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일에 《생각을 기계가 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나?》라는 번역서를 출간했다. 이 책의 원서는 Automation and Utopia: Human Flourishing in a World Without Work(자동화와 유토피아: 일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의 윤택함)이다. 아일랜드 골웨이대학(University of Galway) 법학과 교수인 존 다나허(John Danaher)가 2019년에 하버드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한 책이다. 다나허 교수는 이 책에서 첨단 인공지능 시대의 삶의 의미와 일의 미래 등을 통쾌하게 고찰한다.
우리 현대인에게 ‘일자리’는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이다. 이는 일자리가 개인의 생계유지와 자아실현의 장일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나 미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때문에 인간의 일자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급기야는 가까운 시일 내에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일자리의 대부분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 “할 일이 없어지는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이며, 생각 자체를 기계가 하면,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큰 전두엽과 그룹 내 협력 및 조정 능력이 향상되면서 비범한 문제해결 능력이 크게 발전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두엽, 특히 이성과 논리, 언어를 책임지는 전전두피질 때문이다. 이 뇌 부위에서 사고와 인지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을 제외한 유기체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생태계라는 큰 환경에서 유기체에 맞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한 자리를 생태적 지위 혹은 생태적 적소(ecological niche)라고 부른다. 생태적 지위란 유기체가 환경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를 말한다. 생태적 지위는 유기체가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 먹이와 은신처를 얻는지, 다른 유기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유기체가 생태계의 전반적인 기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묘사한다. 이처럼 유기체의 생태적 적소는 주어진 환경에서 유기체의 성공과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 활동을 통해 환경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변형시키고 조작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인지적 적소(cognitive niche)이다. 인지적 적소는 생태적 적소의 개념을 확장해서 유기체의 인지 능력과 정보 처리 능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지적 적소는 유기체가 어떻게 환경에서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고 저장하고 사용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인지적 적소는 인간과 같은 유기체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형성하고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즉, 인지적 적소는 우리 인간의 적응과 진화에서 인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우리 인간의 경우, 인지적 적소는 우리의 인지 능력이 우리가 환경을 독특한 방식으로 점유하고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인간의 인지적 적소는 복잡한 문제해결, 언어 사용, 도구 제작, 문화적 전달 및 사회 조직에 대한 우리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인간의 인지 활동은 비용이 많이 든다. 인간의 뇌는 매일 섭취하는 칼로리의 4분의 1이 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러한 인지적 노동을 다른 존재에게 위탁해서 그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인지적 인공물(cognitive artifact)이다. 인지적 인공물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확장하거나 지원하도록 설계된 도구 또는 장치를 말한다. 여기에는 연필, 종이와 같은 물리적 도구나 기억을 도와주는 클라우드, 계산하는 행위를 도와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고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ChatGPT 같은 생성형 기반의 AI 기술 모두 인지적 인공물에 해당한다. 인지적 인공물은 정신적 집중을 덜 하게 하고 시간이 덜 소요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고의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형태의 인지 능력을 활성화하고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는 인지적 적소에 대한 우리의 일과 인지 활동은 실제로 위협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점점 더 인상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인지적 적소에 대한 우리의 지배력은 더는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천천히 밀려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과 관련한 근본적인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우리는 인지 활동에 계속 참여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인지 활동을 인공지능에 넘겨주고 그만두기를 원하는가? 인지적 적소를 스마트 머신에 양도하고 윤택함과 뜻있음을 다른 곳에서 찾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도로 밀어서 우리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은가? 이 책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크게 두 가지로 제안한다. 하나는 인간이 인지적 적소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기계와 융합해 사이보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인지적 적소를 기계에 양도하고 가상공간으로 후퇴하여 가상 활동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사이보그 유토피아’ 가설이라고 부르고, 후자는 ‘가상 유토피아’ 가설이라고 부른다. 두 가지 가설 모두 장단점이 있으므로, 어느 한 가지 가설을 선호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두 가설 중 하나만 실현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은 두 가지 유토피아 모두 지금은 아니더라도 특정 시점과 특정 세대에게 실현될 것이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의 지능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난 인지언어학과 인지과학을 전공하는 인문학도이다. 어떻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일까? 이 질문은 나를 아는 주변 교수들이 할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그냥 닥치는 대로 번역서를 출간하고 싶어서 선택한 주제가 아니냐는 의심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전공과 상관없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ChatGPT가 화두이다 보니, 그 흐름에 발맞추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과 이런 의구심에 나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인공지능을 잘 모른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될 수 있을지 전망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인공지능 자체의 구조에 대한 지식도 없다. 난 그저 ‘인간’이 알고 싶다. 인간의 몸과 인간의 뇌와 인간의 지능을 알고 싶을 뿐이다. 인간을 계속 들여다봐야 인간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있으면, 인간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심오하게 파헤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비교 대상이 인간이 아닌 기계의 지능, 즉 인공지능이었다. 스탠퍼드대학의 교수이자 자율주행차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세바스찬 스런(Sebastian Thrun; 1967~ )이 한 다음의 말이 이러한 나의 입장을 잘 대변해 준다. “누구도 이런 표현을 하지 않지만, 나는 인공지능이 거의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실제로 인간의 지능과 인간의 인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그렇다, 나는 인간을 알고 싶어 인공지능을 들여야 본 것이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 인간의 뇌를 모방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뇌 중에서 어떤 부위를 모방한 것일까? 인간의 뇌는 세 가지 차원으로 묘사된다. 첫 번째 차원은 뇌의 감각 처리 영역인 후면에서부터 행동 지향적인 뇌의 전면으로 진행된다. 뇌의 감각 처리 영역은 주로 뇌의 후면, 특히 후두엽(occipital lobe)과 두정엽(parietal lobe)에 위치한다. 뇌의 전면, 특히 전두엽(frontal lobe)은 주로 인지 기능과 실행 기능에 관여한다. 두 번째 차원은 인간의 뇌가 좌반구(left hemisphere)와 우반구(right hemisphere)로 나뉜다는 것이다. 각 반구는 고유한 기능이 있다. 좌반구는 언어 처리, 논리와 추론의 기능을 하고, 우반구는 공간 인식, 창의성과 직관, 전체적 사고의 기능을 한다. 세 번째 차원은 뇌의 가장 안쪽 핵심인 뇌간(brain stem)에서부터 변연계(limbic system)의 구조를 통해 위쪽으로 가서 뇌의 바깥쪽 껍질인 신피질(neocortex)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할 때, 그 뇌는 인간의 뇌를 묘사하는 세 가지 차원 중에서 세 번째 차원인 상중하 차원에서 등장하는 뇌이다. 이 세 번째 차원을 따라 뇌는 크게 인간의 뇌(human brain), 포유류의 뇌(mammalian brain), 파충류의 뇌(reptilian brain)로 나뉜다.
