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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Aug 25. 2023

술은 고달픈 삶의 친구이다

나는 집보다는 내 연구실이 편하다. 그래서 주말에도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편이다. 주말 연구실 생활의 시작은 아침을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학교 근처에는 식당들이 밀집한 거리가 있다. 나는 주말에는 주로 그 식당 거리를 이용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찌개나라’라는 식당이다. 한정식 위주의 반찬과 찌개가 같이 나와서 그런지 먹기도 편하고 속도 편안한 곳이다. 주말 아침 나의 식사는 새벽 6시 전에 시작한다. 일찍 일어나 바로 그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는다. 새벽 6시이지만 그 시간대에도 3, 4명이 한 테이블에 같이 앉아 식사하는 때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옷차림으로 봐서는 공사 현상에서 일하시는 분들 같았다. 그분들은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소주나 막걸리를 반주로 하셨다. 점심을 먹으면서 낮술은 하는 때도 있지만, 새벽술 또는 아침술은 처음에 나에겐 생소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식당에서 그런 분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에 적당히 익숙해졌다. 술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나도 꼭 한 번은 새벽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은 예술적 영감을 준다고들 한다. 술은 예술적 상상력의 도취제와 촉진제의 역할을 하며, 술 마시는 사람은 최적의 창의적 순간을 느낀다는 것이다. 작가, 시인, 예술가, 음악가처럼 소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창의성 향상을 위해, 또는 창의성을 위한 개방된 마음을 얻기 위해 기꺼이 술을 마시며 기꺼이 간을 손상시키는 육체적 대가를 치르고, 심지어는 술값이라는 재정적 대가도 치른다.


이처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예술을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하지만, 왜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새벽부터 술을 마실까? 아마 점심을 먹으면서도 한잔할 수 있고, 공사 일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먹으면서 같이 한잔하든, 아니면 집에 가서 편하게 혼자 술을 마실 것 같다. 그들은 왜 술을 마시는 걸까? ‘일상생활의 가혹함’을 떨쳐버리고 싶어 술을 마신다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예술가는 술을 마셔 예술적 영감을 얻고 정서적 편안함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가혹함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우리도 술을 마셔 정서적 편안함을 찾을 것이다. 그리스의 시인 알카이우스는 “우리의 영혼이 슬픔에 젖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방어 수단 중 가장 좋은 것은 술을 많이 섞어서 마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이런 시를 지었다. “온갖 변화가 서로 이어지니, 인생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 무엇으로 내 마음을 위로할 것인가? 탁주로나마 우선 스스로를 즐겨보자.”


인생의 가혹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술을 마실 것을 권하는 알카이우스와 도연명 같은 사람은 비교적 부유한 지배계층이다. 이처럼 부유한 지배계층의 사람들조차 슬픔을 달래거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술을 마신다면, 공장이나 도로, 건축 현장에서 고생하고, 매일같이 불충분한 음식과 휴식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술이 얼마나 필요한지 상상이 되고 이해가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실로부터 2, 3시간의 해방은 즐거울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

찌개나라에서 새벽 6시에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술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언젠가 한 번 새벽에 술을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참 바보 같고 아무 생각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 난 사실 생각해 보면 내 삶이 그렇게 가혹한 것은 아니다. 물론 내 생활에서 힘든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가혹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삶의 가혹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흉내나 내려고 했다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스럽고 부끄럽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예술적 영감을 위해 술을 마시고, 어떤 이들은 일상의 가혹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신다면, 난 과연 무엇 때문에 술을 마실까?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다. 그냥 술을 좋아해서 마신다는 말 외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술도 일종의 음식이니 음식 먹듯이 술을 마신다고도 핑계를 대었던 것 같다. 어떨 때는 그냥 취함의 쾌락이 좋아서 술을 마신다고도 했다. 쾌락 자체를 위해 술을 마신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문제는 나에게는 술취함에 대한 나의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술취함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반성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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