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한 날 아니면 보통 10시경에는 침대에 눕는다. 잠들기 전에 코믹한 내용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을 10분 정도 본 뒤 잠을 청한다. 침대에 눕기 전에 물을 한 잔 마신다. 자기 전에 마신 물 때문이겠지만, 꼭 새벽 2, 3시쯤에 잠이 깨지면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곤 다시 잠을 청한다.
오늘 새벽도 마찬가지로 2시쯤에 화장실에 가야 해서 잠에서 깼다. 하지만 오늘 새벽에는 바로 잠을 청하지 않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2023년 9월 2일 오후 11시 손흥민(1992~ ) 선수가 출전하는 토트넘과 번리의 2023~202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4라운드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다음날 잠에서 깬 이 시간쯤이면 이미 경기 결과가 나왔을 것이므로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잠들기 전에 이상하게 이 경기에서 손흥민이 골을 넣는 것은 물론이고 해트트릭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Daum) 사이트를 켜자마자 첫눈에 들어온 문구는 “손흥민 해트트릭 작렬”이었다. 내 예상이 맞아서가 아니라 손흥민의 작전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서 그 새벽에 활짝 미소가 나왔다.
손흥민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한 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영국의 토트넘 홋스퍼에서 경기하고 있다. 아시아 선수로서 손흥민은 EPL에서 몇 가지 큰 역사고 쓰고 있다. 첫 번째 역사는 2021~2022 시즌 23골로 득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역사는 2023년 4월 8일 2022~2023 시즌 30라운드 경기에서 개인 통산 100골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역사는 2023~2024 시즌에 토트넘의 주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이 극도로 심한 유럽 국가에서 선수 생활을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힘든 일일 텐데, 손흥민 선수는 이런 역경을 뚫고 이 세 가지 위엄을 달성한 것이다. 손흥민이 EPL에서 이룩한 이 세 가지 새로운 역사가 갖는 의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축구 전문가들은 많은 언론에서 이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미 분석했다.
나는 2023년 8월 11일부터 시작된 2023~2024 프리미어리그 초반 손흥민 선수의 마음속을 살짝 들여다보려고 한다. 지난 시즌은 토트넘에는 큰 시련이었다. 토트넘의 2022~2023 시즌은 한마디로 요약하지만 완벽한 추락이었다. 8위로 시즌을 마치며 13시즌 만에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다. 이런 충격으로 이번 시즌에는 스코틀랜드의 셀틱 FC에서 감독을 맡아 리그 우승을 한 경험은 있지만, EPL 경험이 없는 엔제 포스테코글루(1965~ )를 토트넘의 새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그런데 토트넘의 주장이자 핵심 공격수인 해리 케인(1993~)이 토트넘에서는 리그 우승을 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독일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팀을 옮겨 버렸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케인이 남기고 간 토트넘 주장 완장을 손흥민에게 채워 주었다. 이렇게 손흥민은 토트넘의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 캡틴 손흥민이 토트넘을 이끌고 출전한 1라운드(8월 13일) 브렌트포드와의 경기에서는 2대2 무승부였고, 2라운드(8월 20일) 맨유와의 경기에서는 2대0 승리였고, 3라운드(8월 26일) 본머스와의 경기에서도 2대0 승리였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4라운드(9월 2일) 번리와의 경기에서는 손흥민의 해트트릭으로 5대2 대승이었다.
1라운드에서 손흥민은 본인으로 인해 PK가 선언되었고, 슛도 두 개밖에 하지 못했으며, 공격 포인트 없이 후반 30분에는 교체가 되어버렸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좌측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했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은 많은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캡틴으로서 첫 경기이고, 이 경기에서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며, 모든 스포츠가 다 그러하듯이 첫 경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2라운드 맨유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이 경기에서 미친 확약을 보이며 평점 8.1을 받았다. 스트라이크가 아닌 플레이메이커로서 동료 선수들에게 연신 좋은 패스를 해주었다. 후반에 스트라이크 히샬리송을 교체하면서 그 자리에 손흥민이 들어갔지만, 그는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모습을 계속 유지했다. 3라운드 본머스와의 경기에서도 손흥민은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와도 더 좋은 기회가 있는 동료 선수에게 공을 패스해 주었다. 이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손흥민은 공격 포인트가 없었지만, 평점 8.0을 받았다. 후반 15분에 히샬리송이 교체되어 나가고 손흥민이 스트라이커 자리에 들어왔다. 손흥민이 스트라이크 역할을 한 지 3분 만에 손흥민의 어시스트로 골이 들어갔다.
