라는 몸 아랫부분이 개로 변해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가 열두 개에 머리가 여섯 개인, 그리고 각각의 머리에 이빨이 세 줄로 난 괴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공포를 느낀 스킬라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가르는 해협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신들이 그녀를 바위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선원들은 태풍이 치는 날이면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 H. J. 보르헤스,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 중에서     


코켈버그는 왜 자신의 생각을 이런 상상 동물에 비유한 것일까? 사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보면 상상의 세계는 황당무계한 세계가 아니다. 상상의 세계는 무릇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적 사유 너머로 우리를 초대한다. 여기서는 삼라만상의 것들이 재구성될 수 있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도 현실과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 차이는 있지만 상상의 세계 속 존재는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삶과 모습을 반영한다. 다만,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미지의 삶과 세계’를 새롭게 짚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기후변화와 AI 위기 상황에 직면한 코켈버그는 권위주의의 스킬라Scylla와 급진적 자유주의의 카리브디스Charybdis라는 두 바다괴물 사이를 무사히 항해하기 위한 취지에서 자유와 AI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3의 길로 구성한 것이다. 그는 자유가 적극적이고 관계적 기율이라면, AI는 공산적 기술로 인식할 것을 제안한다. 코켈버그가 추구하는 자유와 AI는 해방과 민주화를 위한 적극적이고 관계적 기율 아래 시적-정치적 프로젝트에 통합됨으로써 더 포괄적인 집단과 새로운 공동체 건설에 기여한다.


코켈버그는 역동적인 확장을 특징으로 하는 자유에 대한 서양식 개념의 역사를 일별한다. 이 역사는 자유에 대한 소극적 개념에서 적극적 개념으로의 단계적 전환일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원칙, 가치, 비인간 같은 존재도 포함한다. 자유 개념을 넓히는 동력은 거꾸로 권위의 개념을 축소시키는 동력과 결합되어 자유와 권위라는 두 개념에 대한 급진적 해석의 부정적 영향을 벗어나게 한다. 이것은 코켈버그가 역점을 두는 관계적이면서 적극적인 자유에 대한 개념이 인간, 정부, 동물 등 다른 모든 것들도 가능한 위협일 수 있는 자유를 너무 세세하게 해석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켈버그의 자유 개념은 이런 다른 것들도 개인의 자유를 구성하는 일부이며, 반드시 자유를 위협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제2장과 제3장에서 코켈버그의 초점은 소극적 자유의 개념에 맞춰져 있다. 그는 인간 공동체를 경계 안에 유지할 수 있는, 정부의 정치적 통일체라는 홉스의 개념과 플라톤의 개념을 논거로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제시한다. 모든 구성원이 사적 판단과 생존 본능에만 골몰한 채 절대적 자유 속에서 살게 되면 개인과 사회생활은 결국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권위가 부재하는, 이 자연 상태는 경쟁과 갈등이 팽배한 상태이다. 홉스의 경우, 이럴 때 정치적 권위의 유일한 기능은 사회 모든 구성원을 안전하게 하고 내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저술에 말하는 정치적 권위는 사람들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기능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플라톤이 강조하는 정치적 권위는 각각의 존재마다 자신이 쌓은 덕의 특성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플라톤이 말하는 정치적 권위는 지식이 풍부하고, 덕이 있고, 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권위는 부귀영화를  흠모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의와 선함의 근본을 간파한 철인 왕이 통치하는 귀족 정치이다. 평화와 안전 외에 선한 사회는 모든 정부 기관이 이루려는 최종의 목표이다.


기후변화와 AI 위기와 관련해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와 지역 수준에서 입안된 정책, 지시, 조치 등의 통합을 종식시키는 권위 있는 글로벌 정부의 비유일 수 있다. 이런 정부 기관이라면 별다른 논쟁 없이도 올바른 조치를 위해 AI 시스템에 의존할 수 있고, 또 머지않아 AI도 이런 권위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플라톤의 철학적 귀족정치를 통해 코켈버그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지구 공동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이를 간파하는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및 사회 체제인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를 묘파한다. 그가 보기에 AI는 의식과 같은 정신적 속성을 갖춘 도덕적 행위자일 수 없어서 덕을 겸비하지 못한다. 따라서 AI는 이런 테크노크라시에 대한 지원자 역할만 할 수 있다.