파충류의 뇌는 뇌의 구조상 1층에 위치하는 뇌이고, ‘생명의 뇌’라고 불린다. 이 용어는 인간의 뇌가 초기 파충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생각에서 유래했다. 이 뇌는 뇌간(brain stem)과 기저핵(basal ganglia) 같은 구조를 포함한다. 파충류의 뇌는 주로 호흡, 심박수, 그리고 기본적인 신체 기능과 같은 기능을 조절하고, 또한 기본적인 생존 본능, 영역성, 공격성, 그리고 싸움 또는 도피 반응에도 관여한다. 이러한 본능적인 행동은 우리의 진화 역사의 잔재로 생각된다.
포유류의 뇌는 뇌의 구조상 2층에 위치하는 뇌이고, ‘감정의 뇌’라고 불린다. 이 뇌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진화한 구조를 말한다. 포유류의 뇌는 파충류의 뇌 구조를 포함하지만, 복잡성의 추가적인 층을 포함한다. 포유류의 뇌의 주요 특징은 감정, 동기,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포유류의 뇌는 광범위한 사회적·감정적 행동, 양육, 사회적 유대 형성을 담당한다.
인간의 뇌는 뇌의 구조상 3층에 위치하는 뇌이고, ‘이성의 뇌’라고 불린다. 인간의 뇌는 세 가지 뇌 중에서 가장 발달하고 복잡하다. 인간의 뇌는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 구조를 포함하고 있지만, 신피질이라고 불리는 추가적인 층이 있다. 신피질은 언어, 추상적 사고, 문제해결, 의식적 인식을 포함한 인지 기능을 담당한다. 신피질은 여러 영역 또는 엽으로 나뉘며, 각각 특수한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전두엽(frontal lobe)은 의사결정과 실행 기능에 관여하고, 측두엽(temporal lobe)은 기억과 언어 처리와 관련이 있으며, 두정엽(parietal lobe)은 감각 통합을 담당하고, 후두엽(occipital lobe)은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
이 세 가지 뇌 중에서 인공지능은 뇌의 구조상 3층에 위치하는 전전두피질과 신피질로 이루어진 ‘인간의 뇌’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인공지능은 지능, 언어, 지각, 추론 측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능가한다. 우리 인간은 이 점에서는 인공지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공지능의 이 능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두 배 이상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르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인간의 통제력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뇌 중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위만 모방했다는 것이다. 생명의 뇌인 파충류의 뇌와 감정의 뇌인 포유류의 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든 것이 인공지능이다. 즉, 인공지능에는 생존 본능이 없고, 감정과 느낌이 없다. 기계가 생각을 한다고 할 때, 그 생각은 계산과 합리적 논리이다. 특히 신피질 부위 중에서 인간의 뇌에는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완성되는 전전두피질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이다. 12세 경에 형성되기 시작해서 20세 경에 완성되는 전전두피질은 인간의 생각과 이성, 판단, 문제해결 같은 인지 능력을 책임지고 있다. 이 부위는 동물에게는 없는 우리 인간 특유의 부위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의 인지 능력이 향상되면서 인간이 하던 인지 작용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생각을 기계가 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나?》에서는 인간의 뇌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뇌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은 이 책이 출간된 후 MBC경남 라디오 연중캠페인 〈관용은 있다〉의 작가에게서 걸려온 전화 때문이다. 그 작가님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것 중 하나가 자기 프로그램의 주제인 ‘관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50초짜리 연중캠페인 대본을 작성해서 녹음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신 것이다. 나는 재미있을 것 같고, 인간의 면이 물씬 풍기는 ‘관용’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대본을 작성하기로 했다. 이 책에는 없는 내용이라 관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지금까지 했던 인간의 뇌에 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의 인지 능력을 기계에 위임하더라도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존재한다. 그 능력은 ‘감정의 뇌 부위’라고 부르는 변연계에서 나온다. 기계의 능력이 닿지 않는 감정 중에는 ‘공감’의 뉘앙스를 포함하는 ‘관용’이 있다. 인간에게는 ‘거울뉴런’이라는 신경세포가 있으므로, 혼자서 사고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에 있게 되면 상대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도 있고, 상대를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관용이다. 관용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공감 능력과 관용 능력은 기계에는 없는 인간의 특권이다. 우리 모두 이 인간의 특권인 관용 능력을 풍부히 발휘하여 우리의 고유한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