이 세 경기에서 손흥민은 철저히 동료에게 베풀고자 했다. 물론 선수는 감독의 지시를 수행해야 하므로 손흥민에게 플레이메이커로서 해야 할 역할을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는 스트라이크 자리에서도 그 베풂을 계속 유지했다. 그는 계속 베풀어서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자고 그리고 자신은 욕심을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런 손흥민의 베풂 축구는 결국 4라운드 번리와의 경기에서 결실을 본다. 처음부터 스트라이크 역할을 맡은 손흥민에게 동료들은 계속 좋은 패스를 넣어준다. 그 모든 패스를 손흥민은 놓치지 않고 세 번의 골로 연결했다. 이렇게 그는 해트트릭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그러면 왜 손흥민 선수는 베풀 수 있었을까? 그는 가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돈이 많이 없다면 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 내가 가진 돈이 많고 여유가 있으므로 난 상대에게 베풀 수 있다. 손흥민은 축구에 관해 가진 것이 많다. 스피드, 골 결정력, 패스 능력,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 등 축구에 필요한 많은 것을 가진 축구 도사가 손흥민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진 것이 많다고 해도 자기 것을 그냥 베풀기만 하면 가진 것은 조금씩 소모되어 결국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무작정 잘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손흥민은 현재 가진 것이 많다는 것 외에 무엇이 있어서 동료들에게 베풀 수 있을까? 그는 본인이 가진 것을 베풀어 주어 그 부분이 소진되어도 그 빠진 부분을 다시 채워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내 것을 상대에게 줘도 나는 다시 채워놓으면 되니 베푸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거나 힘든 일도 아니다. 내 노트북에 다양한 원서의 PDF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인터넷에서 원서 PDF 파일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 사이트에 들어가 최신 파일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전공인 다른 대학의 교수나 박사과정 학생들은 나에게 필요한 책의 PDF 파일을 부탁한다. 그러면 난 10초 만에 내 노트북의 폴드에서 그 파일을 찾아 바로 메일로 보내준다. 그 파일을 받은 사람들은 나에게 무척 고마워한다. 사실 나는 그런 인사를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있는 것을 주었고, 또 더 최신 자료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손흥민 선수도 이 점에서 나와 같은 생각이다. 그는 축구 도사이므로 가진 것이 많고, 또 다른 축구 기술과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자신감도 있으므로 베풂의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
베풀고 난 뒤 돌아오는 문제, 베풂의 결심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세상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고, 인과관계가 작용한다. 원인에 대한 결과가 일어난다. 이는 물리 법칙이지만 심리 법칙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면 그 사람에게 보답해 주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주고받기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물론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자동으로 우리 삶에서 퇴출당한다. 내가 그 사람과 더 이상 관계를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우리 주변 삶에서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손흥민 선수도 본인이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베풀면 그 패스를 받은 동료 선수가 언젠가는 자기에게 좋은 패스를 해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합리적 계산으로 베풂의 축구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손흥민은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한다. 축구에서의 핵심은 우리 편의 승리이다. 손흥민은 자기가 골을 넣든 동료 선수가 골을 넣든 그냥 우리 편이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축구선수이다. 손흥민과 동료들 간에 심리적 인과관계가 작용한 것이 4라운드 경기였다. 4라운드 경기에서 동료 선수들은 지금까지 베풂을 받았던 손흥민의 패스를 이제는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동료들도 마음속에서 인과관계가 작용하고 있으므로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전 리그들에서 손흥민에게 받은 것을 돌려준 대표적인 동료 선수가 해리 케인이다. ‘손케듀오 합작골’이라는 말이 있다.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 프리미어리그에서 합작골 37골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서로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심리적 인과관계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흥민에게 받고도 돌려주지 않은 선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선수들은 퇴출당했다. 손흥민이 다시는 패스하지 않아 퇴출당한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들이 그런 선수를 퇴출해 벤치에 앉혔다.
오늘 아침 손흥민 선수의 베풂 축구가 네 번째 경기 만에 결실을 거두는 것을 보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 경기 후 심판에게서 해트트릭 골을 건네받고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는 손흥민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해트트릭 공은 손흥민에게는 베풂 축구의 결실이었다. 그 결실을 꼭 안고 상대팀에게도 인사를 하고, 동료 선수들과도 인사를 하고, 원정경기에 응원을 와 준 토트넘 팬들에게도 인사를 한다. 가슴 뭉클하게 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EPL이 38라운드 경기까지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작 4라운드까지 만의 결실만 오늘 이야기했다. 토트넘의 마지막 경기는 2024년 5월 20일에 치러진다. 이 경기까지, 그리고 이번 시즌의 모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더 많이 기다려야 한다. 나는 캡틴 손흥민의 토트넘이 이번 리그에서 우승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2024~2025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이라는 결실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흥민 혼자만 베풂의 축구를 해서는 안 되고, 모든 동료도 손흥민과 똑같은 마음으로 베풂의 축구를 해야 한다. 손흥민의 베풂과 다른 모든 선수의 베풂이 하나가 되어 결국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거대한 결실’을 맺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