제3장에서 코켈버그는 사회공학의 한 형태로서 넛지를 논의함으로써 앞서 말한 테크노크라시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넛지는 행동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는 넛지가 자신과 사회를 위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치 그런 능력을 오직 특정 그룹의 사람들, 즉 넛지를 가하는 사람 또는 전문가에게만 속한 것으로 파악한다. 코켈버그는 이런 불신에 대항하기 위해 루소가 주창한 일반의지에 도움을 구한다. 루소가 강조하는 일반의지는 서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에 기초하는데, 이런 신뢰에 근간을 둔 자유는 바다, 땅, 하늘의 원초적 힘을 상징하는 리바이어던이 아닌 각각의 존재가 바로 주권자이고 자치를 실천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공동체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자유를 우리는 공유된 민주적 실천으로 간주한다. 루소와 코켈버그에게 자유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고 유지되어야 할,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 무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유일한 구심점이 부족하고 다른 기준과 조건도 더 많이 설명되어야 한다. 여하튼 자유가 중요하다면, 우리가 분명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어떤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부정적 자유)만 외쳐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누리고픈 자유와 민주주의의 조건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정확히 문제 제기해야 한다.


제4장에서 코켈버그는 적극적 자유로 논의의 초점을 이동한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사이의 차이는 이사야 벌린의 논문 〈자유의 두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벌린이 주장한 적극적 자유를 ‘~로부터의 자유’로 기술한 것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벌린은 적극적 자유를 개인의 자아통달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반해, 코켈버그는 이 적극적 자유를 무언가를 행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될 자유로 여긴다. 이를 통해 우리가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위해 살 수 있는 역량, 타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역량, 타인을 존중하는 역량 등 법철학자, 정치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마샤 누스바움이 제시한 10가지 인간의 중심적 역량에 의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는 정치적 자유와 윤리를 연결시킬 수 있다고 코켈버그는 주장한다.


코켈버그의 주된 물음은 기후변화와 AI 기술이 우리가 자유롭고 번영된 삶을 살기 위한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도대체 기후위기가 자연환경과 관련되거나 건강하게 살아가는 개인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AI 기술은 개인사를 계획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코켈버그에 따르면, 우리는 AI 사용과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모든 방법이 소극적 자유를 보존하긴 하겠지만 적극적자유도 촉진하길 바라고 있다.


적극적 자유 개념은 또한 우리가 자유를 발전시키는 각종 조건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와도 연결된다. 코켈버그는 민주주의를 루소의 자치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가장 적절한 정부 형태로 제안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모든 인간 개인을 포함하는 존 듀이식 개방형 사회 실험으로 해석한다. 게다가, 그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자유와 다른 정치적 가치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고 본다. 실제로 코켈버그의 주장처럼 기후위기와 AI 기술을 고려할 때 사회 정의와 평등 등 여러 정치적 가치를 함께 설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를 고려할 때, 지구 남쪽에 위치한 많은 국가들이 서구의 여러 국가들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이 위기의 부정적 영향을 견뎌왔다. AI 기술을 고려할 때, 애플리케이션을 훈련하기 위해 사용된 역사적 축적된 데이터의 편향은 개인과 그룹 행위에 대한 편향되고 차별적 가정을 강요하는 것에서 종결되었다. 분명 이런 문제는 주로 사회 정의와 평등과 직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파는 개별 존재의 자유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향은 개별 존재가 차별을 받을 때 그의 자유 역시 함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5장에서는 기후위기와 AI 기술과 관련하여 다른 정치적․도덕적 가치를 끌어들여 자유의 의미를 계속 확장시킨다. 이로써 코켈버그는 기후위기와 AI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AI의 개발과 사용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 것인가? 누가 기후위기의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해야 하고, 누가 기후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분배적․세대 간 정의, 평등 등에 대한 주장까지 파고든다. 그는 인류세에 대한 오늘날의 논쟁이 지금의 기후위기에 처한 사람들이나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기여한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인류세 개념은 기후위기와 AI가 글로벌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는 글로벌 정치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의미를 이렇게 확장하는 것은 더 많은 원칙과 가치를 포함하는 문제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정치적 통일체를 다시 정의하고 인류세의 관점을 초월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코켈버그는 브뤼노 라투르와 도나 해러웨이로부터 영감을 받아 비인간도 정치적 통일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이 비인간을 대표할 권한, 지식 또는 경험을 갖고 있는가? 아마도 과학자이거나 기술 개발자, 아니면 NGO일 것이다.


