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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an 25. 2023

브런치와 나의 글쓰기

2022년 9월 20일, 캐나다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의 동양철학 교수 에드워드 슬링거랜드(Edward Slingerland; 1968 ~)의 2021년 책 《Drunk》를 우리말로 번역한 《취함의 미학》이 출간되었다. 출간과 동시에 2주 만에 400권 이상이 팔려 출판사 대표님이 매우 기뻐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난 출판사 대표님에게 슬링거랜드 교수를 우리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고, 이 말에 대표님은 자기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 나와 출판사 대표님은 슬링거랜드 교수의 책을 이미 2권(《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2018)와 《고대 중국의 마음과 몸》(2020))을 출간했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러다 보니 우린 슬링거랜 교수의 사상이 우리 일반 대중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지 알았다. 


슬링거랜드 교수 알리기 프로젝트에 난 돌입했다. 그 첫 프로젝트는 블로그였다. 이미 블로그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그 내용은 시원찮았다. 난 이 블로그를 새로 정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작업에 착수했다. 난 지금까지 난 4권의 인지언어학 전공 책을 집필했고, 60권 정도의 인지언어학과 인문학, 책을 번역했다. 이런 책들을 분류해 슬링거랜드 책을 부각할 생각이었다. 블로그의 전체 구성은 내가 집필한 책과 슬링거랜드 교수 책의 번역서, 그리고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추구하는 책, 은유와 환유 등 인지과학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는 책, 그리고 기타 인지언어학 책의 카테고리로 정리했다. 저서의 경우는 책 표지와 내용을 소개하고, 번역서의 경우는 원서와 번역서 표지와 내용을 소개했다. 어느 정도 진행해 가다 보니 블로그가 자리를 갖추어가는 모습이었다.


지인에게 내 블로그를 봐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 지인은 전남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조현일 선생이었다. 조현일 선생은 서강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 후, 인지과학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전남대학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지금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진행하고 있다. 조현일 선생은 사실 내가 슬링거랜드 교수의 책 3권을 번역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본인 전공인 동양철학을 슬링거랜드와 비슷한 인지과학 패러다임으로 읽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슬링거랜드 교수의 책은 조현일 선생에게는 필독서였다. 내 블로그에 대한 그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듣기 위해 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블로그는 멋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브런치(brunch)’를 아냐고 물었다. 난 처음 듣는 이야기라 먹는 브런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는 다음(Daum)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기도 아직 하지는 않지만 자기 독서 클럽 회원 중 한 명이 브런치 작가이고, 어느 날 그 브런치 작가의 글 하나에 조회 수가 하루 만에 1만 명이 넘는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서 선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입 장벽이 있다는 얘기였다. 어쨌든 전화를 끊고 난 브런치가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가 그 정보를 구하기 시작했다. 이 일련의 일은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에 일어났다.


유튜브를 통해 브런치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습득한 뒤 난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조건 브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이 카카오 사태가 터진 2022년 10월 14일이라 브런치 사이트에 들어갈 수가 없어 주말 동안 가슴만 졸였다. 드디어 17일 월요일이 되자 카카오와 다음 사이트가 정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17일 일찍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마무리하니 5일 정도 후에 합격 여부를 개인 메일로 알려준다고 했다. 바로 되면 좋겠지만 만약 안 되더라도 제수, 삼수, 사수라도 할 마음이었다. 그런데 19일 수요일에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너무 기뻤다. 아니 사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 감정은 기쁨보다는 놀람이었다. 이렇게 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

슬링거랜드 교수 알리기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이 브런치였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면 어떤 글을 쓸지 주말 내내 생각해 정리했다. 사실 난 그 이전부터 퇴임할 무렵에는 지금까지 번역한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할 계획이 있었다. 더 나아가 읽고 싶은 철학자의 책을 읽으면서 전문가로서가 아닌 일반 독자로서 읽고 난 뒤의 느낌을 장마다 쓰고 싶었었다. 가장 최근에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머리말을 읽고 메모 형식으로 글을 썼던 적도 있었다. 그 이전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도 시도했었다. 슬링거랜드 교수 알리기를 위해서는 당연히 그의 철학적 사상을 담은 책을 집필하는 것이었다. 조현일 선생과도 이런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물론 당장은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 둘 다 알았다. 그래서 현재 내가 슬링거랜드 교수를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책을 다시 읽고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 첫 책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취함의 미학》이다.


이 브런치라는 너무나 매력덩어리인 글쓰기 플랫폼을 내가 편안히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요즘은 계속 웃는다, 행복해서! 그래서 슬링거랜드 교수 알리기 외에 인문학도로서 나의 글도 쓰고 싶었다. 난 인지과학을 인문학에 적용하는 융합 학문을 선호하고, 지금까지 그런 부류의 책을 번역하면서 소개하는 일에 전념했다. 난 이런 인문학을 ‘인지인문학(cognitive humanities)’이라 이름 붙인다. 인지인문학의 글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인지인문학을 알리기 위해 영미 쪽 책도 계속 번역해 알리는 일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은 인지과학자 마크 존슨(Mark L. Johnson)과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 돈 터커(Don M. Tucker)가 2021년에 출간한 《Out of the Cave: A Natural Philosophy of Mind and Knowing》이다. 우리 말로 옮기면 《동굴 밖으로: 마음과 인식의 자연철학》 정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하려는 인지인문학의 철학적·신경과학적 토대가 된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에 대해 십여 군데 정도의 국내 출판사에 출간 제안을 했지만 모두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내 출판사들이 우리 국내 일반 독자의 수준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책은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 1905~1983)가 1964년에 출간한 《The Act of Creation》이다. 이 책에는 국내 출판사와 출판 계약 중 출판 시장의 어려움으로 결국은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역사도 있다. 이 책은 유머, 과학, 예술에서의 창의성을 쾨슬러가 절묘하게 풀어나가는 아름다운 책이다. 지금은 국내 출판 상황의 어려움으로 번역서를 출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브런치에서 이 책을 번역해 관심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시를 쓰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공연 사업을 하면서도 거의 메일 시를 쓴다. 그것도 참으로 잘 쓴다. 하지만 그 친구의 시에는 비유가 너무 많아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비유를 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그 친구 시의 매력이니 말이다. 그래서 난 그 친구에게 시 한 편 쓰고 나면 바로 옆에 그 시를 풀어주는 에세이도 같이 쓰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압축된 글과 느슨한 글을 쓰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특히 압축된 글을 쓰는 데 익숙한 그 친구에게는 그런 에세이가 쉽지는 않은 것이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그 느슨한 글을 내가 하겠다고 그 친구에게 제안했다. 그 친구는 너무 기뻐하면서 내 글을 읽어 주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브런치 글쓰기의 주제를 이렇게 정했다. “어느 번역가의 자기 책 다시 읽기”, “인지인문학”, “인문학책 번역”, “연리지 멜로디: 시와 수필의 동행”으로.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취함의 미학》 홍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홍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회 수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나 자신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다. 요즘 주변 사람을 만나면 브런치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특히 미술 전공을 하신 분에게는 강력추천을 한다. 자기 작품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든 그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그 작품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적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과 만나라는 것이다. 이렇든 브런치는 나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편하게 브런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좋다. 이런 좋은 삶을 평생 지속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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