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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동


눈 덮인 비탈에선 발자국이 길이라네

지도에 없는 길을 만드는 걸음은

도면에 망점을 찍던 연필의 역할이네

갈아엎은 묵밭에서 고랑을 내던 화가

남자를 쓰러뜨린 술병들 곁에서

밤마다 지도에다 연필을 찍어대곤 했네

연필로 지도 위에 길을 내곤 했었네

그 뒤를 밟는 발자국은 밑그림으로 남아

떠나온 먼 나라에 도착하곤 했네


붓 대신 호미를 쥔 이국의 화풍이라

발이 다 닳은 연필에겐 더욱 낯선 필치였네

눈 내리는 밤이 오면 숨은 그림이 되어

구멍 난 지도에선 발이 자꾸 빠졌네

필적과 족적 사이 국적이 바뀌어도

등고선 바깥까지 앞장선 연필 자국

지도엔 갈 데가 많아 길을 묻는 연필은 없었네

두고 온 나라의 길을 점묘화로 이어 내는

화가는 그림 속에서 나오지를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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