사실 비인간을 포함하려면 평등과 정의와 같은 원칙과 가치에 대한 심층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의사소통과 초학제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요구된다. 과학과 정치의 분리는 단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구조화하고 부분적으로 모호하게 하는 서술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 다 항상 뒤섞여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정치적 통일체를 사람과 사물에게 늘 일어나고, 그들 사이에서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와 그들 간에도 서로서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폭넓은 정치적 통일체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 문화와 자연 사이, 정치와 과학 사이의 분리가 현실을 구조화하는 표상으로 제시될 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관계적 관점일 수 있다.


코켈버그에게 있어서 자유와 정치적 통일체에 대한 관계적 관점은 우리 인간이 기후위기 밖에 서 있지 않다는 관찰로 이어진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직면하지 않고 지구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기후위기의 본질을 이루는 일부인 것이다. 게다가, AI는 실제로 우리의 관계, 서로 간의 관계, 사회, 자연, 비인간, 기후위기와의 관계에 대한 중재자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AI와 기후위기와 관련된 주된 정치적 문제는 인간의 기술적 행위성과 자연 사이의 일종의 싸움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기술적으로 둘의 관계를 중재하고 형성하면서 많은 다른 실체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환경 관계를 조정하는 긴요한 문제이다. 때문에 코켈버그로선 이러한 사회-기술-자연적 관계를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이 관계는 상황에 맞게 언제든 새롭게 조정될 필요가 있고, 이는 곧 정치가 고정된 명사가 아닌 움직이는 동사가 된다는 의미이다. 즉, 정치는 공산적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정치를 해야 하고, 우리가 정치를 활용해야 하며,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가 되어 위해 상호 관련해서 정치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


마지막 장에서 코켈버그는 공산적 정치가 자신이 말하는 공산적 기술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첫째, 공산적 기술은 사회-기술-자연적 환경을 확장한다. 둘째, 공산적 기술은 우리의 소극적 자유를 최대한 덜 침해하면서 우리의 적극적 자유를 더 지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산적 기술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대표하는 정치적 통일체의 탄생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의 기후위기에 비추어 볼 때, 과연 AI기술은 이런 공산적 기술의 이상을 준수하고 있는가?


AI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공산적․관계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AI는 인간, 비인간, 행성 생태계 간의 상호 의존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우리의 연구를 지원할 수 있다. AI는 또한 그 반대 효과도 만들 수 있다. 단편적인 분파를 더 많이 만들어내고, 공정성과 투명성은 더 적게 만들며, 우리 인간의 번영을 위협할 수 있다. 또한 비인간 동물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인간과 비인간의 번영, 보다 포괄적인 집단과 상호의존적 자치의 구축, 새로운 공동 세계 건설에 기여함으로써 해방과 민주화의 관계적인 정치적-시적 프로젝트에 통합된다면, AI는 기후위기에 민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폭넓게 담고 있는 이 책은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을 통제하는 과제를 일별함과 동시에 자유의 문제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논하고 있다. 이때 기술과 환경의 미래에 대해 독창적인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정치철학의 연구까지 동원한다. AI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이것이 우리 스스로 정치적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 책은 자유의 의미를 넓히면서도 권위주의적 선택에서 벗어나되 정의와 평등 등 다른 원칙을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수준에서 우리가 집단행동을 하고 협력하는 것 외에도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더 나은 조건을 만드는 긍정적이며 관계적 의미의 자유 개념을 채택하도록 제안한다. 단편적인 자유주의와 오만한 테크노 솔루션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이 책은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위기에 대한 덜 징후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한편, AI를 활용하여 보다 새롭고 보다 포용적인 정치적 집단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공동체 건설과 창조적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한다. 명확하지만 어렵고, 접근은 쉽지만 다루는 문제의 비중이 크고 육중하여 이 책은 정치철학, 환경철학, 그리고 기술철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학계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자들의 관심과 공감, 일독을 바라는 우리 번역자의 마음도 함께 적는다.


“이 책은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전통과의 토론을 통해 AI가 어떻게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동시에 우리의 정치적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지를 아주 특별하고 철저하게 검토한다. 인류세의 신흥 시대에 AI의 정치적 잠재력과 그 위험 모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 필독서가 될 것이다.”

― 피에터 네먼스Pieter Lemmens  네덜란드 네이메헌 라드바우드대학교 교수


2023년 7월 25일

김동환․최영호


한국어판 서문: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느새 인공지능(AI)은 국가의 정치 및 경제 전략 수립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각국 정부마다 AI 정책을 세우고 있다. 경쟁력 있는 최첨단 AI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핵심 주자인 한국의 경우는 AI 혁신 글로벌 허브 계획을 추진 중이고 이를 위해 우수한 연구 대학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준에서의 AI의 잠재력도 엄청나다. AI는 경제 발전을 지원하고, 인류가 처한 글로벌 문제 해결을 도울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거대한 글로벌 과제를 생각해 보라. AI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극한 기상 상황을 예측하고, 기후 모델링을 구축하는 데 지원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AI는 정치적 협력도 이끌어낼 수 있다. 즉, 데이터 분석을 통해 거버넌스를 도울 수 있다. 심지어는 사람들을 대신해 AI가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기후 친화적인 방향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제안까지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AI는 지구와 지구촌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기후변화의 완화 결정을 위해 노력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기회에는 위험도 따른다. 만약 AI의 결정이 틀렸을 경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AI 자체가 배출하는 배기가스와 자원 활용에 따른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야기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의 행동에 암암리에 영향을 미치고 조작하는 AI를 우리는 허용할 수 있는가? 만약 허용한다면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허용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권위주의적인 AI에 의한 지배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AI의 발전과 기후변화의 영향력이 공진화함에 따라 이런 의문들은 한층 더 들끓을 것이다. AI는 ‘우리를 구할 수 있고’, ‘지구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우리는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일까? 그 해결책을 마련했을 경우,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얻고, 누가 그 대가를 치를 것인가? 이러한 새로운 기술과 지구 행성의 발전 국면에서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이해관계와 AI의 이해관계가 서로 긴장 관계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기존의 정치철학과 정치이론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생겨나는 몇몇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중 하나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 중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고려한 정치적 영향을 포함해 AI의 정치적 영향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개념이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지적 도구인 상상력이다. 우리는 AI와 기후변화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서로 교차하며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를 앞질러 상상할 수 있고, 더 나은 세상,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을 미리 상상해 볼 수 있다.


Green Leviathan or the Poetics of Political Liberty의 한국어판은 매우 개념적이고 상상력 가득한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견해를 영어 사용권 세계의 경계를 넘어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AI의 급속한 발전과 기후변화에 비추어, 그리고 우리 인간만이 윤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서구의 통찰력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AI 시대의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2023년 8월 3일

벨기에 드한에서

마크 코켈버그(Mark Coeckelbergh)

작가의 이전글 술은 고달픈 삶의 친구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